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14, 2018

한국 난민 문제와 미국 인디언.. 난민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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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위 그림을 보면서.. 한국의 난민 문제와 더블어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보니 아메리카 인디언이야 말로 유럽 백인들을 난민으로 받아줬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어떻게 되었나.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처음 미국으로 처음 건너간 사람들은 유럽에서 종교적 박해를 받던 청도교인들이었다. 유럽에서 박해를 받던 그들은 박해를 피해 아메리카로 건너간 그야말로 "난민"이었다.
그야말로 빈털터리로 거지처럼 건너온 그 난민들을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옥수수를 나눠주고, 농사법을 알려주고, 심지어 농사지으라고 땅도 나눠주며 따뜻하게 환영해 주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인디언들은 땅을 소유한다는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선의를 베풀어준 인디언들에게 난민들은 고맙다고 족장에게 담배를 선물로 주고 안경도 주고 친하게 잘 지냈다. 그러자 더 많은 유럽 난민들이 너도 나도 아메리카로 몰려오게 된다. 아메리카라는 곳이 이주해서 살기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났을 법도 하다.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세가 불려진 유럽 난민들은 이제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숫자가 늘어나고 세력이 커진 그 유럽 난민(?)들은.. 훗날 약 1500만 명의 인디언을 죽었다고 하는데.. 비공식적으로 4천만 명 정도를 죽였다고도 한다.
이 미국의 탄생 배경은 중요한 은유적 시사점을 갖는 것 같다. 그 건.. 인류애를 발해한 난민의 문제에서 "선의"가 꼭 "선의"로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막연한 온정주의, 감상주의 등이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선의가 선의로 돌아오지 않고 악의로 돌아올 때.. 감상주의, 온정 주의자, 박애주의자, 인권주의자들은 그 악의를 어떻게 방어할 것이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돌아오는 악의도 박애주의 정신으로 그 '악의' 조차 수용할 것인가?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과연 악의를 박애주의자들은 어떻게 막을 것인가? 악의에 대해 집총을 거부하고 저항을 거부할 것인가?

작금의 시대에 과도한 배타주의는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한 온정주의, 감상주의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 온정주의, 감상주의는 절대 "선"하며 따라서 그 "선"의 행함에 대한 결과 역시 "선"하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임을 온정 주의자, 감상주의자들은 인식해야 한다. 

이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대단히 난해하고 어려운 문제다. 따라서 배척 주의자도, 감상주의자도 많은 생각과 사고를 다양하고 폭넓게 해야 한다. 단순히 고상한 척 감상과 온정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난민은 정착하게 된 그 나라안에서 본래 거주자들 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무슨 보답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인류애를 발휘하여 난민을 받아주었다면 난민 역시 인류애를 발휘하여 정착하게 된 그 나라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 나라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난민이라고 하면서도 보편적이지 않은 자신들의 전근대적 종교를 핑계로 토착 문화나 가치를 훼손하거나 그로인해 토착민들과 충돌을 일으킨다면.. 누가 난민에게 선베풀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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