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4, 2026

다른 사람과 논쟁하지 말 것 - 특히 무식하고, 어리석은 사람과. / Do not argue with others—especially with the ignorant and foolish.

 다른 사람과 논쟁하지 말 것 - 특히 무식하고, 어리석은 사람과...


20대에 즐겨(?) 읽었던 쇼펜하우어 이름을 오랜만에 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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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 일면 공감은 하지만... 문제는 똑똑하다고 믿는 각 개인들도 다수의 어리석고 우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회, 국가라는 공동체 속에서 현실의 세계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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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말, 이상과 철학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현실의 세계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상과 철학도 현실의 범주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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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모든 사람이/인간이 깨달은 철학자가 될 수도, 완벽한 사랑의 존재가 될 수 없으며, 깨달음과 해탈의 경지에 오른 '성자' 혹은 '신'도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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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쇼펜하우어의 책을 한때 좋아했지만...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철학자의 어설픈 몇 마디 문장으로 규정되지 않을 만큼 복잡하고, 어렵고, 난해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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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구나, 소위 말하는 똑똑함이나 깨달음, 또는 어리석음 혹은 우매함이란 것들도 측정하기도 어렵고, 수치화할 수 없으며 주관적, 추상적인 것들이다. 인간은 각자 자신이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만큼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그 각자의 범주안에서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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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Do not argue with others—especially with the ignorant and foolish.

I came across Schopenhauer’s name again, one I used to read quite a bit in my twenties.

While I partly agree with his words, the problem is that even those who believe themselves intelligent must live together with countless others—foolish or otherwise—within the shared reality of society and the state.

Writings, words, ideals, and philosophy are important, but the reality of the world inevitably takes precedence. Ideals and philosophy can only exist within the bounds of reality.

No human being can become a fully enlightened philosopher, a perfect embodiment of love, or a saint or god who has attained ultimate liberation.

Long ago, I enjoyed Schopenhauer’s books, but now I take them more lightly. Human beings are far too complex, difficult, and unfathomable to be defined by a philosopher’s few clumsy sentences.

Moreover, so-called intelligence, enlightenment, foolishness, or ignorance are things that cannot truly be measured or quantified. They are subjective and abstract. Each person simply lives within the boundaries of their own values and worldview, shaped by what they know and believe.



[아래는 펌 글이다.]

(무식한 사람과 절대로 논쟁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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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하지 마라. 인간은 논리적인 동물이 아니며, 인간은 논리의 동물이 아니라, 의지와 고집의 동물이며, 남의 생각을 고치려 드는 것은 오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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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정말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내가 논리적으로 맞는 말을 하고 있고, 증거까지 들이밀어도 상대방은 막무가내로 우기거나 말꼬리를 잡으며 화를 냅니다. 그럴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십니까? 아니 내 말 좀 들어봐라며 그 사람을 이해시키려고 더 열을 올리시나요? 아니면 답답함에 가슴을 치며 밤잠을 설치시나요?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그 논쟁은 벽에 대고 소리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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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썼을 만큼 토론의 기술에 정통했지만, 그가 내린 최종적인 결론은 역설적이게도 “무식한 사람과는 절대로 논쟁하지 마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진리를 찾기 위해 대화하는 고상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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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자기 자존심을 세우고 어떻게든 상대를 굴복시켜 이기기 위해 대화할 뿐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쇼펜하우어의 냉철한 분석을 통해 왜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싸우는 것이 내 영혼을 갉아먹는 것인지, 그리고 그 소모적인 전쟁터에서 빠져나와 평화를 지키는 기술은 무엇인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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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폭탄 발언: 착각하지 마라. 인간은 논리적인 동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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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논쟁에서 매번 상처받고 지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에 대한 거대한 착각 때문입니다. 인간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동물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내가 타당한 근거와 올바른 논리를 제시하면, 상대방도 그렇군요, 제가 틀렸고 당신 말이 맞습니다.라고 인정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단언합니다. 인간은 논리의 동물이 아니라, 의지와 고집의 동물입니다. 그의 철학에서 인간의 본질은 머리에 있지 않고, 가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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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나 논리는 그저 이 거대한 고집불통인 의지가 휘두르는 작은 등불에 불과합니다. 누군가와 논쟁이 붙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상대방이 당신의 논리에 반박하는 것은 당신의 말이 틀려서가 아닙니다. 당신의 말이 맞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자존심이 상처 입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당신의 논리가 정교하고 완벽할수록, 상대방은 더 격렬하게 저항합니다. 그에게 당신의 옳은 말은 진리가 아니라, 자신의 자존심을 찌르는 공격 무기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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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합니다. 상대방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쇠로 열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그 문 안쪽에는 자존심이라는 맹수가 버티고 서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간이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싸우며 느끼는 그 답답함은 물 위를 걸으려고 애쓰는 것과 같은 불가능한 시도에서 오는 필연적인 고통입니다. 상대는 애초에 당신의 말을 이해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오직 당신을 이겨먹을 생각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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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저 사람은 논리로 설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빠르게 판단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헛된 논쟁으로 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첫 번째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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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폭탄 발언: 당신이 이길수록 당신은 적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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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인간의 논리가 아닌 고집으로 뭉친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종종 이런 순진한 기대를 합니다. 내가 확실한 증거를 들이대서 저 사람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면, 저 사람도 깨닫는 것이 있겠지 생각해 보지만, 이것이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합니다. 당신이 논쟁에서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승리했다고 칩시다. 상대방은 당신의 논리에 반박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당신에게 정말 훌륭하십니다. 덕분에 제가 깨달았다고 고개를 숙일까요? 천만에요. 그는 겉으로는 입을 다물지 몰라도, 속으로는 당신을 향한 증오와 원한을 불태우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이렇게 꿰뚫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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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지성이 부족한 것은 참아도, 자신의 의지가 꺾이는 것은 죽어도 못 참습니다. 당신이 논리적으로 이겼다는 것은, 상대방의 지능이 당신보다 낮다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과 굴욕감을 줍니다. 논쟁에서 이기는 순간 당신은 진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 적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 적은 이제 논리가 아니라, 감정으로 당신을 공격할 기회만 엿보게 됩니다. 뒤에서 험담을 하거나, 당신의 일을 방해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소인배와의 논쟁에서 이기는 것은 똥 묻은 개를 발로 걷어차는 것과 같습니다. 개는 도망갈지 몰라도, 당신의 신발에는 더러운 오물이 묻게 됩니다. 그러니 기억하세요. 상대방을 말로 굴복시켜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잠깐의 우월감뿐입니다. 그리하여 그 대가로 당신은 마음의 평화를 잃고, 위험한 적을 얻게 됩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밑지는 장사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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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폭탄 발언: 남의 생각을 고치려 드는 것은 오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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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이 논쟁을 멈추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저 사람의 틀린 생각을 내가 고쳐줘야 한다는 일종의 계몽 의식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아랫사람이나 가족에게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라며,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곤 합니다. 그는 남의 생각을 바꾸려는 시도 자체가 엄청난 오만이자 불가능한 도전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아주 냉소적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의 잘못된 생각을 말로 고쳐주려 하는 것은, 비누로 씻어서 흑인을 백인으로 만들려 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이 살아온 수십 년의 세월, 타고난 성격, 굳어진 습관이 얽혀 만들어진 거대한 성입니다. 그 견고한 성을 무너뜨리고 새로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신조차도 인간의 자유 의지는 함부로 꺾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인간인 우리가 뭐라고 남의 머릿속을 뜯어고치려 듭니까? 상대방이 터무니없는 말을 하여도 그것을 고쳐주려 애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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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그 사람의 몫입니다. 그가 어리석은 생각으로 인해 겪게 될 시행착오와 고통 또한 그가 감당해야 할 인생의 몫입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저런 관점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마치 길가에 놓인 특이한 돌멩이를 보듯 무심하게 지나치십시오. 이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타인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는 지혜로운 거리 두기입니다. 남을 가르치려 들지 않을 때, 비로소 인간은 소모적인 논쟁에서 해방되어 나의 평온을 지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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