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0, 2014

대한민국 나이공화국
age is everything in Korea

대한민국 나이공화국

대한민국 문화비판에서 나이문화에 대한 비판은 어디가든 거론되는 단골 메뉴다. 박노자같은 사람이 심하게 비판하기도 했던 대한민국에서의 나이문화를 근거로하는 위아래식 수직문화는 사람들과 대한민국의 의식문화에 대해 토론할때마다 내가 유소년시절부터 줄기차게 거부해왔던 것이지만 언제나 결과는 이상한 놈으로 취급되거나 대한민국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사회부적응자쯤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나도 이젠 하도 딴지걸어서 더 논하기조차 귀찮고, 어차피 먹히지도 않을 것이여서 입만 아플뿐이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나이문화는 재탕삼탕 해가며 태클 걸어도 질리지 않는 대한민국 대표 딴지거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사실 이 나이문화는 철저하게 학습에 의한 것인데.. 한국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나이문화에 대한 학습이 시작된다. 출신학교와 출신지역등등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인성을 재단하는 것도 모자라 나이로 편 가르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인간 관계란 이 나이를 근간으로 한다. 띠와 생년을 확인난후, 나이에 의한 위와 아래 혹은 선후배식으로 구분짖고 나서야 직성이 풀리고 서로간의 인간관계가 시작된다. 초면에 누굴 만날때도 거의 100% 거의 예외없이 나이를 확인한다.

그야말로 일종의 강박증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다. 누구나 먹게 되는 나이.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나이 먹는 것은 부끄러움이고 꼬리표가 되어 "나이 값"이라는 추상적 기준을 멍에처럼 달고 다녀야 한다. (나이 값하라는 말처럼 모호한 말도 별로 없다. 대체 뭐가 나이 값인가? 나이값이란 말은 지극히 추상적이며 개인 각자의 모호함일 뿐이다.)

이 나이에 의한 폐쇄성으로 "의식"이 코드화가 되는 것은 한 개인은 물론 국가의 거의 모든 시스템 작동방식의 기초가 된다. 이 나이문화의 지배력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니러니하게도 나이문화 파괴를 항상 강조하는 기업 자신이다. 사회 다른 분야 보단 산업계, 특히 기업의 경우 구성원들은 그 어떤 구성원들 보다 나이에 민감하다. 기업내의 모든 것은, 예컨데 직위, 급여등등, 나이에 의해 구분되고, 결정된다.

왜 기업 구성원들은 그토록 나이에 민감한 것인가? 그것은 일종의 어리석은 미신을 신봉하는 것과 유사하다. 오랫동안 학습 되어온 나이문화에 대한 무비판적 학습에 의한 일종의 어리석은 믿음인 것이다. 안타갑게도 이런 의식의 결과로 인하여..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하는 기업이 오히려 그 극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인 나이문화를 제거하지 못하고 오히려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그런 기업문화에서 합리성이나 기업의 성숙이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며..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줄창 세계화, 선진화를 외치는 것은 참 이율배반적이다.

작금의 기업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이제 그 어떤 식으로든 효율성과 창의성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는 그러한 불합리한 믿음을 바꿔보려는 적극적 대응이며, 그것이 무한 경쟁의 시대를 사는 기업이라면 가져야 할 자세이기도 하다.

기업 내부의 나이문화는 파괴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효율성이니 세계화를 떠드는 기업들을 우린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업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나이에 의한 수직구조를 깨보려고도 했지만..늙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젊은 사람들 조차도 나를 이상한 놈으로 낙인찍기 일수였던 것 같다.

세계 많은 유수의 기업들이 이 나이문화를 파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은 인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들어 갈 소리다.

이 나이문화의 연장선상에 군대문화가 있다. 군대문화는 기본적으로 수직구조를 원칙으로 한다. 거의 모든 대한민국 남자는 군대를 가고, 그들은 수직구조에 익숙해져 나온다. 사회에서의 그들은 익숙한 수직구조인 나이문화를 너무나 편하게 혹은 당연하게 받아 들인다. 갈수록 수직문화는 고착화 된다. 한마디로 갑갑함의 연속인 셈이다.

유교가 망해야 대한민국이 산다고 누가 그랬던가... 이제 우리 의식 속의 연령주의(Ageism)는 파괴되어야 한다. 한국=나이 공화국의 시대착오적 등식도 깨져야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보다 나이에 대한 수직구조가 훨씬 덜하다는 미국이나 유럽의 많은 기업들 조차 제도적으로 이 나이문화를 깨뜨리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부가 만든 슬로건 “나이, 그거 왜 묻습니까? ”(Age, Why?)는 여전히 대한민국에서는 공허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더 웃긴다고 느끼는 건... 대한민국 남여노소는 그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들 나이문화에 푹빠져서 벗어나질 못한다는 것이다. 요컨데 남자나 여자나,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다들 이 나이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 평소에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지껄이지만..막상 그 나이가 자신의 결정판단 혹은 자신의 지위적 권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용할때 태도가 완전히 바뀐다는 것이다. 그렇게 차별을 거부하는 여성들 조차 이처럼 나이에 의한 차별같은 다른 형태의 또 다른 차별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한국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이 나이문화를 고착화 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나이문화란 것이 근본적으로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에게 좀 더 유리하게 작용하고 그 어떤 혜택 혹은 특혜를 더 누릴 수 있는 속성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다 나이를 먹게 되며, 따라서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무의식적으로라도 혜택이나 특혜를 누리려는 심리가 있게 된다. 마치 군대 병장이 병장이 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본전 혹은 자격을 누리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하지만 이 나이문화에 대한 파괴노력은 혜택 혹은 자격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솔선수범해서 먼저 파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힘들다. 즉, 나이먹은 사람이 먼저 그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깨뜨리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나이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혜택을 거의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비록 그 혜택이란 것이 따지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니고, 별로 쓸모도 없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혹자는 우리사회에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고도 하는데, 사실 그렇게 별것도 아닌 혜택을 악착같이 붙잡고 놓지 않는 어른들이라면 존경할 만한 어른들이 없어 보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나이 많고 적음으로서가 아닌, 인간 그 자체로서 존경받고 존중되어야 한다. 나이먹은 사람은 존중/존경해야하고, 나이어린 사람에게는 막대하고 존중/존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가? 인간이 고귀한 가치를 가지는 것은 나이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나이많음은 곧 경험많음이다. 이 경험은 긍정적으로 발전시킬때만 의미가 있다. 어리석고 불합리한 경험을 고착화시킨다면 소위 어른이라는 고상한 수식어를 붙일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야말로 나이먹은 사람들이 후세에 물려줄 것은 나이문화말고도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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