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30, 2017

보수, 아니 수구는 틀렸다.




Conservatism and Liberalism are wrong.

노벨 경제학상 ​Joseph Stiglitz가 말하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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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글에서 말하는 보수는 한국의 보수,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보수주의의 탈을 쓴 '수구주의'로 한정해야 할 것 같다. 극히 일부 다른 국가 혹은 사회에서의 보수는 이 글에서 말하는 보수와 좀 다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의 보수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한국의 보수와 '같다' 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쩝.
암튼.. 그동안 보수와 진보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몇 번 포스팅 한 적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보수란 약간 염치없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싶다. 과거의 인간 역사를 돌아보면 과거의 어떤 것(특히 부조리와 모순 등)을 바꾸고,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인간이 가지는 진보성 때문이다.

소위 보수주의자들은 인간 문명 혹은 제도 발달 과정에서 진보에 의해 이루어지는 이른바 "발전"이란 것에 무임승차하고.. 그 진보된 혹은 발전된 제도와 문명을 자신의 사익추구를 위한 도구 또는 방편으로 삼는 부류인 것 같다. 이른바 '보수'에게 진보된 혹은 발전된 제도나 문명의 이용함에 있어 그 발전을 이루기 위해 힘겹게 부조리와 모순에 맞서 싸운 진보적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에 대한 고마움 따위는 없는 것 같다.
다만, 변화나 발전이 이루어지고 나면 그것들이 가지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간혹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수주의자들 중에 그 분야에 몸담고 있어서 새겨 들을 만한 것도 있지만 또 간혹은 이런저런 평론가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그저 일을 마치고 나면 숟가락 얻는 부류의 사람들이 많다.
안타깝게도 보수성은 인간의 본성인 까닭에 대부분의 경우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를 늘 이기는 경향이 있으며 발전에 몰입하느라 사익추구에 뒤처진 진보들 보다 더 많은 이익을 구축/비축한다. 그것은 마치 '악'이 '선'에 (단기적으로) 항상 앞서는 것과 유사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간의 역사에서 보면 언제나 진보는 단기적으로는 보수에 항상 패배 그래서 진보는 늘 배고프고 빈곤하며 핍박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진보적 인간들은 끊임없이 보수와 맞서 발전 혹은 진보를 추구하고 도전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항상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대게 그렇다는 거다.
대게 보수적인 사람들은 그 사회의 기득권층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반대로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성을 드러내는 희한한 현상이 존재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포스팅했던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적인 이유에 대한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진보성과 보수성은 정상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유하고 있는 경향성이지만.. 특히 보수성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좌와 우,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으로 편가르기가 이루어졌다. 물론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도 편가르기는 있었지만 보수적 성향의 사람들의 편가르기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것 같다. 그러한 편가르기는 보수주의자들의 사익추구 과정에서 대단히 유용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말이다.
사적 공간에서의 (공정 혹은 정당한 방법 및 수단으로의) 사익추구는 잘못된 게 아니다. 문제는 사익추구를 공적 영역에서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사익추구라는 사적 욕망을 공리주의로 가장하여 철저히 감춘다는 것이 문제인 거다. ​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구 말처럼 한국에서 벌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갑론을박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의와 비정의, 상식과 비상식, 선과 악의 문제인 것 같지만.. 편가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언제가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적 편가르기일 뿐인 것 같다. 그리고 상식과 비상식에 덧붙여 개인적인 한 가지를 보탠다면.. 아마 "어리석음 혹은 우매함 과 "현명함 혹은 깨우침"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는 것이다. 여전히 케케묵은 편가르기가 일부 먹히고 있는 걸 보면.. 아직 한국 사회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물론 언젠가는 그 길을 완성하겠지만 말이다.


거의 분명한 것은 보수의 생존본능과 생명력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그 이사의 상상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그러한 생명력과 생존본능은 그들의 사적 이익 추구에 대한 욕망 추구의 과정에서 보여주는 악착같음과 일맥상통한다. 그들은 결코 기존에 누리던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으며 아사 직전이라도 기회만 포착되면 (그들이 쌓은 물적 능력을 발휘하여) 언제건 다시 부활하려 하고, 또 부활할 수도 있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들이 부활하는 방법으로 이용되는 소위 품격있는 민주주의적 제도 혹은 법규가 과거 그들과 저항하여 진보가 만들어낸 방법으로써의 제도와 법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http://news.jtbc.joins.com/html/665/NB11408665.html)

https://youtu.be/oCYzVaQRutw
조 대위, 이슬비 대위
이완영 의원 이경재 최신실 변호사



작금에 벌어지는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 청문회를 통해서 비치는 이른바 보수라 불리는 그들의 모습은 그런 그들의 이익 추구에 대한 끝없는 욕망, 그리고 그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살려는 생명력, 생존 욕구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드러내는 것 같다. 살기 위해 그들은 무슨 짓이건 한다. 남의 삶, 목숨, 공동체의 안전..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오직 자신들의 영위만이 제1의 가치인 것 같다. 물론 염치, 미안함 따위도 없다. 청문회 등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거짓말 같은 증언들을 보면서.. 왜 그들을 그토록 의문투성이고 앞뒤가 잘 맞지않는 논리를 펼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들의 그런 말과 행동의 이유는 그들이 축적한 이익의 손실에 대한 미련과 그 댓가로 돌아올 이익이다. 한마디로 다~ 돈 때문이라 거다. 위증과 거짓의 대가로 유형무형으로 주어질 이익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건, 공동체가 어떻게 되건 오직 자신의 이익과 번영, 그리고 생존만이 중요할 뿐이다. 다만 좀 황당한 것은 일부 어리석고 우매한 가난한 사람들이​ 그런 그들과 동지애를 가진다는 것인데.. 대단히 웃기를 짬뽕 같은 경우라 할 수 있다.
박 대통령 “CJ 좌파성향 바꿔라” 손경식 “죄송, 모두 정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78845.html?_fr=mt1

"김경숙, 거짓말을 워낙 진짜처럼 뻔뻔하게…" 특검팀도 혀 내둘러
http://story369.com/Article/ArticleView.php?UID=10205213


엄마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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