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0, 2014

장하성-한국 자본주의
capitalism in Korea


쌀농사를 짓는 ‘한마을’에 사는 ‘정부’ 씨는 토지를 수탈한 뽕마을지주 밑에서 마름으로 일해 왔다. 그러다 한마을에서 쫓겨나게 된 지주가 정부 씨에게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당분간 재산을 맡아달라고 하고 서둘러 뽕마을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지주는 돌아오지 않았고, 정부 씨는 한마을의 많은 땅을 소유한 대지주가 되었다.

한마을에는 작지만 자신의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마을 사람들은 대지주인 정부 씨에게서 땅을 빌려 소작농으로 먹고살거나 정부 씨네의 농사일에 품을 팔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그리고 이 마을에는 정미소 사업을 하는 김 씨, 가게를 하는 이 씨, 식당을 하는 최 씨가 있다.

어느 날 대지주인 정부 씨는 자기 땅에서 수확하는 쌀이 많기 때문에 김 씨가 소유한 정미소를 이용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정미소를 세우기로 했다.

자기네 쌀만을 도정해도 정미소 운영에 문제가 없었다. 정미소 운영이 괜찮다 보니 마을 사람들에게는 김 씨의 정미소보다 싼값에 쌀을 도정해주기로 했다.

마을 사람들은 김 씨네 정미소보다 더 싸게 도정을 해주는 정부 씨의 정미소를 이용하게 되었고, 김 씨는 결국 정미소 문을 닫았다. 정부 씨는 김 씨네 정미소가 망한 후에도 값을 올리지 않는 ‘선행’을 했다.

정부 씨는 쌀농사뿐 아니라 정미소 사업까지 하게 되어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신이 생산한 쌀을 원료로 쓰는 막걸리 양조장을 세웠고, 온 동네 사람들이 정부 씨네 막걸리를 사다 마셨다.

그는 자신이 생산하는 막걸리를 직접 파는 가게도 차렸다. 가게는 처음에 막걸리만 팔았지만 나중에는 다른 물건들도 함께 파는 슈퍼마켓이 되었다.

정부 씨네 슈퍼는 이 씨네 가게보다 싼값에 물건을 팔았고, 마을 사람들은 값싼 슈퍼를 애용하게 되었다. 결국 이 씨네 가게도 문을 닫았다. 정부 씨는 자신의 논과 밭에서 나는 작물을 식재료로 음식점도 차렸고, 값도 최 씨네 식당보다 싸게 받았다.

결국 최 씨네 음식점도 문을 닫았다. 한마을 사람들은 정부 씨네 정미소, 슈퍼마켓, 음식점을 이전보다 더 싼값에 이용하게 되었고 모두들 ‘착한’ 정부 씨를 칭찬했다. 정부 씨는 더 많은 돈을 벌었다.

정부 씨는 돈이 많아지자 설탕 공장, 과자 공장, 신발 공장, 의류 공장을 세웠다. 사업은 날이 갈수록 번창했다. 한마을 사람들은 모두 정부 씨 공장에서 생산한 물건들을 구매했다.

정부 씨 회사들은 강 건너에 있는 ‘우사 마을’에 ‘수출’도 했다. 사업은 계속해서 번창했고, 정부 씨는 다시 전자 공장과 자동차 공장을 세워서 산 너머에 있는 ‘치나 마을’에도 수출했다.

정부 씨는 이번에는 마을금고를 설립했다. 그리고 모든 마을 사람들은 정부 씨의 마을금고에 예금을 했다. 정부 씨는 작은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땅도 사주었다. 물론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사주는 ‘선행’을 해서 땅을 판 사람들은 갑자기 큰돈을 벌게 되었고 정부 씨에게 감사했다.

정부 씨는 건설 회사를 세우고, 사들인 땅에 아파트를 지었다. 한마을 사람들은 정부 씨 마을금고에서 대출을 받아 아파트도 장만했다. 정부 씨 덕분에 모든 마을 사람들은 정부 씨네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고, 마을은 발전했고, 더 잘살게 되었다.

정부 씨는 자신의 자동차 공장에서 만든 자동차로 운송 회사를 세웠고, 제품들을 배달할 택배 회사도 세웠다. 정부 씨가 소유한 공장들과 슈퍼마켓은 모두 정부 씨 소유의 운송 회사와 택배 회사를 이용했다.

정부 씨는 신문사와 방송국도 설립했고, 마을 사람들은 정부 씨가 발행한 신문을 보고, 정부 씨의 방송을 들었다. 정부 씨는 경비 회사 설립해서 마을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기도 했다.

정부 씨는 마을의 문화 발전을 위해서 미술관과 음악당도 설립했고, 호텔과 극장도 세웠다. 그리고 미술관, 음악당, 극장에 오는 사람들의 휴식을 위해서 커피숍과 빵집도 차렸다.

정부 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장학 재단을 설립하고, 학교와 병원도 세웠고 교육 사업, 복지사업, 자선사업도 했다. 한마을 사람들은 모두 정부 씨를 존경하고 칭송했다.

정부 씨는 규모가 큰 회사들의 사장에 아들과 딸을 임명하고, 작은 회사들은 사위와 조카들에게 맡겼다. 미술관장은 부인이 맡고, 박물관장은 며느리가 맡았다.

신문사 사장은 사돈이, 방송사 사장은 처남이 맡았다. 마을금고는 형이, 학교는 동생이, 병원은 동서가 맡았다. 그리고 마을의 경찰서장, 법원장과 세무서장은 장학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아 공부도 잘하고 고시에 합격한 똑똑한 정부 씨의 장학생들이 부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부 씨 회사의 임원이었던 이 씨가 군수 선거에 출마를 했고, 정부 씨 집안의 지원과 마을 사람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당당하게 당선되어서 군수가 되었다. ‘정부’ 씨는 ‘한마을’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지배하게 되었다.

한마을은 정부 씨가 사업을 성공적으로 확장한 덕분에 발전했고, 마을 사람들은 더 잘살게 되어서 행복했다.

행복하고 평화롭게 잘살고 있는 한마을에 어느 날 존 롤즈(John Rawls)라는 사람이 느닷없이 나타나서 평지풍파(平地風波)를 일으켰다. ‘평등주의적 정의론’의 대가로 인정받는 롤즈는, 한마을의 상황은 정의롭지 못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롤즈는, 정부 씨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한마을의 사람들은 이전보다 잘살게는 되었지만, 그 대가로 누구도 정부 씨의 뜻을 거스를 수 없고, 누구도 자기땅을 갖거나 사업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를 모두 잃었다는 것이다. 배고픔을 잊은 지 얼마 안 된 마을 사람들에게 자유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큰 이득을 준다는 형식으로 효율성이 증가한다고 해서 소수의 자유가 상실되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이렇게 믿고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있어서 시민의 기본적 자유가 정치적 흥정의 결과로서 이해되고 있지도 않으며, 그것 사회적 이익의 계산에 달려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의해 나타난다. 도리어 그러한 자유는 정치적 거래에 한계를 부여하는 고정점이요, 사회적 이득의 계산에 범위를 정해주는 고정점이다.”라고 말했다. 롤즈의 논리는 민주주의 체제의 근본인 개인의 자유가 경제적 이익으로도 침해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경제적 이익은 자유가 보호되는 범위 내 에서만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을 사람들은 더 잘살게 되었지만 자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정의로운 마을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유를 잃어버린 한마을의 상황을 지켜본 자유주의(Liberalism) 정치사상의 원조인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 롤즈를 거들고 나섰다. 밀은 “배부른 돼지가 되느니, 배고픈 인간이 되어야 한다. 배부른 바보가 되느니,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어야 한다.”라고 한마을 사람들에게 충고를 했다.

그리고 한마을의 상황을 지켜본 골수자유주의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는 한마을에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사회주의(Socialism)에 대한 강력한 비판자인 하이에크는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 자유를 포기한 한마을의 사람들은 ‘노예의 길’을 택한 것이라고 했다.

한마을 사람 모두가 더 잘사는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정부 씨의 지배를 받아들인 상황을 본 존 스튜어트 밀은 한마을의 경제를 천박한 자본주의로 보았고, 한마을 주민들을 배부른 돼지로 비하했다.

정부 씨가 모든 것을 소유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는 상황을 본 하이에크는 한마을의 경제를 전체주의(Totalitarianism)적 사회주의로 보았고, 한마을 사람들을 노예라고 규정했다.

한마을에는 정부 씨가 소유하지 못한 회사들이 있었다. ‘네버’와 ‘그다음’이라는 인터넷 포털 회사들이었다. 통신 기술이 짧은 기간동안 갑자기 발전할 때 호기심 많은 마을 젊은이들 몇이서 재빠르게 회사를 만들었다. 이 젊은이들은 학교 다닐 때도 엉뚱한 일에만 빠져서 공부를 열심히 안 한 ‘오덕후’들이었다. 정부 씨도 뒤늦게 아들에게 인터넷 회사를 차려주었다.

정부 씨 장학금을 받은 적이 없는 이‘무한덕후’들은4 정부 씨의 눈치를 살피지도 않고 겁 없이 자유분방하게 회사를 운영해서 성공을 거두었고, 정부 씨 아들의 인터넷 회사는 문을 닫게 되었다. 정부 씨가 소유한 방송국과 신문사는 당연히 밀과 하이에크의 비판을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네버’와 ‘그다음’은 그 내용을 포털에 올려서 밀과 하이에크의 비판이 한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밀과 하이에크의 비판을 들은 한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비난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비판에 동의하기도 했다. 한마을이 못살았던 시절에 배고픔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나이 든 세대들은 정부 씨가 잘살게 해준 것에 대해서 너무도 감사했다. 그래서 그들은 ‘정의가 밥 먹여주나? 정부 씨가 밥 먹여준다!’면서 밀과 하이에크를 비난했다.

정부 씨의 장학금으로 외국 유학까지 다녀온 한마을의 학자 한 명이, 정부 씨가 발행하는 신문에 ‘한마을은 다르다’는 칼럼을 기고했다.

그는 정부 씨가 돈만 번 것이 아니라 자선사업, 장학사업, 문화 사업을 하는 선행을 많이 했고, 정부 씨 덕분에 빈곤으로 굶주린 한마을을 발전시킨 상황을 밀과 하이에크가 몰라서 한 말이라고 했다.

한마을에는 밀과 하이에크의 말에 동의하는 학자들도 더러있었지만 그들은 정부 씨 회사로부터 연구비를 받아 연구하기에 바빠서 세상일에 관심을 끄고 열심히 ‘논문만 썼다.’ 정부 씨의 회사들은 ‘네버’와 ‘그다음’에 그런 글들을 계속해서 포털에 올리면 광고를 주지 않겠다고 협박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배고픈 경험이 없는 한마을의 젊은이들은 혼란스러웠다. 어른들의 말에 일리가 있기도 했고, 자신들을 가르치는 선생들은 그들의 고민을 외면했고, 또 자신도 정부 씨 회사에 취직을 해야 할 처지였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미래도 부모 세대와 마찬가지로 정부 씨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자유가 없는 한마을의 상황을 바꾸고 싶었다.

이런 상황에서 맨 처음 이 모든 소동을 일으켰던 존 롤즈가 다시한마디를 했다. 그는 평등한 자유가 ‘조직적으로 침해될 경우에 시민 불복종의 대상’이 된다며 “정의의 우선성과 그것이 보장하는 평등한 자유가 시민 불복종을 정당화한다.”라고 한마을 젊은이들을 선동했다.

그는 정의와 자유는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가치이기 때문에 한마을 사람들이 잘살게 되었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정의와 자유를 잃었기 때문에 정부 씨에 저항할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롤즈의 말에 민주주의 이론의 대가인 정치학자 로버트 달(Robert Dahl)이 “자유의 필요조건은 권력 행사에 대한 강력한 견제 장치의 존재다. 권력이 집중되면 자유는 고사하기 마련이다.”라며 거들고 나섰다.

롤즈와 달의 말에 용기를 얻은 한마을의 젊은 세대들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를 내걸었다. 대자보에는 ‘물질적 풍요를 위해서 자유를 포기한 사람들은 둘 다를 잃게 된다. 그러나 자유를 위해서 물질적 풍요를 포기한 사람은 더 많은 둘 다를 얻게 된다’고 적혀 있다. 대자보는 인터넷을 통해서 불길처럼 퍼졌다.

‘그다음’의 토론방인 ‘에고라’에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고, ‘안녕연대’라는 시민 단체를 만들어 서명운동을 하고 촛불 시위를 했다. 이런 부류들을 괘씸하게 본 마을 어르신 세대들과 정부 씨를 지지하는 젊은이들도 들고 일어났다. 그들은 ‘안녕연대’에 맞서서 ‘아부지 연합’과 ‘배부르게 살기 운동본부’를 만들고, ‘에고라’에 맞서서 ‘알배’를 만들어 촛불시위에 맞불을 놓았다.

그들은 ‘차카게 살자’, ‘배고파본 적이 없는 놈들은 자유를 말할 자격이 없다’, ‘정부에 반대하는 놈은 좌빨’이라고 외쳤다. 한마을은 전체가 큰 혼란에 빠졌다.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 정부 씨네 회사 임원 출신의 이 씨가 차지하고 있는 군수 자리에 도전하는 박 씨가 나타났다. 박 씨는 정부 씨에게 철없는 불만 세력을 그저 누르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그냥 그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면 될 것 아니냐고 설득하고, 마을 사람들에게는 모두가 자유롭게 잘사는 정의로운 ‘경제민주화’를 이루겠다는 공약을 내세워서 당선이 되었다.

마을 젊은이들은 새 군수 박 씨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고, 나이든 어르신 세대들은 군수 박 씨에게 선거공약은 꼭 지킬 필요가 없다고 조언을 했다. 한마을은 더욱 더 혼란에 휩싸였다.

이런 상황의 변화를 지켜보던 마르크스주의 혁명가인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가 한마을의 젊은이들과 군수 박 씨에게 충고 한 마디를 던졌다. 그는 “유일한 고용주가 정부인 나라에서 정부에 반대하는 것은 서서히 굶어죽는 것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 말라’는 과거의 원칙은 새로운 원칙으로 대체되었다: 복종하지 않는 자 먹지말라.”라고 했다.

마르크스주의자 혁명가였던 레온 트로츠키는 레닌(Vladimir Ilich Lenin)과 함께 10월 혁명을 이끌어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리고 공산주의(Communism) 국가인 소비에트 연방을 세운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이 세운 소비에트를 국가가 모든 것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전체주의 체제라고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트로츠키는 정부 씨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정부 씨의 가족들이 모든 회사를 운영하고, 정부 씨의 장학생들이 모든 권력을 차지해서 정부 씨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한마을을 전체주의적 사회주의나 다름없다고 본 것이다.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 시장경제를 사훈으로 내건 정부 씨가 소유한 신문사와 방송국은 트로츠키의 충고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기사 제목은 이랬다.

‘한마을 사람이여, 서서히 굶어죽지 않으려면 정부에 복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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