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0, 2014

맹목적 긍정조의의 오류 Br>error of blind optimistic



맹목적 긍정주의 - 긍정주의의 오류..
Good to Great란 책에보면 스톡데일 페러독스라는 말이 있다. 짐 콜린스가 그의 책 Good To Great란 책에서 위대한 기업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월남전 참전용사인 제임스 스톡데일의 경우를 소개하면서 유명해진 말이다. 스톡데일 페러독스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무조건 긍정적이여야 한다는 그 긍정과는 약간 다른 것이다.

요컨데 8년간 월맹군 포로로 잡혀 생사를 오갔던 제임스 스톡데일이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반드시 살아서 돌아간다는 믿음도 있었지만 그런 강한 믿음과 더블어 냉혹한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짐 콜린스가 위대한 기업을 얘기하면서 스톡데일의 예를 든것은 아마 무조건적 긍정주의와 긍정적 현실주의자는 다르다는 것을 얘기하고자 했던 것 같다. 요컨데 우리가 흔히 믿어 의심치 않는 무조건 긍정은 사실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독이된다는 것이라는 것과, 그래서 긍정은 갖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듯하다.

스톡데이일이 8년간 포로로 있으면서 수용소 생활을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사람들은 무조건적 긍정주의자들이였다고 한다. 예컨데 이런 것이다.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석방될 것이라고 기대했다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다시 부활절에는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막연한 낙관주의자들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절망감과 상실감으로 죽어나갔다. 결국 이 무조건적 긍정주의자들은 스톡데일과 달리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긍정적 현실주의자들은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은 잃지 않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던 사람들로서 결국 이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얼핏보면 둘의 차이가 별로 없어 보이지만 이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무조건적 긍정주의자들을 비판할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것이 바로 물이 반쯤 담긴 컵이다. 뭐 다들 아는 것처럼 "물이 반이나 남았다"는 대한국민 대부분이 외우고 있는 그것이다.

하지만 대한국민 대부분이 믿고 있는 이 단순한 말에는 그야말로 엄청난 오류가 숨어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무조건적 긍정주의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이다.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무조건 긍정하지 말고.. 다만 물이 반이나 남았지만 더블어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잊지 말고 그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물이 반이나 남았다는 말에 너무 쉽게 동의해 왔다. 난 개인적으로 "물이 반이나 남았다"는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이 말은 솔직히 기득권을 가진 그 어떤 것이 대중을 어리석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낸 카피문구일 뿐이며 지금것 많은 대한국민들이 이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물론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은 있다.)

쉽게 이해하자면 지구온난화로 비유하면 될 것 같다. 지구온난화로 자연이 작살이 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물이 반컵이나 남았다고 믿는다면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쓰레기와 이산화탄소같은 건 신경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혹은 연민, 걱정)을 동시에 갖는다면 우리의 생각은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면 의식과 행동이 달라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여기서 쓰레기와 이산화탄소라는 것은 우리가 신봉하는 과도한 편리함과 럭셔리함같은 불필요한 모든 것, 예를들어 불필요한 자동차, 집등등을 비유하는 것이다.)

스톡데일 파라독스가 강조하는 것은 막연한 긍정주의가 아니라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긍정의 힘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려면 작금의 사회에 대해 비판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런저런 부정적인 것, 잘 못된 것을 지적하고 직시하고 수정하려면 당연히 비판적이여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대한국민들은 이런 비판적인 사람들을 지루하고 재미없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불평분자로 사회에 도움되지 않는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가끔 젊은 얘들중에 여전히 그렇게 여기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걸 볼때는 정말 세상이 거꾸로 보일러가 되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다.

이젠 대한국민들도 무조건 유명한 카피문구를 마냥 신봉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과연 적합한지, 합리적인 것인지 생각하고 비판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근데 확실히 대한국민들은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카피문구에 쇠뇌가 잘되는 것 같디. 특히 드라마의 특정 대사나, 광고카피문구같은 것에는 더욱 더.. 쩝.

현명한 국민이 현명한 국가를 만들고, 현명한 소비자가 정직한 생산자를 만들 듯..우리는 좀 더 현명하고 합리적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물론 인간 고통에 대한 지극한 연민을 갖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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