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2, 2019

어제 3.1절 후.. 다시 보는 토착 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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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3.1절 100주년..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를 잡아들이고 고문하고 죽음으로 이르게 했던 사람들 중에는 한국인도 있었음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근데.. 그런 류의 한국인들이 여전히 대한민국에는 너무 많이 존재하는 것 같다. 요즘 그런 사람들을 속된 말로 토착 왜구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 같다. 어제는 날도 날이었으니.. 이 토착 왜구라 불리는 사람들(혹은 언론)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근데 이 주제는 좀 난해한 주제다. 암튼..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가들을 잡아서 고문하고 죽게 만든 한국인들(이하 토착 왜구라고 쓰겠다)은 왜 그랬을까? 왜 그들은 그렇게 토착왜구로 살았을까?를 생각해 보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영화 밀정의 대사처럼 당시 일본은 강한 나라고, 한국이 독립할 줄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토착 왜구들이 생각하는 방식은 아마 이런 것이었을 것 같다. 즉, 강한 나라에 둘러싸인 약한 나라인 대한민국은 강한 나라를 받들며 기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물론 때에 따라, 필요에 따라 사대를 해야만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기생' 함으로 나타나서는 안된다. 내가 어떤 것에 '개생'한다는 것은 숙주의 운명에 내 운명을 맏기는 것과 같다. 개와 돼지의 삶이 이와 비슷하다.

물론 먹고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는 하다. 살아야 정신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가는 하다. 사람이란 물질적으로 육체가 존재해야 정신적인 이상적 가치를 추구하고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단지 먹고 사는 존재만은 아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내가 주인'인 삶을 살고 자유의 의지로 내 삶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 존재다.(비록 그 결정이 비극으로 치닫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비유를 하자면.. 단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예나 머슴 혹은 개내 돼지가 될 것인지, 아니면 배고프고 굶주리더라도 굶어 죽지 않는 한 자유인으로 살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 어느 한 쪽만을 극단적으로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개 돼지가 아닌 인간에게 먹고 사는 현실과 자유와 주체적 존재라는 이상은 서로 균형적으로 공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개 돼지라면 먹고사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일 수 있지만 말이다. 그런 측면으로 보자면.. 당시 소위 친일파였던 사람들이 왜 그러했는지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2019년 지금에도 일제시대 때 토착 왜구스러운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나 믿음을 현재에도 계속 유지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그 믿음과 행태는 2019년 대한민국에서 과연 유효한 것인지를 따져보면 답은 얻어질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2019년 현재 일부 토착 왜구스러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믿음(?)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일제시대의 그 조선이 아니다.

"저딴게 무슨 대통령"..한국당 최고위원 후보들 '막말·폭언'

최대한 객관적 상식적일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와 노무현 문재인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대통령스러운가? 아니.. 사람스러운가?
​노무현 문재인 등이 절대 '선'이나 절대 '정의'라는게 아니다.
그들도 잘 못을 하고, 오류를 저지르며 실수를 한다.​
근데.. 솔직히 인간적으로 너무하는거 아니냐... 쩝.
절대 '선'이나 절대 '정의'를 선택하라는게 아니다.
'​최선'을 선택하라는 거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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