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xdxBPfWV2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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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의 개봉(11월 22일)을 앞두고... 다들 캐스팅이 어쨌니, 스토리가 어쨌니, 미술이 어쨌니, 연기가 어쨌니, 웰메이드 수작이니 하는 호평이 많은 것 같다.
예전 같으면 나 역시 좋은 영화/괜찮은 영화가 개봉된다고 기대를 하며 설레발을 쳤겠지만... 이젠 그냥저냥 시큰둥하고... 심지어는 좀 지겹다는 느낌, 피로감도 드는 게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래봐야 딱히 달라지는 건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결국 호가호위하며 천수를 누르는 것은 힘(권력 혹은 자본의 힘)으로 밀어붙이는(혹은 붙였던) 놈들이고, 힘겨움과 고통 속에서 빈곤하게 살다가 병들거나 요절하는 것은 대체로 공정하거나 도덕적이려고 노력하는(혹은 노력했던) 사람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미래에도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류의 사람들은 꾸준히 계속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유력인사로, 지도자로 선출되고 당선되고 위임되어 또 등장할 것이다. 그것도 다름 아닌 대한민국 국민 다수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서 말이다.
그 말은... 다수의 한국사람들은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류의 사람을 여전히 좋아하고 찬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는 아마 대박이 날듯싶다. 그리고 잠시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리다가 시간이 지나면 또 전두환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류의 사람을 지도자(?)로 추앙하고 찬양하고 선출하는 코메디가 반복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좋은 영화라 하니, 한 번쯤 시청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이제 와서 시청하다고 무슨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12.12사태가 있으지 40년이 넘었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사람들은 무엇을 얼마나 단죄하고 바로잡았는지 좀 의문이든다. 40년 동안 기존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악'은 계속 등장했을 뿐이다. 지난 40년 동안 '악'은 꾸준히 호가호위했으며 천수를 누렸다. 그리고 '악'은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반복하여 나타나고 호가호위할 것 같다.
어떤 삶을,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는 각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부정과 부패를 일삼고, 힘을 남용하며 호가호위하며 천수를 누릴 것인지, 정의 또는 공정함을 믿으며 힘겹고 고통 속에 살아갈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오직 '나 자신' 뿐이다.
그러니... 그저 각자 알사서 살아남고, 그저 다 잘 되기를 바라며 부질없는 걱정이나 염려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나도, 우리도... 어찔할 방법이 없다. 어느 시대건 우리는 우리가 만든 세상을 살아가는 것 뿐이다.
12 • 12 쿠데타가 발생했을때 김오랑 소령은 8발의 탄알이 든 권총 한자루로 떼로 들이닥친 반란군으로부터 특전사령관을 지키려다 온 몸에 6발의 탄환을 맞고 현장에서 사망한다.
저항하는 김소령을 향해 발사명령을 내린 반란군 박종규 중령은 며칠전에도 가족끼리 식사를 했던 군아파트 아래 • 위집 사이였다 • 박중령은 그후 소장까지 진급했다가 하나회 숙청시 군복을 벗었고 암으로 죽기전에 김오랑 추모기념사업회로 전화해서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김오랑소령의 부인 백영옥*시는 남편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안좋던 눈을 완전히 실명한다 • 10년이 지난 후 부산 자비원 마당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으나 단순 실족사로 처리된 후 남편과 함께 묻히지 못하고 부산영락공원 무연고 납골당에 안치되었다가 합동 산골되었다 • 슬하에 자녀는 없었다 •
김오랑 소령의 군인정신은 반란군측에서도 어찌 왜곡할 수 없는 숭고한 죽음이라 국립현충원에 묻고 이후 중령으로 추서되었다 •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김오랑중령의 흉상이 후배 사관생도들의 귀감으로 자리잡는 날이 언젠가 오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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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던 장태완 사령관도 이등병으로 강등돼 강제 예편됐다. 그는 '역적'이 됐고 실의에 빠진 그의 부친은 1980년 4월 세상을 떠났다. 2년 후엔 서울대에 합격한 외아들이 할아버지 산소 근처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2010년 장태완 사령관은 별세했고 2년 후 그의 아내도 투신 자살했다.
정병주 사령관은 강제예편 후 우울증이 생겼고 노태우 전 대통령 당선 이듬해인 1989년 변사체로 발견된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냈다. 1989년 3월6일 중앙일보는 고인이 유서를 남기지 않고 신군부 지지 인사들로부터 협박을 받은 사실 등을 전하며 "정확한 사인 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출세가도를 달린 신군부 인사들
윤성민, 정호용, 최세창 등은 국방부 장관이 된다. 이희성, 황영시, 정호용, 박희도, 김진영 등은 육군참모총장을 내리 맡는다. 특전사령관(정호용, 박희도, 최웅), 수도경비사령관(노태우, 최세창, 고명승, 김진영), 보안사령관(전두환, 박준병, 고명승) 등 군 요직을 신군부가 독식한다. 특히 광주진압을 주도한 정호용 특전사령관은 내무부 장관, 국방부장관에 이어 국회의원을 지낸다.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교통부 장관, 주택공사이사장, 국토통일원 고문 등을 지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6/00001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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