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3, 2017

기계판정, 경기장에서 심판은 전지전능해야하나..심판의 권위..



위 사진은 모두 같은 장명이다.
참고로 해당 투구는 스트라이크 판정이 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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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재미있는 주제에 대해 논해보고자 하는데.. 다름 아닌 어떤 스포츠 경기에서 심판이란 무엇인지, 기계 판정으로 대처하는 것은 어떤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스포츠 경기에서 기계 판정 도입을 하는 게 좋다는 혹은 맞다는 게 내 생각이다.(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개인적으로..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 "심판의 (오심이라도) 결정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라는 식의 주장/믿음/말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런 방식의 주장/생각이 꽤 전근대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며.. 그런 전근대성을 주입시켜 대중을 우민화시키고 보수적 운명론적 태도를 취하도록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미약했던 시절에 무당을 믿는 것과 같다. 즉,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을 시대에 어쩔 수 없이 유효했던 믿음인 것이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은 무당도 과학의 일부라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 과학과 기술이 덜 발달된 시절에는 그런 식의 말들이 대중을 사로잡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 그리고 곧 찾아올 미래에는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생각이자 믿음이다.

혹자는 기계 판정이 도입되면 스포츠 경기가 재미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전근대적 시야와 시각을 가진 그 자신이 그 경기를 전근대적 프레임 혹은 시각으로만 해석하려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과 함께 새로운 규칙이 적용되면 그에 따라 새로운 재미가 생기게 마련인데 말이다.

새로운 기술과 규칙은 새로운 경기의 진행 방식을 찾아낼 것이며 관중은 그 새로운 방식에서 또 새로운 재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유선 공중전화의 사라짐을 아쉬워한 사람들은 공중전화가 없어지면 그에 따른 낭만도 없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맞다. 공중전화만이 주는 어떤 낭만은 사라졌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주는 새로운 재미와 낭망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야구, 축구, 농구 등.. 거의 모든 스포츠에서 오심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득을 보거나 손해를 보거나, 울고 웃는 집단이 나뉜다. 오심을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경기의 일부이며 재미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모든 진화와 발전의 노력은 무의미해질 뿐 아니라 무의식중에 운명론적 패배주의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나의 노력에 대한 공정한 판정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운이라고 하는 운명주의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즉,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돈이 없는 것, 그래서 갑질을 감수해야 한다는 식의, 세상은 항상 불공정한 것임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의식을 무의식중에 주입시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이유로.. 난 심판이란 경기장에서 권위 혹은 위엄을 갖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심판은 결코 경기장에서 핵심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심판은 선수와 관중을 위한 지원집단 혹은 서포터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심판의 가장 우선적 목적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정확한 판정을 내리는 것이다. 즉 이것인지 저것인지를 합리적 증거에 의해 가림으로써 경기의 핵심적 존재인 선수들이 공정성을 기반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관중은 가장 핵심적인 집단으로 그러한 공정성을 기반으로 한 정당한 경기의 진행을 통해 나름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심은 그러한 공정성을 훼손한다. 그런데 그 훼손된 공정성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입한다면 대체 어디에서 공정성을 논하고 주장하고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심판의 훼손된 판정에서 제기되는 이 공정성의 문제는 경기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전반의 공정성과도 관계가 있다. 법원을 상상해 보자. 판사가 당신에게 오심을 내렸다고 말이다. 그냥 받아들이는 게 정답인가?

보수주의자 혹은 운명주의자들은 항상 말한다.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된다고.. 이래봐야 소용없고 저래봐야 소용없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변화하고 진화하려는 것과 그저 수긍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라고 하는 것 중 어느 것을 권장할지는 너무도 자명하다.


변화하고 바꾸고 적응하지 않았다면 현존하는 모든 것들은 지금의 모습도, 지금의 방식도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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