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아래의 글을 보기전에
위 링크에 있는 EBS 다큐프라임-자본주의를 꼭 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뉴스파노라마-빚권하는 사회에서 방영된 내용과
유사한 본질적 설명이 위 다큐프라임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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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1000조, 빚 권하는 사회
빚 있습니까? 가계 빚이 1000조에 육박했다. 부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구의 평균 빚은 8000만원. 그야말로 부채 사회다. 빚으로 공부 하고, 빚을내 일하고, 빚으로 집을 사고 생활한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우리는 왜 빚을 지게 되었을까? 이대로 괜찮은 걸까? 경제 위기 때마다 대출의 문턱을 낮춰온 정부, 소득증가율보다 부채증가율이 더 높은 저소득 고비용 사회 구조와 미약한 사회 복지 제도 속에서 개인은 필요한 비용을 빚으로 감당했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발 위기를 경고한다.
방송을 보면서..내내 갑갑함이 엄습했다. 이 빌어쳐먹을 대한민쿡의 시츄에이션을 내가 무슨 노벨 경제학자도 아니고 대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와 유사한 방송이나 책이나 뉴스를 보면서 떠오르는 몇가지 단어들이 있다. 1)그릇된 정치, 2)대기업중심의 경제, 3)용기없는 우매한 국민이 바로 그것이다. 정치와 경제는 서로 맞물려 있어서..크게보면 정치와 국민들로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단어들중에서 비유적으로 그 책임을 따진다면 그릇된 혹은 오류적 정치가 가장 책임이 크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현대에 있어) 정치는 결국 국민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본다면 정치와 국민 역시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그 책임에 있어서도 누가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책임성은 막중하다.
그동안 정치는 수없이 비판되어져 왔고..또 그리하여 여전히 부족하기는 하지만 나름 발전을 했다. 물론 국민 역시 마찬가지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국민의 발전속도는 너무 느렸다. 질적풍족으로 덩치는 비대해졌지만 의식이나 철학은 유체이탈을 실시한듯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작금에 우리가 격고있는 이 고통, 즉 부채의 고통은 정치나 사회가 육성(?)한 그릇된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지만..그 2차적 이유에는 철학과 이성이 부재한 과도한 욕심을 추구하는 국민들의 의식 역시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엵히고 섥혀있어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는 실타래처럼 꼬여있는 가계부채 1000조시대. 인식의 전환이 팔요해 보인다. 대체 어찌해야 인식의 전환은 이루어질까..
생각해 보면 귀향후..나 역시 끝없이 누군가로부터 말을 들었다. 재태크 안한다고, 주식 안한다고, 대출받지 않는다고 주변의 질타아닌 권고와 비아냥아닌 충고를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귀향초기에는 그런 일련의 한쿡사회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마음 고생도 많았고 분노도 많았지만..이제는 많이 나아져서 적응도 되었고..살다보니 어느정도 만성이 되기도 해서..그냥저냥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릴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오로지 대한민쿡에서만 대한민쿡적 방식과 믿음, 경험이 진리라고 믿어 그 것에 한치의 의문도 품지 않았던 선배나 상사, 소위 어른들이 그런 권고와 충고를 해주셨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수입의 범위를 넘는 부채..갚지도 못할 빚을 덥석덥석 땡겨쓰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자 그 덥석덥석 땡겨쓴 부채는 부매랑이 되어 그들을 조여오는 것을 보고..솔직히 안도의 숨을 쉬었다. 대출이나 부채는 어떤 하나의 조건을 전제로 한다. 즉 어떤 것(집이건, 땅이건..혹은 그 어떤 부동산, 동산 담보이건)이 계속, 영원히 그 가치를 상승시킨다는 전제를 가진다.
하지만 안타갑게도 확실하고 분명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비지니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 줄것주고 받을 것을 손에 받았을때 비지니스거래는 완성되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그야말로 어떤 조건이 어떻게 변할지 (신이 아닌이상) 알 수가 없다. 헌데 자신이 마치 신이냥 어떤 조건이 자신이 믿고싶어하는 그런 조건으로 변함없이 영원히 지속(성장하거나 가치상승)할 것이라는 믿음은 어디서 온 것이란 말인가. 양자간의 거래에서 양자는 나름의 리스크와 나름의 기대수익을 예상하고 감당해야 한다. 어느 한쪽만이 과도한 리스크를 끌어안거나, 어느 한쪽이 과도한 기대수익을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 거래가 아니다.
만약 합리적 거래가 불가능하다면 (물론 선택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아쉽지만 과감히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무리하게 리스크를 떠안거나, 무리하게 기대수익을 예상하는 것은 탐욕이며 욕심이다. 가계경제에서도 다르지 않다. 수입은 적은데..대출로 덥석덥석 아파트를 산다. 뭐하러..? 보여주기 위해서..? 체면때문에..? 남들이 다 그러니까..? 그런 비합리적 사회분위기와 공식속에서..왜 서민(즉 나 자신)이 놀아나야 하는지 모르겠다.
정치가 우매하다고 국민도 따라서 우매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건 정치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한민쿡사회라는 사회의 문제다. 또한 대한민쿡 사회를 구성하는 대한민쿡임으로 그것은 국민의 문제이기도 하다. 총체적으로 인식적 변화가 없다면..서민들이 이 난해한 시츄에이션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 대한쿡민들께서도 좀 변해야 할 것 같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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