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이권,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카르텔이란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가진 기업들 간의 ‘경쟁 방지 또는 완화를 위한 신사협정’을 말합니다. 노동자나 농민들은 서로 단결해서 ‘조합’을 만들 수 있을 뿐 ‘카르텔’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마약 카르텔’은 마약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자들끼리의 협정이지, 마약 소비자들이나 마약원료 재배자들의 협정이 아닙니다.
카르텔의 의미를 확장하더라도 본래 의미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법률의 적용과 해석권을 독점하고 법률시장을 전면 장악한 ‘법조 카르텔’, 거대 신문과 종편들을 장악하고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 카르텔’, 의료시장을 독점하고 의대 입학 정원까지 통제하는 ‘의료 카르텔’ 등은 존재할 수 있지만, 노동자 카르텔이나 학원 강사 카르텔 같은 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또 ‘패거리’는 ‘패(牌)’를 낮잡아 부르는 말로 ‘차별과 비하, 적대의식’이 담긴 비속어입니다. 이념 팔이를 하면서 이권을 챙기는 관변 단체들이라면 ‘이권,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만, 윤 대통령이 이런 관변 단체들을 지칭한 게 아님은 분명합니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산 전체주의 세력’, ‘반국가세력’이라는 터무니없는 이름을 붙였던 윤 대통령은, 어제 그들을 다시 ‘이권,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로 규정했습니다. 차별과 비하, 적대의식이 담긴 저속한 언어를 동원한 그의 어제 연설은, 자기를 반대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라는 자기 지지세력을 향한 선동이었습니다.
그런데 ‘국민 통합의 정치’를 하지 않고 ‘편 가르기 정치’를 한다며 문재인 정권을 맹비난했던 ‘언론 카르텔’은 윤 대통령이 국민 내부에 자기 마음대로 ‘적’을 지정하고, 그 ‘적’을 타도, 타파,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저속한 언어로 표현하는데도 칭송 일색입니다.
국가 최고 통치자가 국민의 일부를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국가 공동체를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하고 어떤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지 저들이 모르지는 않을 겁니다. 저들이 윤 대통령의 저속하고 파괴적인 발언을 칭송하는 건, 이 정권이 법조 카르텔과 언론 카르텔의 제휴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언론 카르텔은 언제나 부패한 기득권 카르텔들의 동맹이자 나팔수였습니다.
윤 대통령이 ‘이권,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다’고 선언한 바로 다음날, 부산에서 어떤 사람이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목을 칼로 찔렀습니다. 목은 치명적인 신체 부위입니다. 칼이 1cm만 방향을 틀었거나 더 깊이 들어갔어도 생명을 구할 수 없는 정도였답니다. 그런데 국민의힘 집회에서 이 소식을 들은 당원 일부가 ‘환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고, 일부는 ‘자작극’이라고 소리쳤답니다. ‘종이 칼로 자작극을 벌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친윤 유튜버도 있답니다.
사회가 퇴행하면 사람들의 심성도 퇴행합니다. 서북청년단원들이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고 나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던 장면이 다시 눈앞에 펼쳐지는 듯합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그 야만과 광기의 시대를 향해 되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젠 ‘사람답게 살지는 못할망정 짐승이 되진 맙시다’라는 호소도 때늦은 듯합니다.
짐승처럼 살지언정 악귀가 되진 맙시다.
전우용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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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이 되었으니 이런저런 글과 영상을 시청해 봤다. 근데 요즘은 TV에서 이런 종류의 신년대담을 안 하는 것 같다.
암튼... 신년이 되었다고 이런저런 영상과 글을 봐도 딱히 특별한 해법이나 희망은 없는 듯하다. 지금의 시대는 지금을 살고 있는 다수의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결과일 뿐이다.
어차피 어리석거나 우매한 사람들 및 카르텔들이 신년이 되었다고 갑자기 깨달음을 얻거나 개과천선을 할 것 같지도 않고, 갑자기 공공의 선/이익을 위해 애쓸 것 같지도 않다.
그저 한 줌의 희망이 수백의 절망보다는 낫다는 마음으로, 일상속에서 위로와 안도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을 찾아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사족: 결국 인문학이나 사회학에서 답(?)을 찾지 못하여, 생물학에서 일말의 위로를 찾았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슬픈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혹은 만들어내고 있는) 그 어떠한 제도, 이념, 교육, 시스템으로는 인간을 '선'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 생물학적인 위로는 너무 늦고, 더디게 오며, 또 너무 낮은 비율로 인간을 선하게 할 뿐이니... 인간이 선한 행위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어쩌면 그럴 까닭에 공공의 선을 위해 자신을 (완벽하지 않더라도) 희생하는 인간을 지구상의 모든 인종, 문화권에서 가장 숭고한 가치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와 같이 이제는 좀 책임의식이라던가, 혹은 부채의식같은 것을 좀 내려놔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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