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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8, 2026

어린 시절 형성된 아름다운 추억. / Beautiful Memories Formed in Childhood

"좋은 추억, 특히 어린 시절 가족 간의 아름다운 추억만큼 귀하고 강력하며 아이의 앞날에 유익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사람들은 교육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간직한 아름답고 신성한 추억만 한 교육은 없을 것이다.

마음속에 아름다운 추억이 하나라도 남아 있는 사람은 악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추억들을 많이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안전할 것이다."

-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중에서.


돌이켜 보면 난 어린 시절 가족 간의 아름다운 추억이 별로(혹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과거를 잘 기억하지 않는 내 성향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과거 내 부모님의 유년 시절 혹은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아름다운 기억을 남길 만큼 형편이나 시대가 여의치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원망 같은 걸 한 적은 없다. 그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고사는 것이 고단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악에 빠지거나, 쓰레기 혹은 양아치가 안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비록 내가 사려 및 배려가 깊고, 고상하고, 품격 있고, 지적인 사람이 된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난 그냥 그럭저럭 무난하게 일생을 살았고, 큰 아픔이나 고통 혹은 역경 없이 살아온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쥐뿔 내세울 것도, 가진 것도, 그럴듯한 배경, 권력 같은 것도 없지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그때그때 순간을 즐기거나 견디면서 살았던 것이 그래도 다행이라 여긴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나에게도 저 깊은 내면에 잠들어 있는 아름다운 가족 간의 추억, 혹은 기억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English]


Beautiful Memories Formed in Childhood

“Remember this: there is nothing more precious, powerful, and beneficial for a child’s future than good memories—especially the beautiful memories of family in childhood.

People say many things about education. But no education can compare to the sacred and beautiful memories kept from childhood.

Anyone who carries even one beautiful memory in their heart will not fall into evil. And if a person lives with many such memories, they will remain safe until the very end of their life.”

—From Dostoevsky’s The Brothers Karamazov

Looking back, I realize I don’t have many (or perhaps any) beautiful childhood family memories. Partly it’s because I don’t tend to remember the past well, but also because my parents’ own childhood and youth were lived in times and circumstances that didn’t allow for such memories to be created. Still, I never resented them for it—back then, most people lived hard lives just trying to get by.

Even so, I’m grateful that I didn’t fall into evil, or become a delinquent or a thug. I may not have grown into someone especially thoughtful, refined, dignified, or intellectual, but at least I’ve lived a fairly ordinary life. I’m thankful that I’ve gotten through life without major pain, suffering, or hardship. I have nothing much to boast of—no wealth, no impressive background, no power—but whether I had something or not, whether I was happy or sad, I managed to enjoy or endure each moment as it came. And for that, I feel fortunate.

Perhaps, deep down, there are beautiful family memories within me that I simply cannot recall—memories lying dormant in the depths of my heart.

August 15, 2026

학교 한 줄...

 https://www.instagram.com/p/DbGPW6Vj3Sj/?igsh=ZnY3MG42dGNxcXpz


모든 직업은 저마다의 고충이 있습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을 우리는 쉽게 판단하곤 합니다. 확실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노력과 책임이 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당신을 잘 모르고,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했을 것이고, 많은 책임을 견디고 버텨냈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고맙다는 말을 자주 전해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덕분에 내 하루가 평온합니다.


젊었을 때는 좋은 글을 봐도, 그냥 그런가 보다 시큰둥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아니 나이가 들고 늙어갈수록 좋은 글을 읽으면 예전보다 더 감동을 받는 것 같다. 물론 한편에서는 냉소적 현실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을 글을 자주 보고 싶고, 자주 보고 되새겨 보려 한다. 가끔 빠르게 훑어보는 SNS의 사진과 짧은 영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무슨 세상의 종말 혹은 세상이 마치 약육강식이나 시궁창 같은 일들만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마치 '둠서칭(doom searching)'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와중에 아주 가끔 만나게 되는 좋은 글, 좋은 시는 그야말로 정화수같이 나를 일깨운다. 세상은 잘 드러나지 않는 선량한 사람들이 지켜간다는 것을 상기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상과 현실에는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사과는 인간성을 악마로부터 지키는 구원의 방책...

 30여 년 전, 사실상의 ‘노인대학’이라고 해도 좋을 ‘시민대학’ 학생들을 인솔하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답사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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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재현실 등을 들러본 후 나와 잠시 쉬는 사이에 한 노인이 말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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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놈들, 참 악랄한 놈들이야. 사람을 저렇게 고문하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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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심상하게 대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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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군사독재 시절까지도 고문은 계속됐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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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그는 버럭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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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안 하고 빨갱이를 어떻게 잡아? 당신 빨갱이야?” 그의 극단적인 인지부조화에 문자 그대로 말문이 막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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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서 벗어난 후 그의 지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귀띔해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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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퇴직 경찰이에요. 이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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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기술자로 유명한 전 경감 이근안이 죽었습니다. 그는 고문 피해자들에게 끝내 사과하지 않았을뿐더러, 당시 자기의 반인간적 만행이 ‘애국’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자기가 ‘애국자’라고 확신했을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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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 직후 모든 죄는 자기에게 있으니 부하들은 용서해 달라고 훌쩍거렸던 전 707 특임 단장 김현태는 요즘 ‘계엄은 정당했으며, 자기도 옳은 일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계엄 직후의 그는 자기 잘못을 인지했던 것으로 보이나, 요즘의 그에게선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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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자기 합리화’의 유혹을 떨치기는 어렵습니다. 자기 ‘악행’을 합리화하려다 끝내 ‘악마의 논리’에 빠져드는 사람이 생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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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자기 잘못을 깨닫자마자 사과하는 건 상대에 대한 굴복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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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자기 인간성을 악마로부터 지키는 ‘구원의 방책’입니다.

https://www.facebook.com/100001868961823/posts/34514605141518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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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이근안은 죽어서도 그의 행위가 애국이라고 믿었을 것이고, 특임 단장 김현태 역시 윤석열의 계엄은 정당했으며, 자기도 옳은 일을 했다고 믿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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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본래 그렇다. 지금 현재 시점에서 말은 고상한 척, 품격 있는 척, 그럴듯하게 할 수 있지만, 막상 어떤 시스템, 집단, 조직, 체재, 국가, 사회 등에게 반항하거나 저항해야 할 일이 나에게 닥치거나 생기면 회피하거나, 외면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자기 합리화하기 마련이다. 어쩌면 그것은 일종의 인간 본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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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나에게 닥치거나 경험하기 전에는 악행에 어떻게 대처할지 아무도 모른다. 인간의 역사를 지나온 과거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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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간의 이성의 인간이다. 본능만을 쫓는 인간은 이성적 인간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다. 아니 어쩌면 포함시켜서는 안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성적 인간은 (지식이 아닌) 교육으로 이룩되어진다. 하지만 현재, 지식적 인간이 더 각광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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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인간의 역사 혹은 평가라는 것이 지나온 과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인간을, 역사를 꼭 겪어보고, 경험해 보고, 지나봐야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는 알 수가 없으니, 현재의 시점에서 각자 최선의 행태를 취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위선적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다고 악행을 권장, 정당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지구상의 그 어떤 문화/국사/사회에서도 악행을 권장, 정당화하는 교육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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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란, 깨닫는 것이란, 무언가를 인식하고 안 다는 것은 그래서 매우 어려운 것이다. 타인에게 사과를 하는 행위는 인간의 본성이라기보다는 교육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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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생수에 사라진 양심…“10병씩 가져가요”

https://ichannela.com/news/detail/000000541403.do




[english]

Apology: A Safeguard Against the Devil

About thirty years ago, I led a group of students from what could be called a “citizens’ college”—in truth, more like a “college for the elderly”—on a visit to the Seodaemun Prison History Hall.

After touring the torture reenactment rooms, we stepped outside to rest for a moment. An elderly man approached me and said:

“The Japanese bastards, truly vicious. To torture people like that…”

I casually replied:

“Indeed. But torture continued even during the military dictatorship, didn’t it?”

At that, he suddenly flared up:

“How else do you catch communists without torture? Are you a communist?”

His extreme cognitive dissonance left me literally speechless.

Later, someone who seemed to be his acquaintance whispered to me:

“He’s a retired policeman. Please understand.”

The infamous former police inspector Lee Geun-an, known as a torture technician, has died. He never apologized to his victims, insisting instead that his inhumane acts were “patriotism.” He may well have truly believed he was a patriot.

Similarly, Kim Hyun-tae, former commander of the 707 Special Mission Unit, who wept after the December 12 coup saying all blame lay with him and begging forgiveness for his men, now claims that martial law was justified and that he too did the right thing. At the time, he seemed aware of his wrongdoing, but today that awareness is nowhere to be found.

It is difficult for people to resist the temptation of self-justification. In trying to rationalize their own misdeeds, some fall into the “logic of the devil.”

That is why apologizing the moment one realizes a mistake is not an act of surrender to others. Apology is the safeguard that protects one’s humanity from the devil.

I can say with certainty: Lee Geun-an likely died believing his actions were patriotic, and Kim Hyun-tae likely still believes that Yoon Suk-yeol’s martial law was justified and that he himself was right.

Human beings are like that. In the present moment, we can speak lofty words, pretend to be dignified, and sound convincing. But when faced with the need to resist a system, an organization, a regime, or society itself, most people avoid, ignore, or—if neither is possible—resort to self-justification. Perhaps this is a kind of human instinct.

In truth, until one personally experiences such a situation, no one knows how they will respond to evil. That is the lesson of history.

Yet humans are rational beings. Those who follow only instinct cannot be counted among rational humans—perhaps they should not be included at all. Rational humanity is achieved not through knowledge but through education. Today, however, it is the “knowledgeable human” who is more celebrated.

History and evaluation are built on the past, but that does not mean one must personally experience evil to judge it. The future is unknowable, so in the present each person must act as best they can—even if that appears hypocritical. But evil can never be encouraged or justified. No culture, nation, or society on earth teaches that evil is acceptable.

Education, awareness, and recognition are therefore profoundly difficult. The act of apologizing to another is not a natural instinct but more likely the product of education.

Vanished Conscience Over Free Bottled Water… “People take 10 bottles at a time.”

July 11, 2026

여름 - 김수현

 몸에 감기는 모든 공기가

무거웠던 밤

회사에서 해고당한

친구의 등을 말없이 토닥였다

친구는 곧 죽을 매미처럼 울었다.

​

다리 위로 지나는 자동차 소리에

어디 있는지 모를 풀벌레의 울음은

가끔 묻히긴 했어도

강가 어딘가에서

꿋꿋이 울었다 살아 있다고

​

빛 하나도 없던 밤

가로등이 깜빡이는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며

친구는 누군가의 별이 되겠다고

이 별을 떠났다.

​

가족도 없는 친구의 자취방에서

달랑 박스 하나를 들고 나왔을 때

친구가 살아 온 인생을 생각했다.

​

마당에 떨어져 배를 내보이는

매미는 더이상 울지 않았다

세상에 나오기 위해 힘 쏟다

울고만 가는 생을 생각했다.

​


참 희얀한 일이다. 요즘 들어 '좋은 글'처럼 읽히는 글들이 모두 죽음 혹은 사망과 관련된 주제의 글인 것 같다.

​

일부러 그런 글들을 찾아보는 것도 아닌데, 정말 우연히 읽게 되는 글들이 모두 누군가의 사망과 관련이 있다.

​

우린 모두 세상에 나와, 온 힘을 쏟고, 또 울고 웃다가... 결국 허망하게 가는 생을 사는 존재일 뿐이다. 그렇다고 삶이 온전히 허무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생도 아니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

그래도 지금 현재 살아가는 사람, 살고 있는 사람,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은 온 힘을 쏟으며 살아야 한다. 울고 웃으며 살아야 한다. 인간의 생이 허망하고 덧없다는 말은 이미 살아본 사람들의 회환에 젖은 넋두리일 뿐이니 말이다.

​

근데... 회사에서 해고 당했다고 너무 슬퍼하지는 말고, 더더욱 죽지는 말 것! (사람마다 생각하고 느끼는 정도가 다르겠지만) 고작 회사에서 해고 당했다고 생을 포기하는 건... 너무 낭만없어 보이고, 좀 모양빠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살아보면 또 살아지는 것이 생이고 삶이다. 빌어먹을 지언정 한 인생 살아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