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8, 2017

계란과 바위..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을 바로 잡겠 다는 것은
흔히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하지만..
바위가 아무리 강해도
바위는 죽은 것이고, 계란은 살아있다.
계란은 살아서 바위를 넘는다.
- 영화, 변호인 중에서 -
***
계란은 살아서 바위를 넘는다는 말에 방점이 찍힌다.
죽은 것은 살이 있는 것을 이길 수 없다.​
비논리가 논리를 이길 수 없듯이​
저급함이 품격을 이길 수 없고
​비이성은 이성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때때로 예외적인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바위가 계란을
이간적이 많았음을 상기할 때 좀 ​먹먹해지는 말이다.

'바위'가 부정과 부패, 억압 같은 것들의 상징이라면
'계란'은 정의 혹은 자유 같은 것의 상징이다.
질문은 이런 것이다.
나는 바위를 넘을 수 있을까? 아니 넘은 적이 있었던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바위를 넘고자하는 의지는 있는 것일까?
모두가 바위가 되고 싶은 사람들 속에서 왜
어떤 사람들은 계란으로 남아서 바위를 넘는 수고를 왜 자처하는가?

껍질이 깨지고 부서지면서 왜 그들은 바위를 넘으려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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