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30, 2016

현대판 노예..


노예가 노예로서의 삶에 너무 익숙해지면 놀랍게도 자신의 다리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서로 자랑하기 시작한다. 어느 쪽의 쇠사슬이 빛나는가, 더 무거운가 등… 그리고 쇠사슬에 묶여 있지 않은 자유인을 비웃기까지 한다. 하지만 노예들을 묶고 있는 것은 사실 한 줄의 쇠사슬에 불과하다. 그리고 노예는 어디까지나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의 노예는, 자유인이 힘에 의해 정복되어 어쩔 수 없이 노예가 되어 버렸다. 그들은 일부 특혜를 받거나 한 자를 제외하면 노예가 되더라도 결코 그 정신의 자유까지도 양도하지는 않았다. 그 혈통을 자랑하고, 선조들이 구축한 문명의 위대함을 잊지 않은 채, 빈틈만 생기면 도망쳤다. 혹은 반란을 일으키거나, 노동으로 단련된 강인한 육체로 살찐 주인을 희생의 제물로 삼았다.
그러나 현대의 노예는 스스로 노예의 옷을 입고 굴욕의 끈을 휘감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랍게도, 현대의 노예는 스스로가 노예라는 자각이 없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노예인 것을 스스로의 유일한 자랑거리로 삼기까지 한다.
- 극작가 리로이 존스(LeRoi Jones), 1968년 뉴욕 할렘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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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있었던 뉴스, 민중은 개, 돼지라는 말이 오르네..
위 글을 읽으면서 문득.. 무언가 인식한다는 것이 꼭 행복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인간의 존엄과 자아, 그리고 자유, 정의, 박애 혹은 인간애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어떤 사람이 그런 인간 존엄과 가치를 인식하고, 자아를 인식하고, 정의와 자유.. 박애 같은 것을 인식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통이다.
어찌 보면.. 무언가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 즉 그저 먹고 싸는 것이 "전부"라고 인식하는 노예적(혹은 동물적) 인간이 가장 행복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한 인간 상태를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논쟁이겠지만 말이다.

어떤 집에 살고 무슨 차를 소유하고 있느냐를 끝없이 비교하며 남들처럼 혹은 남들만큼 이란 말에 얽매여 더 굵은 쇠사슬을 열망하는 나는.. 자각 능력뿐 아니라 지각 능력도 상실한 노예인가..? 나는 인간답게 잘 살고 있는 것인가..?

대한민국과 대한 국민의 속성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걸까.. 이 박 터지고 빌어먹을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먹고 살​아야 하고, 먹여 살려야 한다는 숙명 앞에 너무 쉽게 굴욕의 끈을 휘감고 있는 건 아닌지.. ​쩝. 내 삶에 뭔가 반란(?)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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