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3, 2019

일본 규제를 보며-어떤 판단 선택을 해야할까..


7월 17일(수) 김어준 생각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15개 나라는 프랑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세파프랑이라는 공용화폐를 사용합니다 이상한 일이죠. 독립 국가가 자기 화폐를 스스로 찍어내지 않는다는 게.. 이들 국가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당시 경제적 종속 관계를 지속시키려는 프랑스의 공용화폐 계획 프랑존은 받아들입니다.

왜냐 그 나라 엘리트들 대부분이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프랑스의 논리로 세상을 봤거든요. 식민 본국 프랑스는 그렇게 결제 통화를 장악해 지금도 지역의 경제 이권을 통제합니다. 식민 본국의 철저히 자기 이익 중심으로 설계한 피식민지 경제 구조는 정치적 독립만으로 저절로 해체가 되지 않는 거죠. 

수탈 구조를 놓지 않으려는 식민 본국의 수작도 수작이지만.. 그 식민 본국의 논리를 스스로 내면화해서 엘리트가 된 기득권과 이미 익숙해져 버린 여러 관행에 내부 조항을 넘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건 언제나 어려운 과정입니다. 그래서 정치적 독립 이후에도 피식민지 국가 대부분이 오랜 세월 과거 식민 본국과 종속적인 경제구조를 유지합니다.

80년대 말 일본 경제평론가 고무로 나오키는 한국 경제를 가마우지 경제라고 했습니다 가마우지 새를 이용한 낚시는 가마우지 목 아래를 끈으로 묶어서 가마우지가 잡은 물고기를 정작 가마우지는 삼키지 못하게 하고 낚시꾼이 채가는 방식인데 열심히 완성품을 수출하지만 그 주요 부품은 일본으로부터 수입해서 정작 부가가치는 일본이 가져가는 한국 경제를 그렇게 빗댄 겁니다.

몸은 한국이 쓰고 물고기는 일본이 먹는다는 거죠. 우리 경제는 강화도조약 이래로 식민을 거치면서 일본 경제의 식민지적 분업 구조하에서 성장한 게 사실입니다. 일본 우익들이 일본도 손해나는 경제적 자해를 하면서까지 수출 규제를 하는 것도 그들이 지난 100여 년간 유지했던 그런 기억에 바탕을 한 거죠.

그리고 그런 기억이 이제는 과거가 될까 봐 한국을 때리는 거죠. 더 이상 크지 못하게... 하지만 그런 시대는 이미 2000년대 들어서면서 진작에 끝이 났습니다. 일본 우익의 착각 덕에 아직 끝나지 않은 영역을 새삼 깨우치게 되는 이참에 그 남은 영역까지 끝장내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자극과 자각을 준 아베가 고맙다 땡큐 아베 김어준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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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마지막 총독인 아베 노부유키가 조선에 식민 의식을 심어놔서 노예적인 삶을 살 것이라고 장담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 위 아프리카와 같은 사례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의식 중에라도 노예의식에 익숙해지면 자유를 불편하게 여기는 지경이 이르기도 한다.

언제나 2가지 적이 존재한다. 하나는 외부의 적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의 적이다. 그런 내부의 적을 속칭 토착 왜구라고 부른다. 외부의 적 보다 더 심각한 적은 내부의 적이다. 외부의 적은 공동의 적으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구분되지만 내부의 적은 '나'와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도 외부의 적을 추종하여 구별과 색출이 어렵다.

외부의 적을 추종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 이유들이 정당하냐 아니냐 또는 합리적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작금의 일본과 한국 간의 대립 상황에서 핵심은.. 내부의 어느 구성원들은 외부의 적과 동일한 "의식, 시각, 견해,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 자체다. 1947년 한국과 일본이 처음 민간 교역을 시작된 이래.. 72년 동안 단 한 번도 일본과의 교역에서 무역적자가 아닌 적이 없었다. (일본이 한국 보다 100년 먼저 근대화, 개화를 시작하였으니.. 기술의 차이가 존재할 수 밖에 없음을 이해는 한다.)

하지만 한국의 근대화 속도는 매우 빨랐고, 세계 10위 안팎의 무역국가도 되었다. 그리하여 시대가 변했고, 그에 따라 상황과 조건도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변화와 우리 내부의 상황과 조건이 변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외부의 적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논리는.. 한국은 (힘없고 가난한 나라이니) 항상 빌붙어 빌어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방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외세의 강대국에 빌 붙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근데.. 72년 빌어먹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72년 빌어먹어가며 힘을 키웠으니.. 이젠 좀 걔겨도 될 텐데.. 이제 좀 자주적독립적이여도 되지 않나? 토착 왜구스러운 사람들은 여전히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같은 사람을 추종하며 여전히 한국은 (일본에) 빌어먹어야 한다고 믿고 주장한다. 만약 그들이 22세기, 23세기에도 살아서 존재한다면 그들은 그때도 19세기적 시각과 마인드로 지금과 똑같은 주장을 할 것이다. 한마디로 19세기 의식과 마인드가 고착화된 사람들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은 영원히 빌어먹어고 빌 붙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갑갑한 것은.. 그러한 19세 기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21세기에 살면서 19세기적 마인드를 추종하는 것을 처벌할 수도 없고, 가르칠 수도 없으며, 개과천선 시킬 수도 없다. 19세기적 마인드가 골수에 박힌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곳곳에 존재하며.. 심지어 그럴듯한 자리를 한자리씩 꿰어차고 있는 경우도 많다. 변화한 시대 환경과 조건에서 새로운 진보가 개혁 또는 잔화가 어려운 건 대체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인간은 대체로 기존의 기득권을 절대 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라는 거대한 흐름은 그 누구도 막지 못한다. 20만 년 인간의 진화 과정속에서 변화, 진보, 진화라는 것이 없었다면 인간은 여전히 열매를 따먹으며 살아가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결국 모든 판단과 선택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공동체 각 구성원들, 즉 시민과 국민의 몫이다. 지금,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어떤 판단과 선택으로 살아갈 것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외면할 수도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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