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에는 어찌할 수가 없는 경우가 있사옵니다.
종묘사직을 지키기 위해 일시적으로 외교권을 일본에게 잠시 맡긴것일뿐입니다.
외교권은 나라의 힘을 키워 도로 되찾아 오면 되는것 이옵니다.
-1905년 12월 16일 이완용
***
일본인에게 '예' 차리지 말라 박경리 일본산고 재조명
때가 때인지라 일본 관련 포스팅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지만.. 어쩔 수가 없다. 칼의 나라, 사무라이의 나라라고 일컫는 일본은 역사적으로 보면.. 그리고 보니 항상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무자비했던 것 같다. 그러한 민족적 특성(?)을 가진 일본에 한국이 양보하거나 예를 차리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끌려다녀야 할 것 같은 것은 나만의 느낌만은 아닌 모양이다.
지난 역사를 보면 확실히 일본의 특성이 그런 것 같다. 작금의 일본이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일본 정부가 밉지 일본인들은 무슨 죄가 있냐는 식의 고상함이나 품격 혹은 예 따위를 나도 좀 접어야 할 것 같다.
작금의 분위기 속에서 고상한 척, 품격 있는 척, 지성 있는 척 일본과 일본 사람을 분리하는 것이 그리 의미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더구나 한국 수출 규제를 찬성하는 일본 사람이 97%라고 하니.. 딱히 일본인과 접촉할 일은 없지만.. 작금의 일본 꼬락서니에 내가 무슨 부처나 예수도 아니고.. 고상한 척, 품격 있는 척, 예를 갖추지 않아도 되지 싶다.
문제는 국내의 보수주의자들이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이 일본의 그것과 비슷한 것은 아마도 일본과 보수주의자들이 19세 기적 마인드와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싶다. 한 마디로.. 하루속히 사라 없어져야 할 마인드이며 의식이라 하겠다.
먹고 사는 것이 인간 존재의 목적일 수 있을까?
염치와 부끄러움을 알아야..
현실적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는 경제가 어렵고, 당장 먹고 살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쉽지 않은 문제일 수 있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난해한 문제도 아니다. 보수주의자들의 그러한 단세포적, 근시안적, 전근대적, 임시방편적 해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들의 말처럼 힘 있는(?) 일본에 조아리고 엎드린다고 더 잘 먹고 잘 살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일본이 몇 달 몇 년 사이에 개과천선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