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 윤석화 안성기 김지미 안성기 등… 최근 유난히 유명인들의 부고 소식을 TV 통해 자주 접하게 되는 것 같다.
TV에서 보았던 익숙한 얼굴들의 부고를 듣고 있자니… 조만간 나에게도 닥칠 일이 되고 보니… 예전에는 미쳐 느끼지 못했던,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갖게 된다. 그것이 슬픔인 건지, 아쉬움인 것인지, 미련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건, 타인/남의 장례를 통해 머리나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남의 일과 내 일의 차이가 이리 클 줄은 나도 몰랐다. 새삼 혹시 가족을 먼저 떠나보냈을 세상의 모든 이들이 대단하게 보인다. 그들은 어찌 슬픔을, 혼란과 허망함을, 마음을 잡고 살아가는 것일까.
길을 가다가도 지난밤 보았던 약간의 치매와 노쇠하고 초췌하게 병상에 있는 (틀이를 뺀) 어머니의 얼굴을 문득문득 떠오르면 울컥 목이 멘다. 좀 더 상냥할걸, 좀 더 다정할걸… 후회만 남는다. 있을 때 잘 했어야 했음을 알지만 실천하지 못한 부질없는 반성만 남는다.
이제 와서 후회가 부질없는 것임을 나도 안다. 한데 그냥 그런 감정이 드는 걸 난들 어찌하겠나…? 그저 내가 죽일 놈인듯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소멸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막상 소멸을 직면했을 때의 그 감정, 그 느낌을 부정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닌 듯, 아무것도 없는 듯 여기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론적 생각과 실제 경험하여 겪어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인간은 때가 되었을 때… 그저 “해야 할 바”를 행하는 것뿐이다.
[부다의 유훈(?)]
붓다는 쿠쉬나가르에서 제자 아난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전해집니다.
아난다여, 이제 나는 늙어서 노후하고, 긴 세월을 보내고 노쇠하여 내 나이가 여든이 되었다.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끈에 묶여서 겨우 움직이는 것처럼 나의 몸도 가죽끈에 묶여서 겨우 살아간다고 여겨진다.
그만하여라, 아난다여 슬퍼하지 말라, 탄식하지 말라, 아난다여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아난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마라'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난다여, 그런데 아마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 스승의 가르침은 끝나 버렸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 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아난다여, 그대들은 자신을 등불(섬)로 삼고, 자신을 의지하여 머물고 남을 의지하여 머물지 말라. 진리를 등불 삼고 진리에 의지하여 머물고 다른 것에 의지하여 머물지 말라.
내가 설명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방법이다.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게으르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유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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