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율 1위 국가 엘살바도르 교도소
러시아 흑돌고래 교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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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왜 항상 악을 배려하고 포용해야 하는가
선한 사람은 왜 항상 악한 사람을 배려하고 포용해야 하는가
좋은 것들은 왜 항상 나쁜 것들을 배려하고 포용해야 하는가
배려 안하면 포용 안하면 안되는 건가? 문득 궁금해졌다. -.-;;
-사람을 무는 애완견 중에는 주인의 시야 혹은 보호 범위와 주인의 품 안에 있을 때만.. 다른 사람에게 사납게 공격하는 개들이 있다. 그런 개들은 대체로 주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사람에게 공격적이지 않다.
-피해자의 인권이나 생명 보다, 범죄자의 인권을 우선하는 염려하고 걱정하는 어설플 감상주의와 인권주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피해자의 피해 혹은 죽음은 안타깝다고 말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자의 인권은 보장해야 하지만 범죄로부터 피해와 목숨을 지킬 수 있는 뚜렷한 대책이나 대안은 그닥 제시하지 못한다.
-자신의 시간과 수고를 무릅쓰고 투표하고, 투쟁하여 이룩한 민주주의 테두리에서만 투표하지 않는 것이 자유 혹은 권리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민주주의를 수호하지도 않고 결코 독재에 대해 저항하지 않으며 투표하지 않을 그 권리를 이룩하고 수호히기 위해 결코 투쟁 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루어진 결과의 과실을 누리고 싶을 뿐이다.
-독재의 시대에 단 한 번도 저항의 생각/의지를 품어보지 않았고, 투쟁하지 않았고, 참여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이룩해 놓은 그 민주주의라는 것이 존재할 때만 자유라는 이름으로 온갖 망언과 망발을 쏟아낸다.
위의 예시들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어느 한 쪽'은 '다른 한 쪽'이 이룩하고, 허용하고, 용인하고, 보호하는 범위 안에서 주장하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범죄자, 특히 강력 범죄자의 경우.. 전후 사정과 선과 악의 유해함의 정도를 고려하여 극히 최소한의 인권만을 보장하면 충분할 것 같다. 그들의 인권 보장 수준을 준법자인 일반 시민들과 동일한 기준선상에 놓고 가늠할 수 없지 않을까.
'선'이나 '정의', '공평', '합리', '논리' 같은 것들은.. '악', 비정의, 비합리, 비논리들이 단순히 주장하고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의지를 갖기도, 실천하기도 어려운 것들이다.
'선'이나 '정의', '공평', '합리', '논리' 같은 것들은 단지 주장하고 요구만 해도 괜찮은 '악'이나 불공정, 불공평, 비합리, 비논리와 달리.. (선, 저의, 공평 합리 논리는) 왜 '선'이고 정의이고 합리이고 논리인지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심지어 구체적 행동양식으로까지 제시할 것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선', 정의, 합리, 논리 등이 지능의 문제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듯하다.)
그래서 가끔 현실세계에서 '악'이나 불공정, 불공평, 비합리, 비논리 등이 무척이나 효율적이란 생각도 든다. 그것들은 그저 요구하고 주장만 하고 아무 대책 없이 그 주장과 요구를 실천하면 (그에 대한 현실적 보상이 주어지기) 되기 때문이다. 현실은 이상이 아님으로 간혹 현실이 부조리하고 모순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의 세계에게 그것들, 즉 악 비논리 비합리 등에게 너무나 과도하게 보상이 주어진다는데 있다.
반면 선, 정의, 합리, 논리는 대체로 현실세계에서 보상이 매우 적다. 기껏해야 고맙다는 말이 고작이다. 그들은 항상 청렴을 넘어 가난할 것을 (악 비합리 비논리로부터) 강요받는다. 우리는 선, 정의, 합리, 논리에게 너무 이상적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선'은 '악'을.. 다소 '악'한 방법으로 제거하면 안 되는가? '선'한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을.. 다소 '악'한 방법으로 타도하면 안 되는 것인가? 좋은 것들은 다소 '악'한 방법으로 나쁜 것들을 제거한 안 되나? 어쩌면 우리는.. 현실의 세계에서 '선' 혹은 정의, 합리, 논리 등에게 너무 과도한 배려와 용서를 갖추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선'이 가지는 치명적 약점이 바로 '선'은 '악'을 배려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가 가지는 치명적 약점이 바로 '정의'는 '비정의'를 배려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합리'가 가지는 치명적 약점이 바로 '합리'는 '합리'를 배려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가 가지는 치명적 약점이 바로 '논리'는 '비논리'를 배려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악'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악'은 '선'이 가지는 치명적 약점을 잘 알고 있어서
'악'은 용서받을 것이라 믿으며, 또 용서받아야 한다고 요구하기 때문이며
'선'은 통합 또는 화합이란 이름으로 언제나 '악'을 단죄하지 않고 포용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골때리는 시츄에이션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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