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
‘인류의 절반이 매일 뉴스에 넋이 나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언론을 통해 결코 접할 수 없는 헤드라인이다. 그 밖의 놀랍고 주목할 만하거나 부패하고 충격적인 일들은 무엇이든 드러내려고 안달하면서 말이다.
어째서 우리 대중은 계속 뉴스를 확인하는 걸까? 이는 공포와 큰 관련이 있다. 뉴스에서 눈을 떼고 나서 아주 짧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습관처럼 불안이 축적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들이 쉽게 잘못되는지, 또 순식간에 벌어지는지 안다.
뉴스를 접하고 나면 예측 가능한 일상의 쳇바퀴 앞에서, 우리의 이상한 욕망을 우리가 정말 단단히 비끄러매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동료를 독살하거나 친척을 안뜰에 묻어버린 적이 결코 없는 자신의 자제심 앞에서 새삼 안도한다.
오늘날 우리가 뉴스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장소는 지구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뉴스는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아침 일찍 일어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는 대륙을 오가는 비행기를 타고 우리를 따라온다. 뉴스는 자녀가 잠자는 틈을 타 우리 주의를 낚아채려고 대기중이다.
오늘날 고요한 순간을 누린다는 건 얼마나 커다란 성취인가. 깊이 곯아떨어지거나 친구와 산만하지 않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참으로 흔치 않은 기적이 아닌가. 우리가 뉴스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단 하루라도 빗소리와 자기만의 상념에 귀기울이기 위해서는 실로 구도자적인 훈련이 필요하지 않은가.
정작 문제는 우리가 더 많은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접한 그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 이런 것들이 진정 의미하는 바가 뭐란 말인가? 이 사실들은 정치적 삶의 핵심적 질문들과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이 뉴스들은 우리가 뭘 이해하도록 돕는 걸까?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는 지금 이러한 공감 능력을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그건 부분적으로는, 우리가 받아들이는 지나치게 많은 정보들이 우리 깊은 자아가 소화할 수 없는 데이터 혹은 추상적인 사실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창조적 파괴’는 경쟁적인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약체인 회사가 제거되는 것을 묘사할 때 금융업자들과 경제학자들이 유용하게 써먹는 추상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미에 현 공장 부지에서 실제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수십 년간 쌓인 섬세한 노동, 노력, 계획, 원동력과 희망이 잔인한 종말을 맞는다는 것이다.
상처 입은 셀러브리티는 자신이 지닌 가치만을 생각하라는, 세상이 뭐라 말하건 무시하라는 충고를 듣는다. 하지만 애초에 그들이 세상 사람들의 생각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신경쓰는 성향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유명해질 수 있었겠는가?
명성에 대한 갈망을 해소하는 가장 확실한 치유제는 궁극적으로 친절함과 존경심이 공평하게 넘쳐나는 세상이라는 사실 또한 우리는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비극을 통해 우리 자신이 비도덕적이고 맹목적이거나 폭력적인 행동에 무척이나 가까이 있다는 점을 때로 상기해야 한다.
뉴스는 문학이나 역사학처럼 ‘인생의 시뮬레이터’로 기능할 수 있다. 일상의 경험을 훨씬 뛰어넘는 다양한 상황 속으로 우리를 안내함으로써, 여유가 있을 때 그런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 방안을 미리 생각해보도록 돕는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뉴스가 더이상 우리에게 가르쳐줄 독창적이거나 중요한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챌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 그때 우리는 타자와 상상 속에서만 연결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타자를 정복하고 망가뜨리고 만들거나 없애는 일을 그만둘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할당된 짧은 시간 속에서 견지해야 할 자신만의 목적이 있음을 자각하면서 말이다. --- 본문 중에서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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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때문인지..아니면 작가 고유의 문체때문인지 잘 모르겠으나..문장을 쓸데없이 어렵게 써놨다. 위 책속으로에서 소개하는 내용들을 보면..쉽게 써놔도 될 말을 괜히 어렵게 써놨음을 알 수 있는데..아마 번역의 한계이거나 작가특유의 문체인 듯 하다. 암튼 쓸데없이 말이 어렵게 해놨다.
어쨋거나 개인적으로 괜히 있어 보이려고 문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쓸데없이 문장을 어렵게 써놓은 책은 일단은 읽기가 불편하고..그래서 머리속에 각인되질 않으며..그래서 생각의 기회를 갖기가 좀 불편하다. 비교하자면.."총균쇠"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의 난이도와 방대한 분량과 전문성에 비해 쓰여진 문장이 대단히 평이하게 써져있으며 읽어내기 수월하고 그래서 이해가 쉽다. 아마 그 책을 번역한 번역가의 능력이거나 작가의 능력이지 싶다.(현재 총균쇠는 그 분량이 방대하여 완독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고 있다..-.-)
어려운 것을 쉽게 써 놓는 것이야 말로 책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자세다. 물론 해당 책이 어떤 독자를 타켓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책이라는 것이 불특정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면..전문적인 주제라도 독자에게 이해와 생각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우선 문장을 쉽게 써놔야 좋다. 그래야 독자는 이해와 생각의 능력을 보다 쉽고 즐겁게 키울 수 있다.
예를들어 책소개에 나온 첫 문장.."인류의 절반이 매일 뉴스에 넋이 나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언론을 통해 결코 접할 수 없는 헤드라인이다. 그 밖의 놀랍고 주목할 만하거나 부패하고 충격적인 일들은 무엇이든 드러내려고 안달하면서 말이다." 이라는 문장을.. 나 같으면 이렇게 적어 놓겠다. "인류의 절반이 매일 뉴스에 넋이 나가 있다는 것을 언론은 (결코 헤드라인을 통해) 드러내지 않는으면서 그 밖의 놀랍고 주목할 만하거나 부패하고 충격적인 일들은 무엇이든 드러내려고 안달한다" 라고 적어 놓겠다..
암튼 그러한 이유로 한 번 읽어볼만은 하지만..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내용도 개인적으로 봤을때 딱히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인다. 뉴스에 대한 작금의 모양새와 앞으로 어떤 방향성과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다른 많은 방향성과 방법론은 제시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알랭드보통은 대한민국에서 필요이상 과대평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대체로 유럽(특히 프랑스)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들을 보면 좀 과대평가된 것이 아닌가 싶다. 나의 능력부족인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프랑스 작가의 책들은 도무지 재미를 못 느끼겠다. 쩝. 개인적으로 10점만점에..6.5점 정도다.
이 책에 대해 더 쉽게 알고 싶다면
차라리 아래의 동영상을 참조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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