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30, 2017

먹고 사는 것이 인간 존재의 목적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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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는 것만이 존재의 목적일 수 있을까..
안도현 시인의 열심히 산다는 것이라는 시를 보면.. 버스기사와 노파가 등장한다. 버스비를 내는데.. 동전 몇 개가 모자라.. 모른 척 슬쩍 돈 통에 밀어 넣다가 버스기사에게 들킨 노파를 나무라는 버스기사를 보았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생각을 할까? 버스기사를 탓할 것인가, 노파의 거짓을 나무랄 것인가. 열심히 사는 노파와 버스기사를 측은하게 여길까, 아니면 모른 척 슬쩍 모자라게 버스비를 낸 노파를 나무랄까.. 그 노파가 우리 자신이라면 좀 더 관대했으려나..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문제는 대단히 난해한 문제다. 사실 정답도 없어 보인다. 모르겠다 혹시 정답이 있을지..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 난 정답을 찾지는 못했다.
열심히 산다는 것.. 열심히 먹고사는 것에만 몰두한다는 것.. 인간으로, 사람으로 살려면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은 막고 사는 것이 목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에 누군가 대중은 개. 돼지라고 한 것에 욱했지만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 속에는 여전히 먹고사는 것이 삶의 전부인 사람들이 존재한다. 매우 난해하지만 달리 도리나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먹고사는 것은 실제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에는 먹고사는 것에만 몰두할 수 없다. 먹고사는 문제에 열심히면서.. 동시에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다양한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생각하는 능력, 논리적 사고능력, 지각능력, 인식능력 등이 작아지거나 적어지면 인간과 개, 돼지와의 구분이 점차 모호하고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깨치지 않으면 성인이 된 사람이 한순간에 바뀌지는 않는다. 속세의 삶이란 그처럼 서로 다른 인간 군상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부대끼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시대가 변할수록 사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는 먹고사는 문제에만 몰두하고 그것만 해결하면 되었다.
하지만 현대사회 미래사회로 갈수록 먹고사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시작한다.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하고, 생각해야 하고, 그 생각과 배움을 합리적이면서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드러낼 줄도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갈수록 각 개인의, 대중의, 국민의 책임이 커지는 것이다. 어느 사회 건 그 사회의 수준을 대변하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서다.
노예 시대나 봉건시대 신분사회 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먹고사는 것만 해결하면 되었지만 진화된 민주 사회로 갈수록 해야 할 것,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진다. ​ 때로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배우고 생각해야 해서 지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점점 산다는 게 단순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같은 부와 권력을 가질 수 없다. 아무리 사회가 발전해도 당장 먹고사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는 사람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덜 선진화되었다고나 할까.. 쩝. 도리가 없다. 시간이 약이다. 앞으로 많은 시간.. 한국과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들은 정신적으로 더 진화해야 할 것 같다.
먹고사는 것에 대해서
http://blog.naver.com/parangbee/22050315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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