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참 이상합니다. 농민들이 키운 농산물을 먹으면서 농민을 탄압하고 노동자 없으면 세상이 굴러가지도 않는데 노동자를 무시합니다.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옷 누가 만들었습니까? 이 도로 누가 깔았습니까? 저 차 누가 만들었습니까? 제가 들고 있는 응원봉 누가 만들었습니까? 모두 노동자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노동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대부분은 노동하고 살아가는 데 말입니다.
게다가 여기계신 민주노총 분들은 자신이 더 좋은 환경에서 노동하기 위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나온 사람들 아닙니까? 권력과 자본을 가진 이들이 노동자를 착취하게 만드는 프레임에 저는 더는 속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민이고, 노동자입니다!"
나 역시 오랜 시간 질문했던 물음입니다. 정말 왜 그럴까요...?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비전문가인 나의 개인적 추측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전근대성'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부자, 양반 혹은 귀족 혹은 관리들, 교수, 박사, 작가, 법조인, 의료인, 지식인(?) 혹은 소위 '엘리트'라고 일컫는 사람들은 나보다/대중들 보다 더 우월하고, 더 현명하고, 더 혜안이 깊으며, 더 똑똑하다고 믿으며 그들에게 대중들은 가르침을 받거나, 지배 혹은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믿고,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는 식의 봉건적 전대적 의식, 인식, 관념, 관습, 문화, 믿음 등이 여전히 다수 대중들의 DNA(?)에 뿌리 깊게 남아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그런 엘리트들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 열등함을 자처하며) 스스로 자존감을 갖춘 동등하고 주체적인 인간이 되지 못한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한 전근대적 믿음의 연장선에서 여전히 다수의 우리는/대중은/시민은/국민은 2025년 오늘날에도 충효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조상과 제사를 고집하고 있으며, 인간 공경이 아닌 어른 공경 등의 전근대적 관념에 갇혀 있지 않은가. 이건 단지 문화적 측면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종교적 믿음과도 같다.
모든 변화에는 과도기가 있다. 그 과도기 시간 동안은 어쩔 수 없이 과거의 것들과 충돌을 겪을 수밖에 없다. 때로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각자 어떻게 살 것인지를 판단 선택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은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세상은 본래 이상한 것이라고 여기며 순응하고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마치 물소가 사자를 이길 수 없듯... 어쩌면 대중 혹은 백성 혹은 시민들은 결코 기득권, 아니 동등한 인간이 될 수 없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어찌해야 할까...? 글쎄요... 정답은 없다. 가능하면 전근대적 충효사상, 삼강오륜, 장유유서, 유교주의, 성리학적 가치관 세계관을 너무 맹신하지 말라는 것이다.
스스로를 믿고 각자의 선택으로 삶을 살아라. 항상 배우고 익히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겸손하되 스스로 열등한 인간이라 규정하지 말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비교하지 말고, 타인에게 혹은 가족에게 의지하지 말고, 기대지도 말고, 주체적 주체로 스스로 생각하고, 깊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라.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말이다.
또한 양반 혹은 귀족 혹은 관리들, 교수, 박사, 작가, 법조인, 의료인, 지식인(?), 전문직 혹은 소위 '엘리트'라고 일컫는 사람들에 대한 맹신적 권위 부여를 중단하라. 그들은 우리/시민/대중들 보다 우월하지 않다. 그들도 우리/시민/대중들과 마찬가지로 철학적으로 빈곤하고 정서적으로 나약함을 인식하기 바란다.
첨언: 위와 같은 삶의 방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절대적 조건이 있다. 적어도 타인에게 물리적 유해를 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타인에게 가해지는 정신적 유해함은 나도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물론 ‘말’과 ‘글’로야 뭔 소리를 못하겠나... 실천이 어렵지... 나 역시 제대로 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혹은 글로 나마 발언하고 써봐야 한다. 그래야 생각의 기회를 더 갖게 되고, 실천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