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상자 詩論 - 함민복
종이상자가 납작하게 접혀 있다
종이상자는 겸손하다
물건을 담기 전 자신의 모습을 내세우지 않는다
종이상자에도 글씨가 있다
글씨가 내용이 되지 않고
내용물을 대변한다
주로 질 낮은 종이로 만든다지만
파도 모양 골판지로 음양의 힘을 깨치며
중심에 어깨 맞댄 비움의 뼈대를 촘촘히 채운다
종이상자는
나란히 연대하고
차곡차곡 공간을 절제한다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담아내는
시(詩)가 더 깊은 시라면
종이상자는
과묵한 시집이다
나무처럼 우직한 시인이다
***
종이상자는 겸손하다
종이상자는 대변할 뿐
내용물이 되려하지 않는다
종이상자는 연대하고 절제한다
담아내려하는 종이상자는
나무처럼 우직한 시인이며
과묵한 시집이다
사람도 우직하고 과묵한 사람이 제격..
한데.. 현실에서 시인같고, 시집같은 사람은
빈궁한 사람이라고 인기가 없다.
겸손하고 대변하고 연대하고 절제하고
담아내려는 우직하고 과묵한 사람은
이 박터지는 천민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어찌 연명하고 있을까..
사람들의 타박에도 낙담하지 않는 종이상자여
네가 사람보다 낮구나..쩝.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