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만약이라는 약  -  오은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났더라면

지하철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바지에 커피를 쏟지 않았더라면

승강기 문을 급하게 닫지 않았더라면

내가

시인이 되지 않았다면

채우기보다 비우기를 좋아했다면

대화보다 침묵을 좋아했다면

국어사전보다 그림책을 좋아했다면

새벽보다 아침을 더 좋아했다면

무작정 외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그날 그 시각 거기에 있지 않았다면

너를 마주치지 않았다면

그 말을 끝끝내 꺼내지 않았더라면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닦아주는 데 익숙했다면

뒤를 돌아보는 것보다 앞을 내다보는 데 능숙했다면

만약으로 시작되는 문장으로

하루하루를 열고 닫지 않았다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일어나니 아침이었다

햇빛이 들고

바람이 불고

읽다 만 책이 내 옆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만약 내가

어젯밤에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

세상에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 아니 자주 그 "만약"이 아쉬울때가 있다.

만약 내가 더 똑똑하고 현명했다면

만약 내가 더 부자였다면

만약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