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30, 2014

성적 소주자들에 대하여..
sexual minority


태국의 트랜스젠더 모델..

이건뭐 하리수는 저리 가란데..쩝. 태국의 이쁜 트랜스젠더 대회에서 짱 먹은 꽤 유명하신 분이라는데..이쯤되면 상당히 이쁘다고 아니 할 수 없겠다. ^^;;

어쨋거나..문득 이 동영상을 보다가 트랜스젠더니, 게이니, 레즈비언이니 하는 단어들이 떠오르면서..과연 성적 소수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봤다.

아주 오래전..그러니까 나의 세계관이나 인식의 범위가 그리 넓고 깊지 않았을 당시 나 역시 드랜스젠더나 게이, 레즈비언같은 성적소수자들에 대해 그리 좋지 않은 생각을 가졌었다. 한마디로 그냥 재수없다는 것이였다. 물론 그런 나의 인식의 태도는 딱히 논리적 혹은 설득적 이유 였던 건 아니였던 것같고..다만 느낌상, 기분상 싫었을 뿐이다. 좀 완곡하게 말하자만 "에이..그래도.." 같은 식이였다고나 할까.

암튼 그런 나의 생각이 바뀐 것은 소위 게이라는 사람 몇몇과 대면하기도하고, 대화해보고..그러다 보니까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게이나 레즈비언 트렌스젠더라는 것에 대해 외국애들과 진지하게 토론..아니 얘기를 하다가 보니 나의 그 "에이..그래도.."라는 식의 이해와 접근이 도무지 먹히지를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그때부터 잠시동안 난 그 성적소수자들에 대해 진지하게 자문하게 되었다. 왜 그들을 싫어하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정당하며 설득력이 있는가..등등의 질문들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딱히 그들을 비난해야할 설득력 강한 이유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각 개인의 성적취향이나 정체성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여서 무어라 단정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다. 또한 타인에게 직접적 유해를 가하지 않는 것에 대해 단죄한다는 것도 무리가 있다는 느낌이고, 소위 말하는 국민보건상의 안전성 역시 미래에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현재로 단죄한다는 것도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그들을 비난하거나 단죄할때..찝찝하다, 불결하다 혹은 재수없다는 식의 인식이 많은 것 같은데 이는 상당히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찝찝 혹은 불결, 재수없음이란 너무나 주관적인 판단기준에 의하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보고도..어떤 사람을 좋아할 수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회통념적 불결이라는 것은 과거로부터 세습된 일종의 관념인데..관념자체가 무형의 주관성이 너무 강하다고 보여진다.

그 다음으로는 그들이 에이즈, 성병 같은 보건상의 위험성을 내포할 수 있다는 식의 미래보건에 대한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들 수 있는데..이건 더 설득력이 없다. 이건 마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일어나지 않은 범죄에 대해 현재를 기준으로 처벌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다면 일반 양성애의 경우에는 그러한 보건상의 위험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더 할 말이 없다. 작금의 현실을 보면 오히려 양성애자들의 성매매나 불륜같은 것이 더 큰 보건상 및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보건성과 관련해서는 모든 인간이 노력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그 다음이 아마 종교적 혹은 자연적 측면일 것 같은데..소위 말하는 음과 양의 이치를 거스르 또는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태임으로 받아 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달리 해석하면 어떤 변이에 의해서 정상(?)이 아닌 것들은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물음에는 해답을 주지 못한다. 즉 만약 위에서 말한 성적 소수자의 경우가 어떤 이치나 섭리를 거스르는 것임으로 불가하다면..그 이치나 섭리를 거스른 어떤 변이등으로 발생하는 생명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다. 만약 그러한 종교적 자연적 측면에 입각하면 변이에 의한 결과는 제거의 대상일 뿐인데..그럼 인간이나 동물, 식물등에서 나타나는 변이에 의한 결과들은 어떻게 해야하느냐는 거다. 게대가 유전자 조작에 의한 변이나 복제에 의한 것은 또 어떻게 해야하는가이다. 그러한 모든 다른 것은 제거되어야 할 대상일 뿐일까? 중세에는 소아마비를 마귀가 씌운 사람이라고 사살했다고도 하는데..그럼 그들은 어찌 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사회적 통념에 의한 것인데..사회통념상 인정 혹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식의 논리다. 헌데 그 사회통념이란 역시 너무나 주관적인 것이고, 뭐가 사회적 통념인지, 또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인 통념이 무작적 성적소수자를 단죄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어 보인다. 요컨데 조선시대의 사회통념과 지금의 사회통념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과거의 통념 혹은 시대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혹은 따라가지 못하는 통념을 현재의 대상에게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결론적으로..딱히 그들을 무작정 비난해야할 설득력 있는 이유를 찾기 힘들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결국 타인의 주관적 감정에 의해서 비난을 받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무슨 근거나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그건 쫌 거시기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렇다고해서..트랜스젠더나, 게이, 레즈비언등을 권장 하자고 할 수는 없지만..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밖에 없지 않겠냐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그러한 결론에 도달한 것이 개인적 숙고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대면한 그들은 전혀 위협적이지도, 찝찝하지도, 재수없지도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찝찝이나 재수없음도 서너번 대면하고 나니까 느끼지 못하게 되었는데..아마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막연한 반감이 아니였나 싶다.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그들이 어떤 결정적 유해를 가한다고 생각되어지지는 않는다. 어떤 측면에서는 그들을 무작정 금기시 하거나 제거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극단적 의식, 경건주의, 유교주의, 종교주의가 더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성정체성 혹은 성적취향이란 어떤 사람은 이런걸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저런걸 좋아한다는 것인데..이건되고 저건 안된다는 식의 논리는 설득력이 없을 뿐 아니라 쫌 이기적 편리주의인 것 같기도 하다.

고민해야 할 것은 그들을 사회에서 배제 혹은 제거해야 할 것인가가 아니라..이런저런 이유로 그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일원으로서 공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들과 같은 형태를 권장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인정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말이 길어졌다. 여담이지만..개인적으로 홍석천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뭐 하리수도 마찬가지고..근데 홍석천보다 하리수가 안티가 더 많은 것 같기는 하다.) 대한민국이 가지는 경건주의와 유교주의의 압박과 설움속에서 그 자신의 개인적 측면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잘(상당히)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가끔 그와 같은 사람들이 우리사회에 아니 나 개인에게 얼만큼의 유해를 가했는지 생각해 본 적도 있는데..딱히 명확하게 떠오르는 유해는 없었던 것 같다. 쩝.

솔직히 그러한 성적 소수자들을 막상 대면해 보면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들의 성적취향 혹은 정체성이 좀 다른 것 뿐인데..그건 그들의 개인적 영역임으로 내가 왈가왈부하거나, 비난할 권리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폭력성 측면으로 보자면 아마 군대문화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이 아마 더 크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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