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29, 2014

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


희대의 살인마, 절대악만 악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짜 더 악한 것은 무능함 자체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생각하지 않는 모습 바로 그 자체가 악이다.
이게 악의 진부함이다.
-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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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그녀에 관한 정보를 링크를 참조하시라.


한마디로 사유하지 않는 것, 즉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그 자체로 무능과 한심을 넘어 "악"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쯤되면 찔리는 사람 많을 것 같다.
흔히 인간과 동물을 구분짖는 척도는 바로 "생각"하는 능력을 ​꼽는다. 또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그 "생각"이라는 것을 영위하고 있음으로 자신이 인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사유, 즉 생각이라는 것은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큰 의미없이 행해지는 생각..예컨데 뭘 입을까, 뭘 먹을까, 뭘 입을까 등과 같은 것을 일컫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것 철학자들이 말하는 인간임을 규정할 수 있는 생각하는 능력에서의 생각이란​ 무엇일까..? 글쎄..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인간이 인감임을 규정할 수 있는 생각하는 능력이란..이유, 논리와 함께 근거있는 추론을 통해 어떤 결론에 도달하며, 그 결론이 인류의 무형의 보편적 가치와 의미 뿐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도 부합하는 것이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하지만 이 생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에 대해 논하고 싶지는 않다. 너무 복잡해 짐으로..ㅜㅜ)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에 대한 말에서 갖게 되는 충격 혹은 놀라움은 평범한 사람의 "악"이야 말로 인간을 파괴하는 결정적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그 "악"이 바로 "생각하지 않는 것" 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말을 통해..그동안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현상과 사건에 대해 납득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즉, 왜 평범한 대중 혹은 민중 혹은 서민 혹은 국민들은 매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정치인을 선출하고, 인간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것에 분노하면서도 파괴적 행태는 왜 더욱 증가하며. 비윤리적이며 반인간적인 사건과 사고에 치를 떨면서도 평범한 사회 구성원간의 권모와 술수가 만연함을 체감적으로 경험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 즉 대중 혹은 민중 혹은 국민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는 것이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 생각하지 않는 것은.. 무능을 넘어서는 "악"이며 그것은 너무나 만연하여 진부하기까지 하다니 것이다. 얼핏 잔인한 말 같지만..생각해 보면 딱히 틀린말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부패과 비윤리가 만연한 사회속에서 부패한 인간이 부와 권력을 차지하는 것을 경험한 대중 혹은 사회 구성원들은 ​처음에는 그 부패와 비윤리를 비난하다가.. 나중에는 그 부패와 부정 혹은 비윤리를 동경하고 급기야 그것을 추구하게 된다는 헨리조지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그러한 사회속에서 인간이 인감임을 규정할 수 있는 그 "생각하는 능력", 즉 "생각 자체" 는 점차 사라지며 궁극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헨리의 말처럼 그런 사회는 언젠가 "운명"이란 이름으로 묻히게 되는 것임을 인류사에서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봉건적 유교적 전근대적 수교적 이데올로기 예를들어 맹목적 충효사항이나 국가주의, 민족주의 혹은 나이로 서열을 매기거나 남녀라는 성별로 또는 물질적 및 자본적 소유물의 량에 따라 사람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믿는 그 행태와 믿음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정 그러한 것인가 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소위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지 여부는 알길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안타갑게도, "생각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점차 사라져가고 혹은 줄어들어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는 비합리적, 비논리적 사건과 사고들이 줄어들기는 커녕 일상 깊은 곳까지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작금의 시츄에이선을 결코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이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다른 "생각하고 있는 인간"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생각이 없다는 것은 인식이 없다는 것이며 인식이없다는 것은 무감각한 인간.. 예컨데 사이코패스적이라 할 수 있다. 

한나는 그처럼 생각없는 인간이 많은 사회에서의 "생각없는 것"을 이른바 악의 평범성이라고 한 것이다. 어떤 개인이 지닌 그 "악의 평범성"을 개선할 수 있는 명확한 방법은 없다. 결국 생각하는 인간들이 사라지고 사회는 점차 생각없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이제 하나의 사회는 "악"이 만연하여 평범하기에 이르게 되고.. 종국에는 한 사회는 운명이란 이름으로 멸망하고.. 다시 새로운 원초적 사회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역사이며 문명과 발전의 사이클인 셈이다.
잠자코 복종하는 것은 때로는 편안한 길이기는 하지만
결코 도덕적인 길은 아니다. 그것은 비겁자의 길이다
-마턴루터킹-
'중립'은 항상 압제자를 도와주지 박해자를 돕지 않는다.
침묵은 고통주는 사람을 장려하지, 고통 받는 사람을 보호하진 못한다
비폭력은 악을 행하는 인간의 의지에 얌전하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고,
폭력자의 의지에 대해 온 영혼을 던지는 것이다.
영국작가 - 올리버 골드스미스
불의에 대한 방관에 '침묵은 동의를 뜻한다.'
침묵하는 사람은 모두 공범이다.
 -골드스미스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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