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0, 2014

대한민국 경조사 문화
Korean's family vents


모회사에 다닐때 있었던 일이였다. 입사한지 1주일되는 어느날 그 회사의 누군가가 결혼을 한다고하더니, 축의금을 내라길래.. 아니..입사한지 1주일도 안됐고, 대체 누군지도 모르는데 꼭 내야하는지도 모르는 축의금을 내지 않겠다고 했다가..딴지 엄청 먹고 결국 반강제로 몇만원의 축의금을 내면서 그 어처구니 없음에 할말을 잊었던 기억이 난다.

돈 몇만원이 문제가 아니라..그 골때리고 황당한..강제와 그것을 지극히 당연히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런 골때리는 문화에 할 말을 잃었지만..또한 편으로는..그런 웃기는 짬뽕스러운 것 자체를 온전히 거부하지 못한 내 스스로에게도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그후로 평생 이름석자 들어보지도, 누군지도 도대체 알수가 없는 사람들의 축의금과 조의금을 낼때마다..대한민국에 대한 이해불가는 점점 더 커져만 간다.

이해하고 납득하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답습하고 있는 사람들과 내 자신에 실망스럽고 서글퍼지기까지했다. 한마디로 영업과 인맥을 위해 필요 하다고 하지만 축하는 마음도..기뻐하는 마음도 없이 행해져야 하는 그 골때리는 경조사분화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역시나 지루하고 입만 아플뿐이지만..나이문화와 더블어 가장 씹어대기 좋은 대한민국 대표 불합리라서 한 번 지껄여나 보자.

특정 계절과 특정 날에 결혼을 몰아서 하길 좋아하는 사람들 덕분에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은 결혼하는 사람들에게는 행복의 계절일지 모르지만 어린이 날이며,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겹친 5월은 유리 주머니를 가진 직장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잔인한 계절이다.

그다지 친하지도, 진심으로 축복하는 마음도 들지 않는 않는... 그저 안면이 있는 관계로 인사치례와 체면치례는 해야하는 경사 소식은 딱히 반가울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1만, 2만원을 넣을 수도 없는 일이다. 경조사비는 인사치례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적어도 5만원 또는10만원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받은 만큼만 낸다는 사람도 있고, 장부를 적는 사람도 있다.(솔직히 장부까지 적는 사람이 실제 있다는 걸 경험하고 난 거의 기겁을 했다.)

그러나 솔직히 그런 인사치례로 유지되는 인간관계란 사실 없는이만 못한 경우가 많다. 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그런 인간관계는 그야말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받은 만큼 준다는 것은, 안내고 안받는 것과 같다. 안내고 안받으면 누구도 손해보는 것이 아닌 것이다.

문제는 내가 냈으면서도 받지 못할 경우 혹은 내가 내지 않았으면서 받는 경우가 발생하는데서 생기는 상호간의 찝찝함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찝찝함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행여 그런걸 얘기했다가는 치사한 놈이되거나 사회부적응자로 인식되기 쉽상이다.

하지만 낸 만큼 받거나, 받은 만큼 내는 것이 더 치사하다. 그보다 더 치사한 것은 그걸 장부로 기록해 놓는 것이다.

친분관계 정도에 따라 다른 것은 솔직히 이해가 간다. 아주 절친한 친구와 쌩판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같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만약 정말 부조를 해야겠다면.. 각자의 형편대로 하면되고, 받는 사람은 그 액수에 대해 알가왈부하지 않아야 하지만, 문제는 왈가왈부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문제다.

경조사비를 내는 사람의 형편과 상황을 모르면서 그 금액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그야말로 치사하고 야박한 것이다. 그냥 남들은 다 내니까 나도 내야한다는 것은 집단적 강요일 뿐이다.

만약 그런일로 안색을 붉혀야 한다면 그런 관계는 없는 것이 낮다. 결혼식과 달리 장례식은 갑자기 닥친다는 측면에서 차라리 조의금을 내는 것은 나름 이해가 간다. 특히 기혼 남자들은 장례식에는 왠만하면 꼭 참석한다는 어느 신문의 조사 결과는 그나마 이해스럽다.

아시다시피 대한민국과 달리 외국은 경우는 경조사는 사람이 많다고 더 경사스럽고, 조사는 덜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아주 절친한 사람들과 함께 조촐하게 치르는 경우가 많은 일부 나라의 경조사 습관(?) 혹은 풍습은 대한민국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양반스럽다.

동양권인 일본과 중국을 보면.. 일본인들은 아주 친한 지인들만 참석하는 경우가 많고, 중국은 경사에만 축의금을 내고 부의금은 내지 않는다고 한다. 서양은 이보다 더 조촐하다.(물론 안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야말로 조촐하고 합리적이다.)

대부분의 서양국가들에서는 결혼식의 경우 샤워파티(shower party)를 통해 토스터기나 수건등 지극히 저렴한 물품으로 선물을 한다. 샤워파티란 별명이 붙은 것은 우정이 비처럼 쏟아진다는 의미에서 나왔단다.

한편 장례식에서는 카드나 꽃을 주고, 지인들로 부터 받는 소액의 부의금은 기부금으로 사용하기도 한단다. 어떤 나라에서는 식장 밖의 모금함에 넣어서 누가 얼마를 냈는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모인 돈도 불우이웃에게 전달된다고 한다.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대한민국의 경조사 습관을 다른 나라의 그것과 얼핏 대조해아도.. 대한국민의 습관은 참 거시기 하다는 느낌을 안받을 수가 없다.

경조사는 기쁨은 배로, 슬픔은 나누어 반으로 줄이자는 것이지 누가 얼마는 내고 얼마를 받았다는 경쟁이 아니다.

아래는 매번 읽고 또 읽어도 가슴뭉클해지는 어느 시인의 실제 이야기를 시인이 수필로 적어 놓은 것이다. 경조사는 그런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며, 축의금이던 부의금이던 주고 받는 사람간의 그 마음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없는 쓸데없는 시간적 금전적 허비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이 더 흘러서.. 대한민국의 경조사 문화도 쫌 바꿔서 서로서로에게 합리적이면서 봉투가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전달되는 것으로 변하기를 바래본다.

축의금 만 삼천원 - 이철환
10년 전 나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 리가 없는데..... 
식장 로비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형주를 찾았다. 형주는 끝끝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허위적허위적 올라왔다. 
“철환씨, 어쩌죠. 고속도로가 너무 막혔어요. 
예식이 다 끝나버렸네....” 
"왜 뛰어왔어요. 아기도 등에 업었으면서..... 
이마에 땀 좀 봐요.” 
초라한 차림으로 숨을 몰아쉬는 친구의 아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친구가 보내온 편지를 읽었다.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내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함께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야지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장사가 
이 좋은 날, 너와 함께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분유를 굶어야한다. 
철환이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내 마음 많이 아프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 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 천 원이다. 
하지만 슬프진 않다.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너와 함께 읽으며 눈물 흘렸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기에 나는 슬프지 않았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외롭지 않았다. 
사자바람 부는 거리에 서서 
이원수 선생님의 <민들레의 노래>를 
읽을 수 있으니 나는 부끄럽지도 않았다. 
밥을 끓여먹기 위해 
거리에 나 앉은 사람들이 나 말고도 수천 수만이다.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너무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어제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의 오스스한 별을 보았다. 
개 밥그릇에 떠있는 별이 
돈보다 더 아름다운 거라고 울먹이던 네 얼굴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 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가서 먹어라. 
철환아, 오늘은 너의 날이다. 
마음껏 마음껏 빛나 거라. 
친구여....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들어있던 축의금 만 삼천 원....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장....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한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 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 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십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 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 할 텐데..... 
이를 사려 물었다.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봐 
엄마 등 뒤에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어깨를 출렁이며 울어버렸다.




사람들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 가운데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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