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9, 2014

어떤 평화 - 이병일


어떤 평화 - 이병일

오일마다 어김없이 열리는 관촌 장날
오늘도 아홉시 버스로 장에 나와
병원 들러 영양주사 한대 맞고
소약국 들러 위장약 짓고
농협 들러 막내아들 대학등록금 부치고
시장 들러 생태 두어마리 사고
쇠고기 한근 끊은 일흔다섯살의 아버지,
볼일 다 보고 볕 좋은 정류장에 앉아
졸린 눈으로 오후 세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기력조차 쇠잔해진 그림자가 꾸벅꾸벅 존다

*** 
같은 영화, 같은 음악을 보고도 서로 다르게 느낄 수 있듯이
어쩌면 시를 읽으면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모습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은..이 시를 읽으며 남루하고 고단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고
어떤 사람은 평화로운 따듯한 봄날의 일상적 평화를 떠오릴지도 모르겠다. 
내가 볼때 전자인 것 같지만 말이다. 
 
하지만..시를 통해 독자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읽는 사람이 느끼는 것이 가장 근접한 답 인지도 모르겠다.



한 줄의 글을 통해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
그 자체로 예술은 그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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