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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민주주의나 평등, 정의 등과 같은 말은 대단히 추상적이여서 그것들이 진정 존재하는지, 그리고 과거에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인지에 대해 단언하기가 힘들다. 그것들은 구체적인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을 진보와 발전이라고 한다면..진보와 발전은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님을 생각하게 된다. 작게는 위와 같은 사람들과 크게는 독립운동이나 전쟁 중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까지..이런저런 크고 작은 사람들의 자기 희생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러나 아쉽지만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의 사람들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그 소수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열매를 만끽할 뿐이지만..크건 작건 그것에 대한 감사 혹은 고마움을 품고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싶다. 문제는 그들에 대한 그 어떤 감사나 고마움은 고사하고 그들의 수고와 희생을 격하시키거나 업으이 여기거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다수의 사람들이지 않을까.
큰 희생과 작은 희생이 있을 수 있겠지만..결국 자신의 시간, 정력, 돈 등을 소모하여 다수의 행복을 구현하려는 것을 희생이라고 한다면 그 희생이 크건 작건..그 크기의 문제는 둘째 문제다. 우선 인식해야 할 것은 그러한 크고 작은 희생이 결국 희생이라는 범주에 있다는 사실이다. 즉 크건 작건 희생은 다수를 위해 개인을 소모한다는 것은 똑같다는 말이다. 사람마다 생각이나 인식의 범주 혹은 이해력이나 지각능력 등이 모두 다르듯..희생이란 것도 사람다다 다를 수 밖에 없다.
타인을 위해 혹은 자신과 무관한 그 무엇을 위해 자신을 자발적으로 소모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불확실성이다. 즉 자신들의 희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들 자신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크고 작은 희생이 다수에게 긍적적 결과 혹은 혜택을 가져다 주기를 믿을 뿐이다.
위대한 생각이 언제나 다수의 어리석고 우매한 생각들에 의해 참수당하는 것처럼..소수의 희생에 의해 만들어진 열매는 대부분 다수의 방관자였던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그때 다수의 사람들이 취해야할 태도는 작건 크건 자신의 수고를 기꺼이 감수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혹은 미안함이지 않을까 싶다. 타인의 자발적 수고를 마치 자신이 누려야할 권리로 착각하지 않는 최소한의 인식능력과 지각능력이지 않을까 싶다.
염치를 안다는 것은 얼핏 쉬워보이지만 태어날때부터 자연스럽게 지니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염치와 미안함을 알고 느낀다는 것은 쉽지않은 일인 것 같다. 어쨋거나 세상에는 이런저런 유명, 무명의 자기희생자들이 많은 것 같으며..표현하지는 않겠으나 이래저러 염치가 없지만..부디 그들이 견승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희망한다.
영화 암살 - 대한민국 독립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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