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21, 2015

광화문 폭력시위 vs 경찰 과잉대응 뉴스를 보며..국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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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의무-광화문 시위 뉴스를 보며..

지난 11월 14일 있었던 광화문 광장 집회는 국정교과서 반대, 노동 개혁, 비정규직차별처폐 등을 이유로 시위신고를 하고 농민, 민노총, 일반시민등이 집회를 했다. 다양한 이유로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집회를 하던 사람들이 국정화 광화문광장에 모여 역사교과서국정화 반대집회를 위해 광화문광장에 가려 했고 광화문 광장은 조례상 집회가 불가인 관계로.. 경찰은 광화문 광장으로 진입하려는 집회는 불법임으로 경찰은 시위대를 버스로 막았고, 시위대는 그것을 뚫고자하는 과정에서 쇠파이프와 물대포 등 상호간에 폭력이 오고갔다.

시위를 하는 군중과 그것을 막는 공공력 사이에 폭력이 발생했다면 그것의 잘잘못 책임을 두 집단에게 어떻게 분해하고 물어야할까? 아니 과연 그 시시비비는 가려질 수 있을까?

어찌보면 닭이 먼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의 질문처럼 모호하고 난해해 보인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본다면 시시비비 혹은 책임의 중대성을 어떻게 구분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외국에서는 경찰이 총을 쏴 시민 죽여도 90%가 정당하다는 식의 저급하고도 단순 무식한 아메바적 단언은 너무 저급한 것 같으니 접어두자. 또한 이런저런 이유로 광화문광장에서의 시위가 합법이냐 불법이냐도 일단 접어두자.

그러나 그보다 먼저 우리가 인식해야할 것이 있다. 그것은 국가(공권력으로 대변되는)와 시민(주권으로 대변되는 국민) 사이의 관계 또는 이해다. 국가(공권력)와 국민(시민)은 과연 어떤 관계이며 서로가 각각에게 있어 그 의무와 권리는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인식해야 한다. 그런 후에 이번 광화문 시위에서 일어난 공권력과 시위대 사이의 잘잘못에 대해, 또 책임등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순서인 듯 하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국가는 국민을 통제하는 권리 혹은 의무가 있는가? 있다면 어떻게 그것을 사용해야 할까? 국민은 국가를 통제할 권리 또는 의무가 있는가? 있다면 어떻게 행사해야하는가? 이 모호하게 보이고, 난해하게 보이는 질문이 우선되지 않으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아래의 기사를 참조하고자 한다. 괜찮은 글인 것 같아서 펌해왔다. 아래의 글을 읽고.. 과연 국가란 무엇이며 그 책임과 의무 또는 권리는 무엇인지 생각해봄과 동시에 시민 혹은 대중 혹은 민중이라 칭해지는 국민이란 무엇인지, 또 그 책임과 의무 또는 권리가 무엇인지 생각한다면 지난 주말에 있었던 광화문 시위사태 뿐 아니라..작금의 사회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와 국민간의 사회적 충돌에 대해 조금이나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보다나은 이해를 위해 지난 주말(2015.11.14일)에 있었던 광화문 시위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잠시 검색하여 살펴보기 바란다. 그럼 대충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가 어떻게 된 것인지 대략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먼저 잘못을 했는지, 누가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이 더 큰 것인지..사람마다 생각하는 바는 다를 것이다. 혹자는 차벽을 세운 것은 정부를 비난하고, 혹자는 차벽을 부순 시위단체를 비난한다. 아니면 둘 다 도진개진이라고 양비론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파편적 정보만으로 어느 한쪽의 잘잘못을 단정하거나 단정하지는 말자. 어설픈 국가주의나 전체주의도 일단 옆으로 치워두자. 일단 아래의 글을 읽은 후 진지하고도 심도 있게 생각한 후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정리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이 글을 포스팅하면.. 분명 시위대의 폭력이 잘못이니 공권력의 폭력도 정당하다는 식의 어리석고 우매한 전체주의적, 국가주의적 이견/반론을 (포스팅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생각해보지도 않고) 펴며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데.. 글쎄..그런 류의 사람들은 일종의 노예근성에 찌든 인식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 같아 보이지만.. 어쨋거나 개인적으로 그런 류의 견해는 작금의 시대에서 지양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무지한 그들에게 보다 성숙된 의식의 피력이나.. 왜 공권력의 폭력에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지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가의 의무

개인, 즉 사인(私人)은 제가 속한 국가의 정책에 대하여 반대를 할 권리가 있다. 국가를 사랑하지 않거나 더 나아가 미워할 자유도 있고. 반면 국가에겐 그 국민을 미워할 권리는 물론이고 자유도 없다. 개인은 사람이므로 권리와 의무가 있지만, 국가는 사람이 아닌 거다. 그러니 국가에겐 권리가 없다. 그러나 법에 의해 주어진 강력한 권한(權限)이 있는 거고 그 권한이 매우 강력하므로 법에 의해 통제를 받는다. 통제를 받아야만 한다.

국가를 대신하여 공권력을 행사하는 개개인은 그 사상의 차이라거나 임무의 어려움이라거나 순간적 공포라거나 기타 여러 사유로 눈앞의 다른 개개인을 미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권력을 행사하는 개개인이 눈앞의 개개인을 상대로 개인으로서나 집단으로서 법에 의하여 부여 받은 이상의 행위나 정해진 절차를 위배하는 행위를 할 수는 없다. 그것이 공권력 권한의 한계이다. 공권력의 주체, 여기서는 경찰이 법에 의하여 부여 받은 이상의 행위를 하거나 정해진 절차를 넘어서는 행위를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법이므로 다른 공권력 행사 주체는 이와 같은 위법행위를 목격했을 때 이를 막아야 할 의무가 있다.

국가는 제 국민을, 그가 내뱉는 주장이 어떤 것이라고 하더라도 보호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의무다. 국가는 오로지 국민이 법에 위반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에만 법에 의거해 법에 정해진 만큼만 처벌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국민의 주장 및 행위가 법에 어긋나는 경우 국민은 법에 정해진 절차에 의거하여 그만큼 처벌받기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이게 현대 민주주의 법치국가가 매우 기초적인 개념으로 상정하고 있는 국가와 국민의 관계다. 매우 뻔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길게 썼는데 무슨 얘기냐면, 국민은 시위를 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는 거다. 그런데 시위에 불법적인 양상이 있다면 그래서 경찰이 이를 막았어야 한다면 적법하고 적절하게 막는 선에서 그쳐야 하고, 그러나 시위를 막으려 하는 와중에도 경찰은 시위 참가자를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는 얘기다. 위법한 행위에 대한 처벌은 차후의 문제고 적법절차에 따라야만 하는 문제다.

차벽 설치는 그래, 해당 시위에 의하여 임박한 위험이 명백 현존하고 그 차벽 설치 이외에는 효과적으로 위험을 차단할 수가 없을 정도로 큰 위험이어서(2011년 헌재 결정), 다시 말하면 시위가 너무너무 겁나 위험하고 도저히 차벽이 아니면 광화문을 보호할 수 없는 지경이어서 그래서 위법이 아니라 우기고 있다 치고, 하여간 뭐 시위가 완전히 불법적 폭력적이었다 치고, 그래서 물대포도 쏘고 하물며 그 물에 캡사이신도 섞었다고 치고, 그 모든 안전수칙을 무시한 것도 시위대가 너무 겁나고 무서워서 비이성적인 상황이었다고 치고, 쓰러져서 더 이상 항거를 못 하는 국민에게 계속해서 물대포를 쏘는 건 대체 어떤 논리로 허용이 되나?

가만히 등을 돌리고 머리로 등으로 물대포를 맞고 있는 저 사람에게서 경찰은 어떤 현존하고 중대한 피할 수 없는 위협을 느끼는 건가? 쓰러진 사람에게 계속하여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쏘는 행위에서, 무저항의 사람에게 역시 물대포를 직사하는 행위에서, 저 물대포를 쏘는 경찰의 전혀 통제되지 않는, 그야말로 용납이 되지 않을 정도의 악의가 느껴진다. 그런 개인의 감정을 통제하라고 복무 수칙이 있고 상하 조직이 있는 거다. 시위를 원천봉쇄하지 못하는 것이 공권력이 무너진 것이 아니다. 이런 무도한 짓거리를 하는 것이 공권력이 무너진 것이다.

쓰러진 피해자에 물대포를 계속 발사한 행위에 대하여는 서울지방경찰청장은 물대포를 쏜 경찰관이 피해자가 넘어진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그대로 믿는다면 이는 업무상과실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과실이 어떻게 하여 발생한 것인지, 이를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인지, 진정 과실인지 기타를 조사하고 책임이 있는 자들 역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법무장관은 불법 시위에 대하여 엄단하겠다고 했다. 국민이 불법을 행했다면 법에 의거하여 처벌받아야 한다. 공권력도 마찬가지다. 법무장관은 공권력의 의무 위반 및 불법적인 행사에 대하여 역시 철저히 조사하고 처벌할 의지를 밝혀야만 한다. 법치국가라면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그 권한을 부당하거나 불법적으로 남용하는 공권력은 불법행위를 하는 사인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이고 국가의 궁극적 목적은 그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김세정 / 런던 GRM Law 변호사.
출처:  http://www.huffingtonpost.kr/sejeoung-kim/story_b_8571084.html?utm_hp_ref=korea


경찰 물대포 아닌 시위대 청년 때문일 수도..이젠 왜곡

당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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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의 글이지만..위의 두 글과 영상등을 본 후 광화문 시위집회와 관련된 이런저런 논란들을 보면서 분명 우리는 슬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함을 깨닫게 된다. 또한 글쓴이께서는 대한민국이나 대한국민의 수준을 너무 높게 보신듯하다. 대한민국에 좀 더 수준있는 - 글쓴이가 말하는 것을 알고 느낄만한 - 인식력을 가진 정부와 대중, 시민, 국민, 사람들이 많았다면 애초에 사고가 없었을테고 그 처리과정이 결과도 다를테니 말이다.
어쨋건..위의 글들을 통해 이런 생각이 든다. 예컨데 비록 국민/시민이 불법 폭력적이라도 국가/공권력이 국민/시민에게 불법 폭력적이여서는 안된다는 생각 말이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국가/공권력은 무력의 힘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지만.. 국민/시민은 국가/공권력만큼 무력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광화문 시위의 시위형태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시위형태 역시 바껴야 한다. 지금은 군사독재 시절이 아니다. 이유야 어찌됐건 국민이 선출한 정부를 폭력시위로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기에는 이제 설득력이 약해질 수 밖에없다. 작금의 정부를 뽑아준 것은 다름 국민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동정하지 않는다

이번 광화문 시위에서 공권력이나 시위대 모두가 폭력적이였다면..그런 폭력적 행위에 대한 반성의 필요성이 공권력쪽에 더 있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이런 것이다. 만약 홍길동이라는 사람이 어떤 불법적 행동(?)을 했다고 경찰이 불법적으로 홍길동에게 과잉응징 하거나 불법적 공무수행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임을 기본적으로 자각하고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그런 이유로 공적업무/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무원, 경찰같은 공적업무를 수행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그 직업을 선택하기전에 공적업무라는 것에 대해서 심사숙고해야 한다. 왜냐하면 공적업무는 단지 안정적 일자리 또는 따박따박 월급나오는 철가방이라는 의미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치르고, 현재 공무원인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과연 몇사람이나 공적업무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 혹은 자세나 태도등에 대해 사회적 철학적으로 생각하고 고민을 할까..? 광화문의 시위를 IS에 비유했다는 어떤 정치인의 말은 대한민국의 공직에 있는,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전근대적 구시대적 관념과 시대를 읽을 줄 아는 인식능력의 부재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리하여 전근대적 국가주의나 전체주의적 관념에 익숙해져 있는 다수의 대한민국의 늙은세대를 본다. 왜 늙은 사람들일수록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적 인식을 더욱 강하게 갖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그런 시대를 살아왔으니..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인식과 생각이 작금의 시대에, 미래의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고 믿는 까닭에.. 난 그들의 그러한 국가주의나 전체주의적 관념과 인식, 생각들을 추종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혐오할 뿐이다. 더블어 미안하지만 난 혐오하는 의식을 가진 사람을 존경이나 곤경할 수가 없다. 적어도 심리적으로는 말이다.
물론 나도 안다..그렇다고 대한민국이 어느날 갑자기 변하지 않으리나는 것을.. 여전히 대한민국에서는 잘먹고 잘살려면 보수적이여야한다는 걸.. 그리고 여전지 대한민국의 구성원 중 많은 사람들은 전체주의와 국가주의에 빠져 있어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과 그런 그들을 곤경해야 한다는 것을.. 문제는 그것이 쉽지 않다는 거다.

남들이 죽어자빠지건 말건.. 그저 아무생각없이 잘먹고 잘싸며 그렇게 살고 싶기도 한데.. 그것도 타고나야하는 천성인지 잘 안된다. 어쩔수가 없다. 아부와 아첨도 타고나야하고, 거짓말과 구라치는 것도, 부정과 부패를 아무 거리낌없이 하는 것도 타고나야한다. 타고나지 않은채 그것들을 하려면 속이 메슥거리고 내장이 뒤틀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먹고 잘살기는 애초에 틀린 사람들이다. 소수만이 타고나는 그 내공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많지않다. 어찌보면 그야말로 빌어먹을이다. 쩝.
국가란 무엇인가

다시보는 영상..

최재천 의원 근대 입헌주의


 
아래 동영상은 영화 "쎌마"의 예고편이다. 마틴루터 킹의 일화를 영화로 만든 모양이다. 아래의 영상을 통해서 과연 진정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생각해 본다. 진정 시대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기존의 규범과 규칙 그리고 공권력에 도전하지 말고 대들지 말라는 사람들일까? 구시대의 전체주의적 국가주의적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국민은 오직 국가의 지배(혹은 공권력의 통제)속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국가주의적 믿음을 가진 사람들일까?
아니면 시대의식에 부합하며 현재를 살고..시민민주주의의 일원으로서 성숙한 의식으로 현재에서 일어나는 시대적 모순과 부조리 인식하고 부정과 부패를 지적하고 따지며, 시대에 뒤쳐진 낡은 관념과 의식(혹은 규범 등)에 문제점를 지적하며 그것을 따지고 묻고 도전하는 혹은 주장하는 사람들일까?
​킹목사 시절에도 공권력/국가에 대들지 말라는 사람들은 있었듯.. 동학혁명도, 3.1운동때도, 4.19혁명때도, 6.10민주화운동 때도..그리고 이번 광화문 시위때도 공권력에 도전하지 말라고 했던 그런 사람들이 있었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 소수의 도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발전하는 것 같다. 마틴루터 킹 목사가 다시 살아나 현재의 대한민국에 존재했다면..아마 그 역시 공권력에 도전이나 하는 좌빨 빨갱이로 취급될테니 말이다.
기껏 인터넷에서 주절주절저리는 나 같은 잉여인간은

고통을 감수하며 시대를 발전시킨 사람들에게 일종의 채무를 지니고 있는 건 아닐까..

그들을 동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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