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4, 2017

선과 악-선은 악을 이길 수 없나?


In ordre for non-violence to work, your opponent must have a conscience. ​
"비폭력이 (운동으로써)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양심이 있어야 한다."
***

예전에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선'이 '악'을 이기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는 양심/염치/미안함/자기반성 등의 도덕적 관념이 매우 낮거나 없기 때문이다. 상식이 비상식을 이기기 힘든 이유, 정상이 비정상을 이기기 힘들 이유, 정의가 비정의를 이기기 힘든 이유, 정직이 부패를 이기기 힘든 이유, 선의가 악의를 이기기 힘든 이유, 법이 범죄를 이기기 힘든 이유, 품격이 저급함을 이기기 힘든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선'과 '악'으로 대변되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의식 사이의 충돌 혹은 경쟁 혹은 싸움에서 '선'이 '악'을 이기기는 대단히 힘들다. 그것은 더 도덕적이고,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쪽이 항상 불리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박사모라던가, 태극기 집회라던가, 박근혜의 행태라던가, 그리고 그 추종자 혹은 변호인들의 행태와 같은.. 평범한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현상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악'은 양심이나 도덕 등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상대적으로 '선' 보다 그 행위의 수행이 유리한 것이다.
그들의 저급함을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이 마땅하지 않다. 스스로 깨치기 전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로 인하여 '선'이 떠맡아야 하는 양심적, 도덕적, 윤리적 고통을 공동체의 '선'한 구성들이 균등하게 나눠가진다는 것이다.(물론 ''악'은 그런 양심적 고통을 나눠 같지 않는다. 왜냐하면 애초에 양심이나 도독적 관념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고통이 없거나 덜 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는데.. 그것은 그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면.. '선'이던 사람들의 일부가 그 고통의 책임이.. '악'이 아니라 '선'에게 있다고 (부지불식간에) 믿게 되는 황당한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악'에 합류하거나 침묵했으면 아무 문제없었을 텐데.. 왜 '선'이랍시고 유난을 떨었을까 하는 식으로 (스스로에게 혹은 다른 선한 누군가에게) 비난을 하게 되는 경우 말이다.
'선'한 사람들이 그렇게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생각하는 힘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선함'과 '생각하는 힘'은 별개의 과제다.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힘을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이지만 무지하고 어리석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선'은 효율성이 떨어진다. 허긴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효율적이고 편안한 쪽을 선택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악'의 편에 서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게 되면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경우 ''선'보다는 '악'을 선택하게 되는지, 왜 정의를 외면하는지, 왜 부정부패에 끼어드는지.. 아니 왜 '악'에 가까워지는 경향을 갖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당자의 현실에서 '악'은 편안함, 편리함, 유리함, 배부름,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선'은 대게 배고픔, 힘없음, 불편함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익만을 추구하여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백 년이 지나도 제자리를 찾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 백년의 시간동안 사회 구성원 전체가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전근대성이란 현재 시대에서 요구하는 이념이나 관념을 겸비하지 못하고
과거의 이념이나 관념에 사로 잡힌 맹신적 믿음의 일종이다.
한 번 굳건히 자리잡은 그 믿음은 왠만해서는 타파되지 않으며
끝없이 구성원들 사이에서 충돌을 일으킨다.

2017년 3월 1일
과연 어떤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져야 할 것인가..

2017년 3월 1일
과연 어떤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져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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