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어떤 판사가 법정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떤 노인에게 버릇없다는 말을 했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은 케이스가 뉴스거리가 됐었다.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알길이 없고 대체 그 노인이 뭘 어찌했길래 판사가 버릇없다는 말을 했는지..뭐라고 쉽사리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과연 어른 혹은 노인에게는 버릇없다는 말을 해서는 안되는 것인가? 안된다면 왜 안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생각해 본다.
물론 아무나 한데 그러면 안된다. 헌데.. 작금의 어른들중에는 버릇없고 싸가지 없고 양아치 같은 노인, 어른 혹은 나이많은 사람이 꽤 존재한다.
어쨋건..해당 케이스가 뉴스거리가 된 것은 아마 대한국민의 의식속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유교주의 때문인 것 같다. 이 유교주의의 가장 큰 이율배반은 소위 어른들에 대해서는 무한적으로 관대하고 권력을 주지만 어른이지 않은 사람들(일종의 비어른)에게는 무한적 의무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데 문제가 있다.(소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이하 어른이라고 통칭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비어른이라고 통칭해보자.)
요컨데 어른들은 그들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서 무척이나 관대 하지만 그 어떤 실수나 잘못에 대해 비어른들, 즉 어린사람, 에게는 어른들의 맹공이 쏟아진다. 또한 비어른들에게 그런 실수나 잘못등에 대해 책임, 처벌, 비난등등을 요구하고 강요하지만 어른들 자신에게는 그러한 처벌, 책임, 비난의 요구가 없거나 아니면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이러한 이율배반적 시각 또는 태도는 과거의 신분제도에서 비롯되어 나이, 지연등등으로 구분되고 편가르기로 점철되는 그 어떤 패거리 문화가 바닥에 깔려 있으며, 자신들의 패거리에게만 특별성을 부여하여 어떤 특권을 누리려는 과도한 이기주의 혹은 윗대가리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는 그릇된 유교주의가 깔려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측면에서 대한민국은 철저하리만큼 유교주의를 강조하며 절대분변의 진리인것처럼 여기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한마디로 유교주의는 모순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동영상의 노인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그렇고, 숭례문에 불을 질렀던 노인같은 사람들이 그러한 사람들이다. 더 심하게 예를들면..어떤 어떤 극악무도한 살인자가 있다고 치자. 뭐 연쇄 살인자라고 해도 좋다. 근데 만약 그 살인자는 나이가 많다면..그를 어른이라고 해야하나. 그리고 그런 어른(?)들에게 어른이라고 칭해야 하고, 그 버릇없는 작자들에게 버릇없다고 하면 안되는 것인가. 솔직히 그러한 어른(?)들을 보면 나이와 상관없이 ㄱ새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건 사실이다.
위는 그저 예를든 것이지만..논점은..과연 어른이라는 사람이 그 어떤 실수나 잘못을 했다면 우리가 비어른인 사람의 실수나 잘못에 도덕적 사회적으로 비난하는 것과 동일(아니면 유사한)하게 비난하고 비판하는가 이다. 그리고 어른이란 단순히 나이의 많고 적음에 의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이 어른이란 단어의 기준이 나이(대체 어디 나이부터 어른일까)를 기준 삼는데, 이런 나이에 의한 어른 비어른의 구분은 대한국민 구성원들이 존재하는 거의 모든 곳에서 존재한다.
비약이기는 하지만..함 예를들어보면.. 집안에는 어른과 어른이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고치자. 이때 비어른 구성원이 실수나 잘못을 하면 그에 대한 댓가로 싸대기를 맞거나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그걸 사랑의 매라고 부르기도 하고, 사랑이라고 혹은 잘되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뭐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즉 만약 구성원중 어른이라는 사람이 실수나 잘못을 했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그 어른 구성원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비어른 구성원에게 가했던 동일한 수준의 처벌이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다면 왜 그럴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가정이건 조직이건 회사건 사회건 국가건 권력을 가진 구성원이 결정 권력을 갖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구조자체를 뭐라 그러는 것이 아니라..소위 어른이란 사람들은 그렇지않은 사람들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내공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만약 그렇지 못할때는 엄청난 자기반성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반성을 하는 어른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우리가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단지 나이를 먹고 안먹고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으로서 선량하게 살고자 했던, 살아오면서 부디쳤을 이런저런 수많은 자기반성에 대한 또는 그 삶에 대한 존중이며 노고에 대한 위로이며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삶이 자기반성은 전혀없고, 전혀 선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만과 거짖등등의 양아치적인 것이라면 그 사람이 나이가 많건 어쨋건, 지위가 있건 없건, 부자건 가난하건..어른이라는 이름으로 공경할 하등의 이유가 없으며 버릇없다고 말을 듣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어린 사람에게는 버릇없다는 소리를 해도 되고, 어른에게는 안된다는 건 어떤 기준에서 일까.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지 어리고 안어리고의 문제는 아니다. 버릇없는 어른이라면 버릇없다는 말 뿐 아니라 더 한 말도 들을 수 있는거다.
그래서 어른이란 그야말로 아무나 되는게 아닌 것이다. 결혼을 했냐 안했냐 혹은 세월지나 나이 먹었다고 다 어른이 아니라는 거다. 생물학적 노화가 어른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한국민들 중에는 그저 늙었음으로 어른대접을 받아 먹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마치 동영상속의 저 버릇 졸라 없을 것 같은 사람처럼 말이다.
도로 한 복판에서 역주행하고도 피해가려는 젊은이의 차는 왜 자전거로 들이 받는건데~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아마 이런경우가 아닐까. -.-;; 아.. 대한민국에는 양아치같은 인간들이 참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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