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8, 2017

잘못된 명령/지시/훈육은 거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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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말을 우리의 일상에 적용시켜 보자. 상사의 잘 못된 지시, 사장의 잘 못된 지시를 일반 직원이 쉽게 거부할 수 있을까? 거부해서 얻어지는 것은 무엇이며 달라지는 것은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거부하기 쉽지 않다는 것과, 거부해서 얻는 것도 없고, 달라지는 것도 없다. 얻는 것이 있다면 해고 아니면 조직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식의 핀잔, 꾸중, 비난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위의 말을 약간 더 확장시켜 보자. 부모, 어른, 선생의 잘 못된 지도, 지시, 교육을 거부할 수 있을까? 거부해서 얻어지는 것은 무엇이며 달라지는 것은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부모 어른 선생의 잘 못된 명령, 지시, 교육을 거부하기는 더 어렵다는 것과, 거부해서 얻는 것도 별로 없고, 달라지는 것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얻는 것이 있다면 세상을 알지도 못하는 어린 것이 부모, 어른 선생의 사랑하는 마음을 모르고 싸가지 없고 예의 없는 패륜아쯤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위와 같은 경우는 우리의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근데 왜 그럴까? 왜 동양 주의 사회에서 위와 같은 거부가 용인되기가 더 어려워 보이는 것일까? 그건 유교주의 성리학 등으로 대변되는 동양 주의적 세계관 때문이다. 수없이 포스팅된 것이지만 동양 주의는 기본적으로 수직적 구조다. 즉, 위에서 아래로의 명령, 지시, 교육 등의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과 인간이라는 수평적 관점보다는 위와 아래라는 수직적 관점이 사회를 지배한다.

유독 동양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부조리와 모순의 그 모든 근원적 뿌리는 바로 그러한 유교주의적, 동양 주의적, 전근대적 관점 호은 세계관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공자, 논어, 맹자 등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은 빈말은 아니다. 7천 년 만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동양사회가 기껏 몇백 년 혹은 1-2천 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서양 주의에 무릎을 꿇은 작금의 시대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도래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서양 주의가 절대 진리는 아니지만.. 적어도 동양 주의보다는 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적어도 지금의 시대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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