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s Fight for Freedom"
by Frederick Arthur Mckenzie
"자유를 위한 한국인의 투쟁" - 프레데릭 매켄지
I. OPENING THE OYSTER : 입을 열다
II. JAPAN MAKES A FALSE MOVE : 일본 잘못된 행동을 하다
III. THE MURDER OF THE QUEEN : 왕비의 살인
IV. THE INDEPENDENCE CLUB : 독립 클럽
V. THE NEW ERA : 새로운 시대
VI. THE RULE OF PRINCE ITO : 이토 공자의 통치
VII. THE ABDICATION OF YI HYEUNG : 이형 퇴위
VIII. A JOURNEY TO THE "RIGHTEOUS ARMY" : 의로운 군대의 여정
IX. WITH THE REBELS : 반란과 함께
X. THE LAST DAYS OF THE KOREAN EMPIRE : 대한 제국의 마지막 날
XI. "I WILL WHIP YOU WITH SCORPIONS" : 전갈로 채찍질을 하다
XII. THE MISSIONARIES : 선교사들
XIII. TORTURE A LA MODE : 고문하다
XIV. THE INDEPENDENCE MOVEMENT : 독립운동
XV. THE PEOPLE SPEAK - THE TYRANTS ANSWER : 사람들이 말하고 폭군이 대답하다
XVI. THE REIGN OF TERROR IN PYENG-YANG : 평양의 공포정치
XVII. GIRL MARTYRS FOR LIBERTY : 자유를 위한 소녀 순교자
XVIII. WORLD REACTIONS : 세계의 반응
XIX. WHAT CAN WE DO? : 무엇을 할 수 있는가?
II JAPAN MAKES A FALSE MOVE
일본 잘못된 행동을 하다
For hundreds of years it was the ambition of Japan to replace China as the Protector of Korea. It was the more mortifying, therefore, that the Hanabusa incident served to strengthen China's authority. It gave Peking an excuse to despatch and maintain a considerable force at Seoul, for the first time for hundreds of years.
한국을 수호하는 것이 중국이 아니라, 일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수백 년간 일본이 가졌던 야망이었다. 그래서 하나부사 사건이 중국의 권위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을 일본은 더욱 안타까워했다. 이는 북경(중국)이 수백 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에 상당한 병력을 파견하고 유지할 구실을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mortify/mortifying 굴욕감을 주다/당황하게 하다
The Japanese tried to turn the affair to their advantage by demanding-still more concessions. The Korean rulers found it hard to refuse these determined little men. So they adopted a policy of procrastination, arguing endlessly. Now Japan was in a hurry, and could not wait.
일본은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함으로써 이 사건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려고 했다. 한국의 통치자들은 이 단호한 작은 사람들(즉 일본)을 거부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여, 그들은 끝없이 논쟁을 벌이는 지연 정책을 택했다. 일본은 급했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procrastination 꾸물거림/지연/연기/미루는 버릇
procrastinate 미루다/질질 끌다
The Japanese Minister at Seoul at this time was Takezoi, timid and hesitating constitutionally, but, like many timid folk, acting at times with great rashness. Under him was a subordinate of stronger and rougher type, Shumamura, Secretary to the Legation. Shumamura kept in touch with a group of Cabinet Ministers who had been to Japan and regarded Japan as their model.
당시 서울에 있던 일본 공사는 소심하고 주저하는 '다케조이'였는데, 많은 소심한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때때로 매우 경솔하게 행동했다. 그의 부하에는 '슈마무라'가 있었는데, 그는 더 강하고 거친 유형의 공사관 비서였다. '슈마무라'는 일본을 모델로 삼았던(즉 친일 주의자들) 한국의 내각 장관들과 계속 연락을 취했다.
timid 소심한/용기, 자신감 없는
subordinate 하급의/중요도가 낮은
They mourned together over the growth of Chinese power, and agreed that it was threatening the independence of the country. They repeated the rumour that a secret treaty had actually been signed by the King, recognizing Chinese supremacy in more binding form than ever before. They felt that the Queen was against them. Her nephew, Min Yung-ik, had been on their side when he returned from America. Now, under her influence, he had taken the other side.
그들(일본을 모델로 삼고자 했던 내각 장관들, 친일주의자들)은 중국 세력이 커지는 것을 애석해 했고, 그것이 국가의 독립을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구속력 있는 형태로 중국의 패권을 인정하는 비밀 조약이 왕에 의해 실제로 서명되었다는 소문을 반복했다(염려했다). 그들은 여왕이 자신들을 반대한다고 느꼈다. 그녀의 조카 '민영익'은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는 그들 편에 섰으나, 지금은 왕비의 영향으로 그(민영익)는 그들과 반대편에 있었다.
mourn 슬퍼하다/애도하다
supremacy 패권/우위/지상주의
Kim Ok-kiun, leader of the malcontents, was an ambitious and restless politician, eager to have the control of money. One of his chief supporters was Pak Yung-hyo, relative of the King, twenty three years old, and a sincere reformer. Hong Yung-sik, keen on foreign ways, was a third. He was hungry for power. He was the new Postmaster General, and a building now being erected in Seoul for a new post-office was to mark the entry of Korea into the world's postal service. So Kwang-pom, another Minister, was working with them.
불만분자(즉 친일장관)들의 리더인 '김옥근'은 금융/돈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야심 차고 불안한 정치인이었다. 그(김옥근)의 주요 지지자 중 한 사람에는 왕의 친척이자 23세의 성실한 개혁가인 '박영효'가 있었다. 그 다음 3위는 대외활동에 관심이 많은 '홍영식'이었다. 그는 권력에 굶주려 있었다. 그(홍영식)는 새로운 우체국장이었고 현재 서울에 새 우체국을 위해 건립되고 있는 건물은 한국이 세계 우편 서비스에 진출한 것을 기념하는 건물이었다. 다른 장관인 '광범'이 그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malcontent 불평불만 분자/불만 품은 사람/반항자
Kim Ok-kiun and Shumamura had long conferences. They discussed ways and means. The reformers were to overthrow the reactionaries in the Cabinet by the only possible way, killing them; they were then in the King's name to grant Japan further commercial concessions, and the Japanese were to raise a considerable loan which should be handed over to Kim for necessary purposes.
'김옥근'과 '슈마무라'는 오랫동안 회담을 가졌다. 그들은 방법과 수단을 논의했다. (한국을 개혁하고자 했던) 개혁자들은 (가능한 유일한 방법으로) 내각을 전복시키고 개혁 반동분자들을 죽이고자 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왕의 이름으로 일본에 추가적인 상업적 양보(진출)를 허용하기로 하고, 일본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상당한 액수의 차관을 김(옥근)에게 주기로 했다.
overthrow 전복/타도/전복시키다/타도하다
reactionary 변화에 대한 반동자/반동분자
*이 때의 친일주의자들은 유교 성리학을 버리고 서구문명을 받아들이고자 했던 사람들이 었던 것 같다. 지금의 시각으로 본다면, 그런 그들은 개혁주의자들이기도 했다.
Takezoi was on a visit to Tokyo when his deputy and the Korean came to an understanding. They were rather anxious to have the whole thing through before his return, for they knew, as every one knew, that Takezoi was not the best man for a crisis. But when the Minister returned from Tokyo there was none so bold as he. He boasted to his friends that Japan had at last resolved to make war on China, and that every Chinaman would soon be driven out of the land. He received Kim and heard of his plans with satisfaction. There would be no trouble about money. A few Japanese in Seoul itself would arrange all that was necessary. Let the thing be done quickly.
'다케조이'가 도쿄를 방문 중이던 중 그의 대리인과 한국인이 합의에 이르렀다. 그들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다케조이'가 위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돌아오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장관(다케조이)이 도쿄에서 돌아왔을 때 그만큼 대담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일본이 마침내 중국과 전쟁을 하기로 결심했으며 모든 중국인이 곧 이 땅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그는 김 씨를 만났고, 그의 계획에 만족스러워 했다. 돈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소수의 일본인에게는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할 것이었다. 일이 빨리 끝내는 것이 중요했다.
boast 자랑하다/뽐내다
It had been customary for the Legations only to drill their soldiers in daytime, and to inform the Government before they were taken out to public places. But one night Takezoi had his Japanese troops turned out, marched up the great hill, Namzan, commanding the city, and drilled there. When asked why he did it, he cheerfully replied that he had just made an experiment to see how far he could startle the Chinese and Koreans; and he was quite satisfied with the result.
(일본) 공사관에서는 낮에만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공공장소로 나가기 전에 정부에 알리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어느 날 밤, 다케조이는 일본군을 출동시켜 도시를 지휘하는 남잔(남산이 아닐까?)이라는 큰 언덕으로 진군하여 그곳에서 훈련을 했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묻자, 그는 중국인과 한국인을 얼마나 놀라게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한 것이라고 유쾌하게 답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매우 만족해했다.
customary 관례
startle 깜짝 놀라게 하다
He sought an interview with the King. He had brought back the 400,000 yen which Japan had exacted as indemnity for the Hanabusa outrage. Japan desired Korea's friendship, he declared, not her money. He also brought a stand of Japanese-made rifles, a gift from the Emperor to the King, and a very significant gift, too. The Minister urged on the King the helpless condition of China, and the futility of expecting assistance from her, and begged the King to take up a bold position, announce Korea's independence and dare China's wrath. The King listened, but made no pledges.
그는 왕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는 하나부사 사건에 대한 배상금으로 일본이 요구한 40만 엔을 돌려받았다. 일본은 한국의 돈이 아니라 한국의 우정을 원한다고 했다. 그는 또한 일본산 소총과 일본 천황이 조선의 왕에게 주는 귀중한 선물도 가져왔다. 장관은 왕에게 중국의 무력한 상황과 중국의 도움을 바라는 것이 헛된 일임을 촉구하고 왕에게 담대한 입장을 취하여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며 중국의 분노를 감히 감당할 것을 청했다. 왕은 귀를 기울였으나 아무런 서약도 하지 않았다.
stand 진열장/작은 탁자
futility 허무감/헛된/소용없는
*당시 조선이 어떤 상황에 처했을지 짐작게 한다. 한국 위정자들은 일본에 빌붙어 자신들의 욕망/욕심/이익을 채우려 하고, 일본은 한국을 능욕하기 시작하는구먼.. 쩝. 예나 2023년 현재나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도 같다. 한마디로 개판 오 분 전이란 얘기다. 또한 여전히 시대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 유교와 성리학의 전근대성을 버리지 못하고 왕권강화에 더 관심이 있었던 당시 조선과 왕(아마 고종이 아니였을까)의 꼬라지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Kim and the Japanese Secretary called in their allies, to discuss how to strike. One scheme proposed was that they should send two men, disguised as Chinese, to kill two of the Ministers they had marked as their victims. Then they would charge the other Ministers with the deed and kill them. Thus they would get rid of all their enemies at a blow. A second plan was that Kim should invite the Ministers to the fine new house he had built, should entertain them and then kill them. Unfortunately for Kim, the Ministers were not willing to come to his house. He had invited them all to a grand banquet shortly before, and only a few had accepted.
김과 일본의 장관은 자신들의 동맹들을 불러 공격 방법을 논의했다. 제안된 계획 중 하나는 중국인으로 변장한 남자 두 명을 보내 그들이 희생자로 지목한 장관 두 명을 죽이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다른 장관들에게 그 행위에 대해 직접적 책임을 물어 기소하고 그들을 죽일 요량이었다. 그리하면 단번에 모든 적들을 제거할 것이었다. 두 번째 계획은 김이 자신의 (새로 지은 멋진) 새 집에 장관들을 초대해 연회를 베푼 뒤 살해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장관들은 그의 집에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얼마 전에 그들 모두를 대연회에 초대했는데 소수만이 초대를 수락했었다.
"Make haste!" urged Shumamura. "Japan is ready for anything." At last some one hit on a happy scheme. Twenty-two young Koreans had been sent to Japan to learn modern military ways, and had studied at the Toyama Military School at Tokyo. Returning home, they had given an exhibition of their physical drill and fencing before the King, who was as delighted with them as a child with a new toy. He had declared that he would have all his army trained this way. The leader of the students, So Jai-pil, nephew of one of the King's favourite generals, was made a Colonel of the Palace Guard, although only seventeen years old. But despite the King, the old military leaders, whose one idea of martial ardour was to be carried around from one point to another surrounded with bearers and warriors who made a loud noise to impress the crowd, shuddered at the idea of reform, and managed to block it. The students were kicking their heels idly around the palace. Here were the very lads for the job. Appeal to their patriotism. Let them do the killing, and their seniors take the glory. And so it was decided.
"서둘러라!!" 슈마무라는 다그쳤다. "일본은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마침내 누군가 그럴듯한 계획을 세웠다. 22명의 조선인 젊은이들이 신식 군대를 배우기 위해 일본에 파견되었고 도쿄의 도야마 군사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귀국해서 그들은 왕 앞에서 자신들이 배운 제식훈련과 펜싱을 선보였고, 왕은 새 장난감을 가진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왕은 그의 모든 군대를 이런 식으로 훈련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병사들의 '리더'는 왕이 가장 총애하는 장군 중 한 사람의 조카인 소지필였는데 겨우 17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궁궐 근위대 대령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왕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군사들의 사기는 큰 소리를 지르는 전사들에 둘러싸여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군사적 열정으로 퍼진다는 생각을 가진 옛 군사 지도자들은 군대를 개혁한다는 생각(아이디어)을 염려했고 그것을 차단하려 애썼다. 군사훈련을 받은 학생들은 궁전 주변을 멍하니 할일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기에 그 일(군사를 개혁하겠다는 것을 막는 일)에 적합한 (할일없이 돌아다니는)젊은이들이 있다. 그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라. 그들이 살인을 하게 하고 그들의 선배들이 영광을 차지하게 하라. 그래서 결정되었다.(이 밑줄친 부분의 해석이 매끄럽지 못하다. 내 능력의 한계라 어쩔수가 없다.)
▶위 줄친 대목은 문맥이 좀 이상한 것 같다. 뭔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군사 개혁을 반대/대항하려는 목적을 위해 당시 어린 청년들이었던 군사학교 학생들의 애국심을 이용하여 군사개혁에 저항하는 '총알받이'로 쓰기로 했다는 의미인 듯하다.
martial 전쟁의/호전적인
ardour 열정
bearer 전달자/소지자
shudder 마구흔들리다/떨림/전율/몸서리
kick your heels: to be forced to wait for a period of time. If you are kicking your heels, you are having to wait around with nothing to do, so that you get bored or impatient.
idly 하릴없이/한가하게/아무 일 안 하고
lad 사내/청년
The Japanese were talking so boastingly that it would be surprising if the Chinese had learned nothing. At the head of the Chinese troops was Yuan Shih-kai, afterwards to prove himself the strongest man in the Middle Kingdom and to overthrow the Manchu dynasty. He said nothing, but it does not follow that he did nothing. At a dinner given to the Foreign Representatives, the Interpreter to the Japanese Legation delivered a speech in Korean on the shameless unscrupulousness and cowardice of the Chinese. He even went so far as to call them "sea slugs," giving a malicious glance at the Chinese Consul-General while he spoke. The Chinese official did not know Korean, but he could understand enough of the speech to follow its import.
일본인들은 중국인들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면 놀라운 일이 될거라고 거만하게 떠들고 있었다. 중국 군대의 수장에는 '위안 스카이(Yuan Shihkai)'가 있었는데, 이후 그는 중국 황실에서 가장 강한 사람임을 입증하고 만주 왕조를 전복시켰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었다. 외국대표들에게 열린 만찬에서 일본 공사관 통역사는 중국인들의 파렴치하고 비겁한 행위에 대해 한국어로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 중에 심지어 중국 총영사를 향해 악의적인 시선을 보내며 '바다 민달팽이'라고까지 불렀다. 중국 관리는 한국어를 몰랐지만, 그 말의 뜻을 따라갈 수 있을 만큼은 연설을 이해할 수 있었다.
overthrow 타도/전복
unscrupulousness 염치없음/부도덕함/악랄함
slug 민달팽이
The plans were now complete. Every victim had two assassins assigned to him. The occasion was to be the opening of the new post-office, when Hong Yung-sik would give an official banquet to which all must come. During the dinner, the detached palace was to be set on fire, a call was to be raised that the King was in danger, and the reactionary Ministers were to be killed as they rushed to his help. Two of the students were appointed sentries, two were to set fire to the palace, one group was to wait at the Golden Gate for other members of the Government who tried to escape that way. Four young Japanese, including one from the Legation, were to act as a reserve guard, to complete the killing in case the Koreans failed. The Commander of the Palace Guard, a strong sympathizer, posted his men in such a way as to give the conspirators a free hand. The Japanese Minister promised that his soldiers would be ready to cooperate at the right time.
이제 계획은 끝났다. 모든 희생자/타겟에게는 두 명의 암살자가 배정되었다. 그 기회는 새 우체국을 개업하는 날이었고, 그때 홍영식은 모두가 참석해야 하는 공식적인 연회를 베풀었다.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별궁에 불을 지르고, 왕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신호가 울리고, 왕을 도우러 달려가던 반동적인 대신들을 살해하기로 되어 있었다. 학생(신병) 중 두 명은 보초로 배치 되었고, 두 명은 궁전에 불을 지르고, 한 무리의 그룹은 그쪽 길로 탈출하려는 다른 정부 구성원을 골든 게이트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공사관 한 명을 포함해 네 명의 일본인 젊은 병사들이 예비 경비병으로 배치되어 조선인들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살해를 완료하기로 되어 있었다. 열혈 동조자인 궁전 경비대 사령관은 공모자들에게 재량을 주는 방식으로 부하들을 배치했다. 일본 장관은 자신의 병사들이 적절한 때에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약속했다.
sympathizer 동조자
On the afternoon of December 4th, the Japanese Legation people busied themselves with fetching ammunition and provisions from the barracks. In the afternoon a detachment of soldiers came over. They knew that the deed was to be done that night.
12월 4일 오후, 일본 공사관 사람들은 막사에서 탄약과 식량을 운반하느라 분주했다. 오후에는 군인들이 파견됐다. 그들은 그날 밤에 일이 끝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barracks 막사/병영
The dinner was held, according to plan. It was a singularly harmonious gathering--up to a point. Many were the jokes and pointed was the wit. The gesang (geisha), spurred by the merriment of their lords, did more than ever to amuse the guests. The drink was not stinted.
만찬은 예정대로 열렸다. 어느 정도까지는 매우 조화로운 모임이었다. 농담도 많았고 재치가 돋보였다. 주인의 즐거움에 자극받은 게상(게이샤)은 손님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일을 했다. 음료는 인색하지 않았다.
singularly 아주/몹시/특이하게
spur/spurred 박차/자극제/원동력/박차를 단/쇠발톱이 있는/독촉을 받은
merry/merriment 즐거운/명랑한/유쾌하게 떠들썩함
stint/stinted 아끼다/인색하게 쓰다
Then there came a call of "Fire!" It was the duty of Min Yung-ik, as General Commanding the right Guard Regiment, to keep the custody of the fire apparatus. Deploring his rough luck in being called to duty at such a time, he left the hall and, surrounded by his braves and attendants, who were waiting for him in the anteroom, made his way to his yungmun, or official residence. When he was near the post-office five young men, armed with sharp swords, suddenly broke through his guard, killed one of the soldiers and attacked the Minister. "He received seven sword slashes, all great ones, two all but taking his head off," wrote a contemporary chronicler. He staggered back into the banqueting hall, blood pouring from him. There was at once great confusion. The Ministers not in the plot, fearing that some ill was intended against them, threw away their hats of state, turned their coats, and concealed themselves amongst their coolies. Fortunately for Min, just as the palace doctors were about to attempt to stop his wounds by pouring boiling wax on them, a modern surgeon came hurrying up. He was Dr. Allen, an American Presbyterian missionary, the first to arrive in Korea. He did such good work on his patient that night that King and Court became friends of the missionaries for ever on.
그러자 "불이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화력장치를 관리하는 것은 우경비연대를 지휘하는 장군 민영익의 임무였다. 이런 때에 직무를 맡게 된 불운을 한탄한 그는 홀을 떠나 대기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용사들과 시종들에 둘러싸여 융문으로 향했다. 그가 우체국 근처에 있을 때 날카로운 칼로 무장한 다섯 명의 청년이 갑자기 그의 경비병을 뚫고 군인 중 한 명을 죽이고 장관을 공격했다. "그는 7번의 칼/검 공격을 받았는데, 머리는 잘리지 않았으나 모두 큰 상처를 입혔다."라고 당시 어느 (연대기) 사관은 적었다. 그는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며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즉시 큰 혼란이 일어났다. 음모에 참여하지 않은 장관들은 자신에게도 위해를 가할 의도가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여 관직을 상징하는 모자를 버리고 외투를 뒤집어 입고 대중들 사이로 숨었다. 다행스럽게도 궁의 의사들이 상처에 끓는 촛농을 부어 민 장군의 상처를 막으려던 순간, 현대 외과 의사가 서둘러 왔다. 그는 한국에 가장 먼저 도착한 미국 장로교 선교사 알렌 박사였다. 알렌 박사는 그날 밤 환자를 잘 돌봤기에 왕과 조정은 선교사들과 영원히 친구가 되었다.
contemporary 동시대의/당대의
chronicler 연대기 작자/사건의 기록자
stagger 비틀거리다/휘청거리다/큰 충격을 주다/깜짝 놀라게 하다
coolie 막노동꾼/노동자들
Leaving the banqueting hall, Pak Yung-kyo and his companions at once hurried to the palace, informed the King that a Great Event had happened, and told him that he and the Queen must go with them for their safety. They took him to the Tai Palace, near at hand. Here they were at once surrounded by the Japanese troops, by the students, and some 800 Korean soldiers, under General Han Kiu-chik, who commanded one of the four regiments of the Palace Guard.
연회장을 떠나 박영교와 일행은 급히 궁궐로 달려가서 왕에게 큰 일이 일어났음을 알리고, 왕비와 함께 안전을 위해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를 가까이에 있는 타이 궁(Tai Palace)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일본군과 학생, 그리고 궁궐 근위대 4개 연대 중 하나를 지휘하는 한규직 장군 휘하의 약 800명의 한국군에 포위되었다.
The King and Queen were of course accompanied by their own attendants. The Chief Eunuch, who was among them, took General Han on one side. "This is a very serious matter," he urged. "Let us send for General Yuan and the Chinese." General Han apparently weakened and agreed. There was no weakening on the part of the students. The Chief Eunuch and the General were "one by one withdrawn from the King's presence" and when outside were promptly despatched. Then the King was bidden to write notes to his chief anti-Progressive Ministers, summoning them to his presence. As they arrived, "one by one, each in his turn, was despatched by the students and his body thrown aside."
물론 왕과 왕비는 시종들을 동반했다. 그들 가운데 있던 환관의 우두머리가 한 장군을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촉구했다. "위안 장군과 중국군을 불러오도록 합시다." 한 장군은 분명히 약해졌고 그에 동의했다. 훈련병들은 약함이 없었다. 환관의 수장과 장군은 "하나씩 왕의 면전에서 물러나고" 밖으로 나오자 즉시 파견되었다. 그런 다음 국왕은 반진보 장관들에게 메모를 써서 당장 왕 앞에 모두 모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장관들이 모이자 "학생들은 차례대로 한 명씩 파견되었고 그의 시신은 옆으로 버려졌다."고 전했다.
▶여기서 밀줄친 부분은 도무지 해석이 안 된다.ㅜㅜ
Eunuch 환관/내시
The King called for the Japanese Minister. At first he would not come. Finally he appeared. He had arranged that most of the work was to be done without his presence, in order to avoid diplomatic trouble. A number of edicts had been drawn up which the King was obliged to sign. All kinds of reforms were commanded, and the land was made on paper, in an hour, into a modern state. The reformers did not forget their own interests. Hong Yung-sik, the Postmaster General, was made Prime Minister, Kim Ok-kiun was made second officer of the Royal Treasury, and the lad So Jai-pil, on whom the chief command of the students and Korean soldiers now devolved, was made General Commanding a Guard Regiment.
왕은 일본 대신을 불렀다. 처음에 그는 오지 않았으나 마침내 그가 나타났다. 일본 대신은 외교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 대부분의 작업이 자신 없이 이루어지도록했다. 왕이 서명해야 하는 여러 칙령이 작성되었다. 모든 종류의 개혁이 명령되었고 한국 땅은 한 시간 만에 종이 위에서 (갑자기) 현대적인 국가가 되었다. 개혁은 원했던 개혁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잊지 않았다. 체신관 홍영식을 국무총리로, 김옥균을 재무부장으로, 학생과 국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던 청년 소지필은 경비 연대를 지휘하는 장군이 되었다.
edict 포고령/칙령
drawn up 다가와서 서다/만들다/작성하다
devolve/devolution 양도하다/이전하다/권력이양
In answer to his urgent entreaties, the King was allowed next morning to return to his palace, the Japanese and the Progressives accompanying him. It was soon clear, even to the reformers, that they had gone too far. As news of the affair became known, the people made their sentiments felt in unmistakable fashion. Odd Japanese in the streets were killed, others made their way to the Legation and shut themselves in there, while the Japanese Minister and the Progressives were hemmed in the palace by an angry mob.
그의 긴급한 간청에 대한 응답으로 왕은 다음날 아침 그의 궁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했고, 일본군과 진보파도 그를 따라갔다. 진보 개혁가들은 그들이 너무 멀리 왔다는 것이 곧 분명해졌다. 사건 소식이 알려지자 대중들은 반감을 갖게 되었다. 거리에 있던 일본인들이 살해당했고, 어떤 사람들은 공사관으로 피신해 나오지 못하였고, 일본 공사와 진보파는 성난 폭도들에 의해 궁궐에 갇혔다.
entreaty 간청/애원
unmistakable fashion 오해의 여지가 없는/틀림없는
They were short of ammunition. The Japanese had twenty-five rounds a man, the twenty-two students had fifteen rounds apiece, and the eight hundred Korean soldiers either had none or destroyed what they had. There was plenty in the Legation but the mob barred the way. General So Jai-pil (to give him his new title) was on the move day and night, going from outpost to outpost, threatening and encouraging weaklings, and arranging and inspiring his men.
그들은 탄약이 부족했다. 일본군은 남자 25발, 학생 22명은 각각 15발, 한국군 800명은 총알이 없거나 가지고 있던 것은 망가졌다. 공사관에는 많은 탄약이 있었지만 폭도들이 길을 막았다. 소지필 장군(그에게 부여된 새 직함)은 밤낮으로 초소에서 초소로 이동하면서 약자들을 위협하거나 격려하며 부하들을 배치하고 격려했다.
Legation 공사관
weakling 허약자/약골
The affair started on the evening of December 4th; the reformers remained in the palace until the afternoon of December 7th. Then General Yuan Shih-kai, the Chinese leader, approached the palace gates and sent in his card, demanding admission. The Queen had already smuggled a message out to him begging his aid. The Japanese soldiers on guard refused to allow him to enter. He gave warning that he would attack. He had 2,000 Chinese troops and behind them were fully 3,000 Korean soldiers and the mass of the population.
사건은 12월 4일 저녁에 시작되었다. 개혁자들은 12월 7일 오후까지 궁전에 머물렀다. 그러자 중국 지도자 위안스카이(Yuan Shih-kai) 장군이 궁궐 문으로 다가가 자신의 카드를 보내 입장을 요구했다. 여왕은 이미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몰래 전달했다. 경비를 서고 있던 일본군은 그의 출입을 거부했다. 그는 공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에게는 중국군 2,000명이 있었고 그 뒤에는 조선군 3,000명과 대다수의 군중들이 있었다.
Takezoi weakened. He did not want to risk an engagement with the Chinese, and he declared that he would withdraw his Guard, and take them back to his Legation. Young General So drew his sword threateningly, and told him that they must stay and see it through. The Japanese captain in command of the troops was as eager for a fight as was So, and the Minister was for the time overruled.
타케조이는 약해졌다. 그는 청나라군과 교전할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고 경비병을 철수하고 그들을 자신의 공사관으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소 장군은 위협적으로 검을 뽑으며, 머물면서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군대를 지휘하던 일본 대장은 소와 마찬가지로 전투를 열망했지만 장관은 각하되었다.
overrule 기각/각하되다
A great fight followed. The Chinese sought to outflank the reformers, and to force an entry by climbing over the walls. One of the personal attendants of the King suddenly attacked the new Premier, Hong Yung-sik, and slew him. The Korean soldiers seemed to disappear from the scene as soon as the real fighting started, but the students and the Japanese did valiantly. They claimed that they shot fully three hundred Chinese. The great gate of the palace still held, in spite of all attacks. But the ammunition of the defenders had at last all gone.
큰 싸움이 이어졌다. 중국군은 개혁군의 측면을 공격하고 성벽을 넘어 강제로 진입하려고 했다. 왕의 수행원 중 하나가 갑자기 새 총리 홍영식을 공격하여 죽였다. 한국군은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현장에서 사라지는 듯했지만,
학생들과 일본군은 용감하게 싸웠다. 그들은 중국인 300명을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모든 공격에도 불구하고 궁전의 대문은 여전히 굳건했다. 그러나 수비군의 탄약은 마침내 모두 떨어졌다.
outflank 측면에서 공격하다/선수를 치다
attendant 종업원/안내원/수행원/수반되는
valiantly 용감하게/뒤어나게
ammunition 탄약/(언쟁에서 무기가 될 수 있는) 정보
"Let us charge the Chinese with our bayonets," cried So. The Japanese captain joyfully assented. But Takezoi now asserted his authority. He pulled from his pocket his Imperial warrants giving him supreme command of the Japanese in Korea and read them to the captain. "The Emperor has placed you under my command," he declared. "Refuse to obey me and you refuse to obey your Emperor. I command you to call your men together and let us all make our way back to the Legation." There was nothing to do but obey.
소 장군은 "우리 총검으로 중국군을 공격하자"고 외쳤고 일본군 대령은 기쁘게 동의했다. 그러나 다케조이는 자신의 권위를 주장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한국에 있는 일본군에 대한 최고 지휘권을 부여하는 왕실의 증서를 꺼내서 대령에게 읽어 주었다. "황제께서 당신을 내 지휘하에 두었다"고 그는 선언했다. "나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황제에게도 복종하기를 거부하려 하는가. 나는 당신에게 당신의 부하들을 모아 공사관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한다." 일본군 대령은 그 말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bayonet 총검/총검으로 찌르다
captain 대위/대령
assent 찬성/승인/찬성하다
While the Chinese were still hammering at the front gate, the Japanese and reformers crept quietly around by the back wall towards the Legation. The people in the building, hearing this mass of men approach in the dark, unlit street, thought that they were the enemy, and opened fire on them. A Japanese sergeant and an interpreter were shot down on either side of General So. Not until a bugle was sounded did the Japanese inside the building recognize their friends. The party staggered in behind the barricades worn out. So, who had not closed his eyes for four days, dropped to the ground exhausted and slept.
청나라군이 여전히 정문을 두드리고 있는 동안 일본군과 개혁군은 공사관을 향해 뒷벽을 따라 조용히 살금살금 움직였다. 건물 안의 사람들은 어둡고 불도 켜지지 않은 거리에서 군중들이 다가오는 것을 듣고 그들이 적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소 장군 양쪽에서 일본군 중사와 통역사 1명이 총에 맞았다. 나팔 소리가 울리고 나서야 건물 안의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친구들을 알아볼수 있었다. 일행은 낡아빠진 바리케이드 뒤에서 비틀거리며 들어섰다. 나흘 동안 한 숨도 자지 못한 사람들이 지쳐 쓰러져 잠이 들었다.
creep/crept 살금살금 움직이다/기다(=crawl)/너무[소름끼치게]싫은 사람/아첨꾼
bugle (군대의 신호용) 나팔
stagger 비틀[휘청]거리다/비틀[휘청]거리며 가다/큰 충격을 주다/깜짝 놀라게 하다/(진행되는 일에) 시차를 두다
He did not awake until the next afternoon. He heard a voice calling him, and started up to find that the Japanese were already leaving. They had resolved to fight their way to the sea. "I do not know who it was called me," said So, afterwards. "Certainly it was none of the men in the Legation. I sometimes believe that it must have been a voice from the other world." Had he wakened five minutes later, the mob would have caught him and torn him to bits.
그는 다음날 오후까지 깨어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일본인들이 이미 떠나고 있음을 알았다.
일본인들은 바다로 나아가 싸우기로 결심했다. 소 장관은 나중에 "누가 나를 불렀는지 모르겠고, 분명히 공사관에 있던 남자들은 아니었다. 나는 가끔 다른 세상에서 들려온 목소리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만약 그가 5분 늦에 정신을 차렸다면, 폭도들은 그를 잡아서 갈기갈기 찢어 놓았을 것이었다.
The Japanese blew up a mine, and, with women and children in the centre, flung themselves into the maelstrom of the howling mob. The people of Seoul were ready for them. They had already burned the houses of the Progressive statesmen, Kim, Pak, So and Hong. They tried, time after time, to rush the Japanese circle. The escaping party marched all through the night, fighting as it marched. At one point it had to pass near a Chinese camp. A cannon opened fire on it. At Chemulpo, the coast port twenty-seven miles from Seoul, it found a small Japanese mail steamer, the _Chidose Maru_. The Koreans who had escaped with the party were hidden. Before the _Chidose_ could sail a deputation from the King arrived, disclaiming all enmity against the Japanese, but demanding the surrender of the Koreans. Takezoi seemed to hesitate, and the reformers feared for the moment that he was about to surrender them. But the pockmarked captain of the _Chidose_ drove the deputation from the side of his ship, in none too friendly fashion, and steamed away.
일본인들은 지뢰를 폭파했고, 여자와 아이들을 중심으로 울부짖는 군중의 소용돌이 속으로 몸을 던졌다. 서울 시민들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미 진보정치인 김, 박, 서, 홍의 집을 불태웠다. 그들은 계속해서 일본계를 돌진하려고 노력했다. 탈출하는 일행은 밤새도록 행진을 했고, 행진하면서 싸웠다. 어느 시점에서는 중국 캠프 근처를 지나가야 했다. 대포가 발사되었다. 서울에서 27마일 떨어진 해안항 제물포에서 일본의 소형 우편 증기선 치도세마루호를 발견했다. 일행과 함께 탈출한 조선인들은 숨겨져 있었다. 치도세(Chidose)가 출항하기 전에 왕의 사절단이 도착하여 일본에 대한 모든 적대감을 부인하고 조선인의 항복을 요구했다. 다케조이는 망설이는 것 같았고, 개혁가들은 그가 항복할까 두려워했다. 그러나 곰보 자국이 있는 치도세호의 선장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태도로 그의 배 옆에서 대리인을 몰아내고 쫓겨냈다.
maelstrom (사회적) 대혼란[소용돌이]/(물의) 엄청난 소용돌이(=whirlpool)
howling 엄청난/국심한/ 울부짖는/휘몰아치는
deputation 사절단
pockmark 마마자국/곰보자국
The reformers landed in Japan, expecting that they would be received like heroes, and that they would return with a strong army to fight the Chinese. They did not realize that the revolutionist who fails must look for no sympathy or aid.
개혁가들은 자신들이 영웅처럼 받아들여질 것이며 중국과 싸우기 위해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며 일본에 상륙했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한 혁명가는 동정이나 도움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The Japanese Foreign Minister at first refused even to see them. When at last they secured an audience, he told them bluntly that Japan was not going to war with China over the matter. "We are not ready yet," said he. He then demanded of the reformers what they were going to do with themselves. This was too much for So Jai-pil. His seniors tried to restrain him, but in vain, "What way is this for Samurai to treat Samurai?" he hotly demanded. "We trusted you, and now you betray and forsake us. I have had enough of you. I am going to a new world, where men stand by their bonds and deal fairly with one another. I shall go to America."
일본 외무장관은 처음에는 그들을 만나는 것조차 거부했다.
청중이 확보되자 그는 일본이 이 문제로 중국과 전쟁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우리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그가 말했다. 그 다음 그는 개혁가들에게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지 요구했다. 소지필에게는 너무한 일이었다. 그는 "이것이 사무라이가 사무라이를 대하는 방식인가?"라며 (결전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의 선배들이 그를 제지하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우리는 당신을 믿었는데 이제 당신은 우리를 배신하고 버렸소. 나는 당신에게 할만큼 했소. 나는 사람들이 서로 연대를 하고 공정하게 대하는 새로운 세계로 갈 것이오. 나는 미국으로 가겠소."
blunt/bluntly 두디게 만들다/직설적으로
forsake 책임져야 할 대상을 저버리다/그만두다/버리다
A few weeks later he landed in San Francisco, penniless. He knew scarcely any English. He sought work. His first job was to deliver circulars from door to door, and for this he was paid three dollars a day. He attended churches and meetings to learn how to pronounce the English tongue. He saved money enough to enter college, and graduated with honours. He became an American citizen, taking a new form of his name, Philip Jaisohn. He joined the United States Civil Service and in due course was made a doctor of medicine by Johns Hopkins University. He acquired a practice at Washington, and was lecturer for two medical schools. Later on, he was recalled to his native land.
몇 주 후 그(소지필)는 무일푼으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그는 영어를 거의 알지 못했다. 그는 일자리를 구했다. 그의 첫 번째 직업은 집집마다 회보를 배달하는 것이었고, 일한 대가로 하루에 3달러를 받았다. 그는 영어 발음을 배우기 위해 교회와 집회에 참석했다. 그는 대학에 들어갈 만큼 돈을 저축했고, 우등으로 졸업했다. 그는 Philip Jaisohn 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며 미국 시민이 되었다. 그는 미국 공무원이 되었고, 머지않아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워싱턴에서 진료를 보았고 두 의과대학에서 강사로 재직했다. 나중에 그는 고국으로 소환되었다.
The Korean reformers themselves saw, later on, the folly of their attempt. "We were very young," they say. They were the tools of the Japanese Minister, and they had inherited a tradition of political life which made revolt seem the natural weapon by which to overthrow your enemies. They learned wisdom in exile, and some of them were subsequently to reach high rank in their country's service.
한국의 개혁가들은 나중에 자신들의 시도가 어리석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스스로 "우리는 아주 어설펐다."라고 했다. 그들은 (그들이 한 낟) 일본 장관의 도구였으며, 봉기를 (상대의) 적을 타도하는 일종의 무기로 이용하는 것이 '정치'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망명 중에 지혜를 배웠고, 그들 중 일부는 나중에 조국을 위해 봉사하면서 높은 지위에 올랐다.
folly 판단력 부족/어리석음/어리석은 행동, 생각
revolt 반란/봉기/저항/반란을 일으키다/들고 얼어나다
overthrow 타도하다/전복시키다/타도 전복
There is a sequel to this story. The King and the Court regarded Kim Ok-kiun as the unpardonable offender. Other men might be forgiven, for after all attempted revolts were no novelties. But there was to be no forgiveness for Kim.
이 이야기의 속편이 있다. 국왕과 조정은 김옥근을 용서할 수 없는 죄인으로 간주했다. 모든 반란 시도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었기에 다른 사람들은 용서받을 수도 있었지만 김씨에게는 용서가 없었다.
unpardonable 용서할 수 없는/변명의 여지가 없는
offender 범죄자
A price was put on his head. Assassins followed him to Japan, but could find no opportunity to kill him. Then a plot was planned and he was induced to visit Shanghai. He had taken great pains to conceal his visit, but everything had been arranged ahead for him. Arriving at Shanghai he was promptly slain, and his body was carried in a Chinese war-ship to Chemulpo. It was cut up, and exhibited in different parts of the land as the body of a traitor. The mortified Japanese could do nothing at the time.
그(김옥균)의 머리에 값이 매겨졌다. 암살자들이 그를 따라 일본으로 갔지만 그를 죽일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그를 죽이려는 음모는 계획 되었고, 그는 상하이를 방문하도록 유도되었다. 그는 자신의 방문을 숨기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를 암살하기 위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는 상하이에 도착하자마자 살해당했고, 그의 시신은 중국 군함에 실려 제물포로 옮겨졌다. 그의 시체는 반역자의 시체라는 이름으로 이곳저곳에서 전시되었다. 당시 절망에 빠진 일본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mortified 굴욕감을 주다/몹시 당황하게 만들다
Years passed. The Japanese now had control of Korea. One of the last things they did, in 1910, before contemptuously pushing the old Korean Government into limbo, was to make it issue an Imperial rescript, restoring Kim Ok-kiun, Hong Yung-sik and others--although long dead--to their offices and honours, and doing reverence to their memory.[1]
수 년이 지났다. 이제 일본은 한국을 지배하게 되었다. 1910년에 옛 한국 정부를 경멸적으로 궁지에 몰아넣기 전에 그들(일본인)이 마지막으로 한일 중 하나는 왕의 칙서를 발행하여 김옥근, 홍영식 및 기타 사람들-오래 전에 죽었음에도 불구하고-을 기억하여 경의를 표하고 직위와 명예를 복위시키는 것이었다.
contemptuously 경멸하면서/모욕적으로
limbo 불확실한 상태/림보 게임/잊혀져 무시되어 불확실한 상태
rescript 교서/답서/칙서/포고령
reverence 숭배
[Footnote 1: Curiosity may be felt about my authority for many of the particulars supplied in this chapter. Accounts published by foreigners living at Seoul at the time are of use as giving current impressions, but are not wholly to be relied on for details. A very interesting official report, based on information supplied by the King, is to be found in the unpublished papers of Lieutenant George C. Foulk, U.S. Naval Attache at Seoul, which are stored in the New York Public Library. A valuable account from the Japanese point of view was found among the posthumous papers of Mr. Fukuzawa (in whose house several of the exiles lived for a time) and was published in part in the Japanese press in 1910. I learned the conspirators' side directly from one of the leading actors in the drama.]
[각주 1: 이 장에 제공된 많은 사건들의 세부 사항에 대한 권위(신빙성)에 대해 의구심이 느껴질 수 있다. 그건 당시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작성한 기록들이 당시의 상황에 대한 깊은 인상을 주지만 자세한 내용에 대한 신빙성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다. 국왕이 제공한 정보에 기초한 매우 흥미로운 공식 보고서는 뉴욕 공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주한 미 해군 무관 조지 C. 포크 중위의 미발표 문서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인의 관점에서 쓴 후쿠자와 씨(여러 명의 유배자들이 한동안 살았던 집)의 유고집에서 귀중한 기록이 발견되어 1910년 일본 언론에 일부 게재되었다. 나는 그 드라마(사건들)의 주연 배우(직접적 관계자) 중 한 사람으로부터 음모자들의 입장에 대해 알게 되었다.]
wholly 완전히/전적으로
posthumous 사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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