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2, 2017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송경동

스물여덟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 하지 않겠냐고 찾아왔다. 
얘기 말엽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 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요?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유리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 하지 않았다

십 수 년이 지나 요 근래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닷물결에 밀리고 있으며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에 기대 있고
걷어 채인 좌판,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

진보, 좌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어쩌면 선민의식인지도 모르겠다.
즉 나는 언제나 현명하고 옳으며 정의로우나
대중은 항상 어리석고 개몽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식이다.

진보, 좌파들의 주장이나 생각이
나름 일리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진리는 아니다.
보수의 모든 생각과 주장이 진리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진보건 보수건.. 너나 나나
부족하고 모자라고 여리고 슬픈 존재.. 상호존중이 아쉽다

아쉬우면 아쉬운데로 그냥 그렇게 부디끼며 사는거지..
누군가의 이념이나 주장에 속하지 않고
말 없는 강물에게 지도받는 자는
맑스주의자 보다 신성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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