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을 바로 잡겠
다는 것은
흔히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하지만..
바위가 아무리 강해도
바위는 죽은 것이고, 계란은 살아있다.
바위가 아무리 강해도
바위는 죽은 것이고, 계란은 살아있다.
계란은 살아서 바위를
넘는다.
- 영화, 변호인 중에서
-
***
계란은 살아서 바위를 넘는다는 말에 방점이
찍힌다.
죽은 것은 살이 있는 것을 이길 수
없다.
비논리가 논리를 이길 수
없듯이
저급함이 품격을 이길 수
없고
비이성은 이성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때때로 예외적인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바위가
계란을
이간적이 많았음을 상기할
때 좀 먹먹해지는
말이다.
'바위'가 부정과 부패, 억압 같은 것들의
상징이라면
'계란'은 정의 혹은 자유 같은 것의
상징이다.
질문은 이런 것이다.
나는 바위를 넘을 수 있을까? 아니 넘은 적이
있었던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바위를 넘고자하는
의지는 있는 것일까?
모두가 바위가 되고 싶은 사람들 속에서
왜
어떤 사람들은 계란으로 남아서 바위를 넘는 수고를 왜
자처하는가?
껍질이 깨지고 부서지면서 왜 그들은 바위를
넘으려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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