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돕지 말라고 가르치는 나라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4939876&memberNo=11880830&vType=VER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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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마비로 쓰러진 택시기사를 골프약속 때문에 모른척 지나친 어떤 사람으로 말미암아 착한 사마리안 법을 만드는 것에 대한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개인적으로 법제화에는 좀 반대하는 편이지만 쉽지 않은 논제인 것 같다.
이성적으로는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감정적으로는 찬성쪽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내 입장이 좀 모호하다는 거다. 과연 무엇이 정답일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내가 반대하고픈 이유는 이게 대단히 모호하다는 거다. 윤리나 도덕은 사람마다, 상황따라 다~드르기 때문에 어떤 기준에 의해 계량화 또는 계측화하는 것이 거의, 아니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러한 윤리와 도덕을 법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계량, 계측한 후 벌을 내리겠다는 건데.. 이게 말처럼 그리 쉽지가 않아 보인다.
또한 선행을 할 때의 그 순간상황이 선함을 유발하는 상황인지, 악을 유발하는 상황인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의 모호성이다.(ex: 경찰이 범인을 잡기위해 격투를 벌인다. 경찰의 격투가 범인의 격토를 제압하는 상황일 때 지나가던 사마라아인을 제압당하는 범인을 도와주었고 그로 인해 범인이 도주할 수 있었다면 그 사마라아인을 어떻게 처우(?)하는 것이 좋을까?)
대한민국이라는 곳에 살면서.. 우리는 그동안 경험을 통해 착한 사마리아인이 였을 때 감당하게 되는 부조리와 모순을 경험해왔다. 즉 그동안 대한민국에서는 대체로 선한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상은 커녕 불이익이 주어졌던 것이다.
초인종 의인 안치범
그동안 대한민국에서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해 주거나 도와줬음에도 그에 따른 2차 피해가 위기의 주체 당사자들이 아니라 제3자, 즉 착한 사마리아인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며 도움을 받았던 위기의 주체는 그런 상황에 빠진 착한 사마리안인을 외면하고, 더구나 그 외면에 대한 처벌을 당하지 않는다는 모순적 환경이 더 많았다.
사회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 시민단체같은 이른바 타인을 위해 일하거나 노력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타인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진보라고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종북 좌빨로 치부하고 있지 않은가. 부당한 것에 대한 집회나 시위를 하면 (비록 그것이 추후 다수에게 이익이 되더라도 당장은) 그로 인한 조금의 불편도 감수하지 못하는 사람들, 갑질을 밥 먹듯 일삼는 정치인이나 기업등을 여전히 애용하고 또 뽑아주지는 것은 착한 사마라아인 법이 만들어 지더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다 피해를 당하는 것은 단지 범죄의 상황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일제시대때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과 현재 그 후손들을 생각해 봐도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와 법 그리고 정책은 착한 사마라안 법을 만들만큼의 자격이나 수준이 아직 미약한 것 같다.
어디 그 뿐인가.. 국가유공자, 소방관, 순직경찰 등의 경우에도 착한 사마라안들이 황당한 시츄에이션에 빠지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그런 사회환경을 지닌 사회가 과연 착한 사마리안 법이라는 것을 제대로 만들지 의문이며, 행여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제대로 적용, 운영될지도 의문이다. 물론 그럼으로 더욱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필요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과연 제대로 작동을 할지 의구심이 생긴다.
주제가 난해하다 보니 말이 길어진다. 폐일언하고.. 이 논제의 핵심은 모호성을 극복할 수 있는가 와 과연 도덕을 성문화시켜 법제화 시키고 운영하는 것이 합당할까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문제는 그 논제가 대단히 난해한 주제라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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