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9, 2014

땅콩회항-사무장 발언을 보고..


그는 "동료들이 어쩌면 나의 이런 행동으로 피해를 보기보다 지금 처해져 있는 불합리한 일들이 더 많이 개선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싸움에서 패배하는 쪽은 자신이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 무수한 약자들의 패배를 봐왔기 때문. 그러나 희망도 승산도 없는 싸움에 나서는 이유에 대해 박창진 사무장은 "중학교 때 처음 들었던 팝송이 휘트니 휴스턴의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Greatest Love Of All)'이다. 그 노래 가사를 가만히 보면 '그 누구의 그늘에서도 살지 말고, 그 어떤 너를 음해하고 불어 닥치는 고난이 있더라도 제일 중요한 건 너 자신을 사랑하고 너의 존엄성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라고 나온다"고 했다.

이어 "내가 가진건 많은 게 아니지만, 많지 않은 그것조차도 어쩌면 이 일을 겪고 나서 내가 잃을 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 이후에 나의 존엄함은 내가 지킬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어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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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회항 관련 뉴스를 보다가 위의 기사를 보게 되었다. 당사자로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 싶다는 말에 문득 이런저런 생각이 스쳤다.

그의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위 조직 혹은 사회라는 곳에서) 충실한 개로 살아가는 것이 개인의 존엄성이나 자존감 보다 더 중요시 된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까닭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 (처자식에 대한 혹은 부모, 형제자매에 대한) 무책임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봉건적 유교적 인식체계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그러한 경향이 더욱 분명하다.

무엇이 좋고 나쁜 것인지 혹은 옳고 그런 것인지 판단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자발적으로 충실한 개로 살아가는 것이 개인의 자존감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선택하고 살아가면 된다고 본다. 그것을 3자가 좋고, 나쁘다는 식으로 이러쿵저러쿵 왈가왈부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마다 과거의 경험과 살아온 세월, 생각하는 것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엄성이나 자존감대신 목구명의 포도청을 선택하거나 충실한 개를 선택했다면.. 그 선택은 존중 되어야 할 것 같다.

헌데 문제는 이런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자존감을 살리고자 한다면.. 그래서 개기거나, 방항하거나, 도전하려고 한다면.. 그래서 충실한 개로 침묵하며 살기를 선택하지 않고 자신의 존엄이나 자존감을 찾으려 하면.. 왜 책임감이 없다고 혹은 세상을 모른다는 식으로 욕을 먹는가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충실한 개가 되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충실한 개가 되기를 선택한 사람들은 그런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 정당성과 존중을 요구한다. 좋다. 누가 뭐라하겠는가..자신의 선택인데..

헌데 왜 다른 선택(즉, 자신의 존엄성과 자존감)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책임감이 없다거나, 세상을 모른다거나, 뭐그리 잘났냐거나, 잘난척 한다고 비난 또는 재단 혹은 조리돌림을 하는가 말이다. 자격지심때문일까.. 대한국민들의 이중성과 기만성은 그러한 이율배반적 행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어떤 선택이건 쉽지 않은 선택이다. 자신의 자존감을 버리고 충실한 개가 되기를 선택하는 것도 어렵고, 자신의 자존감을 찾겠다고 맞써는 것도 어렵다. 헌데 왜 서로 다른 선택에 대한 반응이 판이하게 달라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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