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주체는 세계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주체는 오직 능동적으로 세계 속으로 개입해야만 세계를 알게 되며
오직 세계를 능동적으로 변화 시킴으로써만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
그러나 세계를 두루 여행한 후 자신에게 돌아온 주체는 출발했던 주체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축적된 경험이 그가 세계를 보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고
어떤 식으로든 세계에 대한 그의 태도를 수정했기 때문이다.
- 카렐 코지크의 구체성의 변증법 중에서..
***
오래전 나를 길 떠나게 했던 글이다. 이 글귀를 아로새길 당시의 나는.. 꽤나 우울한 청춘을 보내고 있었다. 아니, 그 당시의 우울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모두가 우울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시절이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그 우울한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비롯하여
납득할 수 없는 이런저런 사건들과 현상들을 보고 들으면서.. 도대체 한국 이외의 다른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그 구성원들의 삶을 엮어가는지가 무척이나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리하여 어렵게 노잣돈을 마련하여 길을 떠나게 되었으며.. 꽤나 오랫동안 객지를 배회했다.
그 당시는 도무지 떠나지 않고는 배겨 낼 수 없는 한없는 우울함이 내 의식을 좀먹고 있었다. 우울한 패배주의가 나를 잡아먹어 버리기 전에 일단 탈출하고 볼 일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기는 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선한 자들은 설 곳이 없었고 악한 자들은 득세를 하고, 그들이 가진 이런저런 정치적 자본적 권력을 휘두르며 그들의 배를 불리고 있었다. 더블어 대중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빠.. 도대체 그 부조리한 현상을 면밀히, 세밀히, 확실하게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일부 정의로운 자들을 비난하고 매장하는 것에 동참하기까지 했다.
어리석은 대중이란 말에 슬픔을 느끼던 그런 때이기도 했다. 비록 내가 떠돌던 그 객지가 세계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협소하기만 한 대한민국은 아니 엇음으로 미약하나마 다른 세계를 여행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능동적으로 세계 속에 개입하는 것에 끝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능동적으로 세계를 변화 시키지 못하는 것에 있었다.
그렇게 세계를 여행한 후 변화된 세계를 보는 나의 방식과 태도가 기존에 존재하던 (대한민국적) 방식과 태도와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 충돌은 처음 세계 속에 개입하고자 길 떠날 때의 그 설레는 두려움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좌절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에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그 방식과 태도라는 것은 그 어떤 차이나, 나와 다른 방식과 태도에 대해서 전혀 관대하지 않은 세계이기 때문이다.
비록 세계를 여행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어쩌면 나는, 아직 내 자신에게로는 돌아오지 못한 모양이다. 요컨대 세계를 능동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 같다는 것이다.
온전히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 한 남아있는 나의 변화된 인식 체계와 한국적 인식 체계와의 충돌로 야기되는 이 우울을 타파하지 못할 것 같다. 어쩌면 능동적 변화시킴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야 할 혁명의 한 부분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세계를 여행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나의 변화된 인식과 태도가 과연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괴뇌와 번민을 더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체 소득 순위 29위인 나라의 물가 순위가 세계 2위인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소득은 2만 불도 안되는 사람들이 소비는 4만 불인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납득해야 하는지 난감하다. 맹목적 민족주의와 집단주의는 왜 그리 만연한 건지.. 여전히 대한민국은 내게 이해하기 힘든 곳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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