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24, 2017

한계..


남아메리카의 강에 사는 육식어 피라니아를 수조에 넣고 이런 실험을 했다고 한다. 피라니아가 먹으를 받아먹기 위해 수조 한쪽 끝으로 몰렸을 때, 수조의 한가운데를 투명한 유리판으로 막는다.

식사를 끝내고 반대쪽으로 헤엄쳐 가려던 피라니아는 투명한 유리판에 부딪힌다. 처음에 피라니아는 끊임없이 돌진하지만 번번이 고통만을 얻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차츰 환경에 적응하게 되고, 유리판을 향해 돌진하기를 멈춘다.

몇 주일 후 유리판을 치워버려도 피라니아는 예전처럼 자유롭게 헤엄치려고 하지 않는다. 수조 가운데쯤 가다가 자진해서 돌아온다. 그들이 말을 할 줄 안다면 투명한 유리판 앞에서 "여기가 끝이야, 나는 여기서 더 갈 수 없어, 더는 못 가!" 라고 외칠지도 모른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면서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가 정한 한계에 점점 익숙해져간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일 자체를 두려워한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자신이 알아서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는 것이다. - 공병호, <초콜릿>중에서

***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인가..쩝.
자발적으로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처한 환경 혹은 처지 때문은 아닌가..?

핑계를 대자는게 아니다.
내 자신이 한계를 설정하는 측면도 없지는 않다.
한 번의 실패가 영원히(?) 다시 일어나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자본이 널널하여, 젊어서.. 실패해도 다시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다면
한계를 설정하겠는가.. 쉽지 않은 일이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벗어날 것.
새로운 길을 떠난 다는 것은 결국 돌아올 곳이 있을 때 가능한 법.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면, 길에서 쓰러져 죽어도 좋다면
그때 비로서 새로운 길을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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