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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비상계엄령 선포와 해제 후… 대부분 윤석열 대통령을 국가 위험요소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잠재적 위험은 어리석거나 우매한 생각하지 않고, 깨우치려 하지 않는 다수의 시민/대중/국민들이지 않을까…? 그러한 국민들이 앞으로도 제2의 윤석열 박근혜 이명박을 계속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과연 그러한 국민을 깨우치는 것이 가능할까…? 거의 불가능하다. 악의 평범성은 어리석거나 우매하여 생각하지 않고, 깨우치려 하지 않는 다수의 시민/대중/국민들에 의해서 항상 다시 등장한다.
어쩌다 이렇게 됐죠? 누구 잘못입니까? 물론 가장 큰 책임은 정부(윤석열)에게 있고 대가를 치르겠지만 이 지경이 되도록 방관한 건 바로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은 시민/대중/국민) '여러분'입니다. - 영화 ‘브이 포 벤터타’에 나오는 대사에 괄호로 몇 글자 첨언해 봤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악이 점차 평범해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아니 이미 악은 평범해졌을지도 모른다. 몰상식과 파렴치와 부조리와 모순을 처벌하지도, 악을 악이라고 부르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어설픈 이상주의 어설픈 인권주의 등은 악을 더 평범하게 만들어 버렸다. 법이 더이상 정의가 아닌 곳이 대한민국이 되어 버렸다. 판사 검사 경찰 군대 등 어디하나 성한 곳이 없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에서 조차 부조리와 모순을 회피하고 외면하기 바쁘다. 선, 이타주의, 정의 등은 더이상 지향해야 할 가치가 아니라 무능함 혹은 꼰대 오지랖의 다른 이름이 되었고 조롱과 비웃움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작금의 대한민국을 너무 냉소적으로 보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지금의이 냉소적 시각은 노무현이 죽고 이명박이 당선된 이후 박근혜 윤석열로 이여지며 축적되어 온 것이라는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노태우가 당선된 때 부터다. 그 때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일까…? 그리 따지면 80-90년대나 지금이나 도긴개긴이긴 하다.
내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증오가 아니라 기억을 기초로 하는 정의(正義) - 알베르 까뮈
우리들이 과거에 겪은 모든 불행은 민족 배반자들에 대한 척결을 거부한데서 왔다. 오늘 날 우리가 또 다시 나치 협력 반역자의 머리를 강타하기를 주저한다면 우리 미래에 엄청난 위험이 닥칠 것이다. 어제의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프랑스 공화국은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비록 인간의 정의가 너무나 불완전하다고 해도, 인간의 정의를 완수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선택이다. 우리는 정직함을 필사적으로 견지함으로써 그 불완전함을 교정하고자 한다. 누가 감히 용서를 말할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칼은 칼에 의해서만 이길 수 있고, 무기를 잡아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디어 우리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감히 누가 이 진리를 망각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내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증오가 아니라 기억을 기초로 하는 정의(正義)이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신문은 글에 있어서 투명하고 단호해야만 한다. 수 년 동안 기사를 쓰면서 죽음이나 감옥에 갈 것을 각오했던 많은 언론인들에게는 글이 그들의 가치관을 표현하는 것이며, 그래서 글쓰기 전에 많은 성찰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국민에게 언론인의 책임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조국을 죽음으로 이끄는 두 개의 길이 있는데, 증오와 용서의 길이다. 나는 증오에 대해서는 일말의 애착도 없다. 인간으로서 나는 반역자를 사랑할 줄 아는 모리아크를 존경하지만, 한 시민으로서 나는 모리아크를 불쌍히 여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랑은 우리에게 반역자와 졸개들의 국가를, 우리가 원하지 않는 사회를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나는 분명하게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정의를 좌절시키려는 자비를 거절할 것이다.
-알베르 까뮈(Albert Camus, 1913~ 1960), "나치 협력자 처벌 논쟁에서, 숙청에 반대하는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관용론'에 반박한 알베르 카뮈의 정의론(Justice and Charity)", 'les letters francaises(프랑스 문학)' 및 'Combat(투쟁)' 기고문(1945년)-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불의가 존재하는 한 나도 그 범죄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내 스스로 불의를 행하지 않았더라도 그 불의를 묵인하는 것 또한 범죄이다. 내가 불의에 적극 가담하지는 않았더라도 사회에 만연된 불의에 의해 간접적 이득을 누린다면 그것 또한 범죄이다. "
- 유진 뎁스(1855~1926 노동운동가, 미국)
"부패한 민주정부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정직성이나 양심이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거둔다. 최선의 인물이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떠오른다. 악한 자가 나가면 더 악한자가 들어선다.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자, 그리하여 결국 존경도 받게 되는 자의 특성을 점차 닮게 마련이어서 국민의 도덕성이 타락한다. 이러한 과정은 기나긴 역사의 파노라마 속에서 반복되면서 자유롭던 민족이 노예상태로 전락한다. 가장 미천한 지위의 인간이 부패를 통해 부와 권력에 올라서는 모습을 늘 보게 되는 곳에서는 부패를 부러워하다 급기야 부패를 묵인하게 된다. 부패한 민주정부는 결국은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
- 헨리 조지('진보와 빈곤' 1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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