September 27, 2014

천사를 죽이다





 
 
위 그림은 어느 어린이 동화에 실렸던 최규석 화가의 삽화라고 한다.
삽화가 실리자..독자들의 항의가 밧발쳤다.
아래는 그에 대한 편집자(?)의 변()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천사는 천사가 아니라 천사의 탈을 쓴 악마입니다. 세상엔 그런 가짜 천사들이 참 많습니다. 무작정 운명에 순응할 것을 강요한다든가 현실의 모순에 눈을 감고 내세에만 관심을 갖게 한다든가 억압받는 사람들의 저항을 폭력이라 몰아붙인다거나 하면서 힘센 사람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가짜 천사들 말입니다. 아무 죄없는 사람이 일생을 그 가짜 천사에 속아 살았다면 그에겐 분노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현실의 추악함을 되도록 보여주지 않고 싶어 합니다. 하긴 누가 그게 즐겁겠습니까? 그러나 아이들에게 현실의 추악함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 추악함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단지 그 추악함을 감출 뿐입니다. 그것은 늘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설명되지만 실은 우리 속을 편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추악함을 만든 게 바로 우리라는 것, 아이들은 그 추악함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그 아이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그 지옥에 빠질지 우리는 모릅니다. 아이들은 그런 가짜 천사들이 죄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겐 그 추악함을 아이들에게 알려줄 정직함의 의무가 있습니다. 물론 그 방법은 가장 신중하고 사려깊어야 합니다. 예술작품은 그런 면에서 매우 훌륭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예술작품을 통해 그런 현실의 추악함을 간접 체험하면서 스스로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이 작품을 보고 어른들이 걱정하듯 심각한 충격이나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나쁜 천사네’ 할 뿐입니다. 천사는 무작정 착하고 좋다는 판타지가 깨지는 건 아이들의 마음을 더럽히는 걸까요, 현명하게 하는 걸까요? 어른들, 특히 한국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맑고 깨끗한 것만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습니다. 그런 강박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실은 매우 위험합니다. 현실은 그렇게 맑고 깨끗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강박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면 아이는 그런 추악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당하기만 하는 사람이 되거나 그런 추악한 현실에 같은 추악함으로 적응하는 비루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지금 수많은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듯 말입니다. 중요한 건 우리의 불편함이 아니라 아이들의 인생입니다. 천사를 죽이는 장면에 집착하지 않고 다시 한번 이 작품을 보시길 권합니다. 이 작품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을 것입니다. 
 
***
 
고상한척, 윤리적인척, 경건한척..위선적이고 이중적인 모습보다
2류스러운 솔직함이 어느때는 더 순수해 보일 수도 있다.
 
진정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것일까..무엇이 천사이고 무엇이 악마일까..
자신의 믿음 혹은 생각을 무작정 강요하는 것..
아무 대책없는 긍정주의나 맹목적 순응주의는 과연 천사일까, 악마일까.. 
불합리한 것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하는건가, 아님 참고 견뎌야 하는 건가..
 
세상은 갈수록 복잡하고 다양해져서..대체 뭐가 맞고, 뭐가 틀린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애초에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는 것에 정답임을 강요하다보니 사는 것이 힘들어 진다. 
정답인듯 위장하며 삶을 살아가야 할때..충돌하게 되고 사는 것은 힘들어진다. 
 
살아가다보면 정말 사는데는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 젠장..오늘도 대충 수습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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