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다고 세상 안 바뀌어..."
영화 1987에 저 대사가 나오면서.. 저 말이 화제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1987년 이후 2018년 현재.. 약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저 말을 보면서..생각에 잠긴다.
저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에서 저 말은 맞는 말이 되고 또 틀린 말일까? 그 기준은 아마 "시간"이 아닐까 싶다. 즉 시간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애 따라 저 말은 맞는 말이면서 또 틀린 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단기간(ex: 10년 내외)에 세상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간혹 단기간에도 바뀌기도 하겠지만) 하지만 장기간(ex: 30년, 1세대 또는 100년)의 시간이 지나면 세상은 거의 예외 없이 반드시 바뀌는 것 같다.
다수 또는 공공의 선을 위해 자신이 겪는 수고와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지금을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에게 “그런다고 세상 안 바뀐다"라는 말은 꽤 치명적인 말이며 난해한 문제다.
근데 저 말은 단지 공공의 선 같은 대의(大義)을 위해 애쓰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다고 저 사람이 바뀌겠어.. 그런다고 내가 바뀌겠어.. 등등) 작게는 개인의 삶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저 말은 작게는 자기 자신 또는 조직, 집단, 사회 속에서 어떤 목표를 구축하고 실현하려는 모든 주체들에게 번뇌와 고민을 던지는 말이며 때때로 비수가 되어 꽂히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 영화 1987이 흥행 중이라고 한다. 1987년 그 당시 어떤 사람들이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그야말로 굳게 믿었었고.. 꽤 오랫동안 그들의 그런 믿음은 사실이었으며 일정 측면 또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세상은 안 바뀐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한 말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아마 박근혜, 김기춘, 우병우 또는 전근대적 마인드를 철옹성처럼 지켜가는 일부 사람들이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시간이 꽤(?) 흘러 지금의 시간 시점에서 과거의 1987년을 돌아보면 개인적으로 꽤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기는 하지만 말이다.) 한국이 1987년과 비교할 때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라는 시점에서 "꽤(어느 정도, 많이)"라는 말이 대체 얼마큼의 시간이 흐른 뒤인지 역시 알 수가 없다. 변화라는 것은 사회 구성원 각각의 개인 주관적 느낌/생각/판단에 따라 많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세상이 바뀌었는지 안 안 뀌었는지.. 사람마다 생각하는 정도, 느끼는 정도가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1987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국 변화라는 것도.. 사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구성원 다수가 모인 주관적 집단 믿음에 따라 "동의"하는 것이다. 변화는 반드시 온다고 믿는 사람은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희망적 믿음이 없으면 절망적 지금을 버텨낼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변화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온다고 믿는 사람들은 세상은 변화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보다 대부분 더 고통스럽다. 인간의 역사를 볼 때.. 대부분의 선한 자, 현명한 사람들이 더 고통을 받는 것은 아마 그런 까닭일 것이다.
반면 세상은 안 바뀐다고 믿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거시적 시각과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이거나 그럼으로 지능이 부족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들은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으며 앞으로도 바뀌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다. 심지어 다수가 변화되었다고 인정하는 중에도 홀로 바뀌지 않았다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박근혜 이명박 같은 류의 사람을 추종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사실.. 어쩔 수가 없다. 그런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다.
문제는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믿음 아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의 남용이라던가, 힘과 권력, 지위를 이용해 자산의 부를 축적한다던가 하는 악의적 행위를 자행한다는 것이 문제다.(선행을 저지르는 것은 공공에게 선을 제공함으로 상관없다. 언제나 문제는 남용/악행이며 악의적 사용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 악행 또는 과도한 사리사욕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공공의 고통, 손해를 모든 사회 구성원 전체가 나누어 분담하는 것이 문제다.
물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은 그들의 그런 악의적 행위에 대한 단죄를 받겠지만.. 선한 자, 현명한 사람이 받아 온 고통과 비교하면 조족지혈일 수 있으며 덜 고통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이 왜 악행을 통해 사라 사욕을 채우는지 이해되는 부분이다. 단죄의 고통보다 누리는 쾌락이 더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 탐욕스럽고, 그토록 악의적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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