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30, 2016

외면하고 변절하고 배신하고 부정하고 부패할까..

[펌] MBC 언론노조 파업 후 여자 아나운서들의 행보..
파업 끝까지 있던 아나운서들

문지애 -> 파업전 MBC간판. 파업에 끝까지 참여로 좌천된 후 퇴직. 프리선언. 현 EBS 라디오 진행.
서현진 -> 유학 갔다가 귀국해서 파업 동참. 2014년 퇴사, 최근 책 내고 북콘서트 중.
최윤영 -> 퇴사, 아이 때문이 퇴사 이유라 밝힘.
김경화 -> 대기발령 등 좌천되었다가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했으나 등판 전무.
최율미 -> 대기발령 등 좌천되었다가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했으나 등판 전무.
최현정 -> 대기발령등 좌천되었다가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했으나 이상한 라디오 프로그램 PD를 맡기고 프로그램 배제, 결국 올초 MBC 퇴사.
나경은 -> 파업 이후 2013년 MBC 퇴사
박혜진 -> 파업 전에 MBC 간판 아나운서였으나 파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좌천, 2014년 퇴사
김주하 -> 파업에 직접 참여는 안 했으나 육아 휴직 중이라 중반에 파업에 동조하여 유인물 함께 뿌리는 등 활동. 그러나 MBN행
손정은 -> 파업 후 프로그램 배제, 아직 아나운서국에 남아 있으나 등판 전무.


파업 배신 때리고 복귀한 둘

배현진 -> 배반 때리고 MBC에서 간판되었음
양승은 -> 배반 때리고 MBC에서 서브 간판.(일요일 영화 프로그램 장기 진행, 아침 프로 진행)



***

왜 사람들은 부조리와 모순을 외면하고
정의를 추구하다가도 변절하거나 부패하고
지란지교를 말하다가 돌연 배신하고
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런 물음을 한마디로 답을 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각 개인은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며
또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함이다.
인간은 왜 변절하고 배신하고 부정하고 부패할까..? 어찌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배신과 부정과 부패 그리고 변절 혹은 비정의가 자신에게 더 많은 이익, 혜택 등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혹은 학습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은 자신에게 이익이 될 때 언제든 부정하고 배신하며 부패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모든 인간은 사회에 속하면서 각자의 사회적 역활을 수행한다.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는 실패 했으며 지금은 자본주의 시대다. 아직 자본주의를 대처할 만한 다른 이념적 제도적 대안은 아직 없다. 그
러한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한 개인에게 있어 '먹고 사는 문제'는 가장 중요한 관심거리이며 과제다. 거기에 남들보다 더 잘, 더 좋게 먹고살고자하는 인간의 욕망이 더해질 때 인간은 부정하고 부패하며 변절하고 배신하는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에서 모든 인간은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끝없는 자기 내부적 고민과 투쟁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사회에는 부정과 부패 또는 정의와 비정의가 존재하며..사회 구성원들은 그러한 부정과 부패, 비정의적 사회 또는 조직속에서 옳고 그름, 선과 악 사이에서 어떤 판단적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해 갈등하고 고뇌하게 된다.

어떤 쪽, 어떤 편에 속할 것인가는 한 개인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선택이다. 왜냐하면 어떤 편에 속하냐에 따라 평생 먹고 사는 문제 또는 먹고 사는 것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선택 앞에 직면했을 때 한 인간은 어느쪽이, 어느편이 자신에게 더 윤택한, 부유한 삶을 제공해 줄 것인가를 기준으로 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데 어떤 편에 속하냐는 그 선택이 자신에게 먹고 사는 것, 부귀영화, 이익, 혜택 등을 가져다 줄것인가가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정의와 청렴쪽을 선택하는 것이 물론 개인적 (자기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필연적) 만족감 때문일 수 있겠지만.. 그 개인적 만족감을 위해 그 자신이 감수해야하는 고통의 강도가 그 개인 자신뿐 아니라 그 가족 등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치뤄야할 희생의 댓가가 한 개인(및 그 친족 혹은 가족)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자신을 희생하여 타인 혹은 사회 혹은 국가를 위해 노력한 희생한 사람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존경하고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역사나 시대의 영웅을 그리는 영화나 소설, 드라마의 등장인물중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자신의 부귀영화를 선택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언제나 타인/사회/국가를 위한 삶을 선택한다.(사실 요즘엔 국가는 좀 제외시켰으면 싶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의 이익에 유리한 쪽을 선택하는 인물들도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드라마를 보면서 부귀영화를 선택한 사람들은 비난하고 감정적으로 싫어하는데.. 왜그럴까? 왜냐하면 그들의 그 선택이 (타인에 대한 배려 없는)자신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며 그 과정 역시 타인에게 유해를 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지 싶은데.. 현실에서는 그 사람들 역시 정의보다는 부정과 부패를 선택할 확율이 높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어떤 쪽을 선택할 것인지, 어느 편에 설것인지의 문제는 대단히 난해한 문제이며 쉽지않은 것이며 어찌 생각해 보면 자신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싶지만..그렇다고 권장하기도 어렵다. 세계사나 역사를 돌이켜보면..아이러니하게도 소수의 사람들이 치른 희생의 결과로 소위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등) '발전'을 이루어 냈기 때문이다. 물론 다수의 사람들이 이루어낸 발전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는 일부의 경우이고 거의 대부분은 소수의 사람들이 공익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함으로써 발전이 얻어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말이 길어진다. 폐일언하고..과연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존재한다면 각 개인은 과연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고 구현시키는가..라는 질문들은 비록 답을 주지 않더라도 대단히 중요한 질문들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질문을 통해 각자 스스로 얻어지는 답에 따라서 각 개인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와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아니 우리는 어느쪽을,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헨리 조지 Henry George 1839~1897
부패한 민주정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정직성이나 애국심은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거둔다.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떠오른다.
악한 자는 더 악한 자에 의해서만 쫓겨날 수 있다.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 자,
그리하여 결국 존경도 받게 되는 자의 특성을 점차 닮게 마련이어서
국민의 도덕성이 타락한다.

이러한 과정은 기나긴 역사의 파노라마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 되면서,
자유롭던 민족이 노예 상태로 전락한다.

(중략)

가장 미천한 지위의 인간이 부패를 통해
부와 권력에 올라서는 모습을 늘 보게 되는 곳에서는
부패를 묵인하다가 급기야 부패를 부러워하게 된다.

부패한 민주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
생명은 죽고 송장만 남으며 나라는
운명이라는 이름의 삽에 의해 땅에 묻혀 사라지고 만다.
- 1879년 헨리 조지의 저서 <진보와 빈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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