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4, 2023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그것이 '가족'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여기서 '온전히'는 '완전히' 또는 '완벽하게'라는 의미다.

요즘 종종 모친의 과거 시절을 듣는 일이 잦아졌다. 예전 같으면 고리타분한 쓸데없는 이야기로 치부했을 텐데... 요즘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웬일인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아마도 현재 모친이 아프시기 때문이고, 내가 점차 나이를 먹어가고 있기 때문이지 싶다.

그 시절의, 그 고단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며 이따금씩 눈시울을 붉히는 노쇠한 노인의 얼굴을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안쓰러움, 안타까움, 측은함 같은 것들이 일어서, 나도 모르게 코 끝이 시려오고 목이 메기도 한다.

예전 내가 한창(?) 젊었을 때에는 어림도 없는 현상(?)인데 말이다. 어쩌면, 그 시절의 고단함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슬퍼하는 모친의 모습 자체에 측은함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단한 시절을 살아내시느라 수고하셨고, 고생하셨다는 '말'과, 그저 손잡아 주며, 토닥이는 것뿐이다.

내가 살지 않았던 시대 혹은 시절, 내가 경험하지 않은 상황 또는 정황을 나는 온전히 알 수가 없다. 어느 노인이 살았던, 고단했던 과거 시절을 듣는다고 나는 그 시절을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 경험했던 엄혹했던 시간을 듣는다고, 그 시간을 내가,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리고 나는, 타인이 직접 겪었던 것들을 간접적 경청을 통해서는 결코 알 수 없다. 다만, 간접적으로 미루어 짐작만 할 뿐이다. 짐작 또는 유추는 실제적 경험도, 사실도 아닌 일종의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실제적 경험이 주는 그 느낌, 그 감정을 3자인 타인이 어찌 온전히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것이 비록 일종의 허상에 불과할지라도, 고리타분하고 무의미한 영웅담(?)으로 치부하지 않고, 최대한 누군가 가졌을 그때, 그 시간에 가졌을 그 느낌과 감정을 미루어 짐작함으로써 나는, 그리고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는데 가까워질 수 있다. 비록 미완적이지만 말이다. 흔히 그런 것을 '공감'이라 부르는 것 같다.

미완적임으로 무의미하다고 치부하거나,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그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닐까 싶다. 아마 나도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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