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4, 2014

도덕을 팔아먹는 사람들
people who sells the morality


기회가 된다면 마교수의 책 몇가지를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만 하고 있었다. 파편처럼 읽는 그의 몇몇 글을 보면..아무래도 책을 쫌 사봐야 겠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썩 좋아하지 않아서..그의 인간론이나, 이 시대는 개인주의를 원한다등..산문집이나 비평집, 철학 에세이쪽으로 읽고 싶다.

며칠전 인터넷에 떠들썩했던 그의 강의교제 채택방식에 관한 논란이 있은 후로..나는 다시 책 읽기를 시작해 볼까를 생각하게 됐다. 예전에는 그래도 일년에 몇권쯤은 읽었던 것 같은데..언제부터인가 나는 책을 거의 읽지 않기 시작했고..읽어봐야 온라인을 통해 단편적으로 읽는 것이 고작이다. 핑계를 대자면..무거운 책을 들고다니는게 번거롭기도 했지만..무엇보다 책과 현실의 괴리에서오는 좌절이나 절망이 이유가 아니였나 싶다. 살아보니 책처럼, 책이 일러준데로는..도무지 살아지는 세상이 아닌듯 했기 때문이다. 책은 교양을 쌓기위해 읽는다지만..이 빌어먹을 세상은 교양보다는 실력인듯했고, 실력보다는 능력인듯했고, 능력보다는 연줄과 편법이 우선하는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교양 따위는 도무지 먹히지도, 밥이 나오지도, 돈이 생기지도 않는 웃기지도 않는 시츄에이션이 너무 빈번히 경험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여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의 모든 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개인적으로..마교수는 충분히 독특한 매력이 있는사람중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니 어쩌면..맘에 드는 대한민쿡 작가중 유일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쩝. 나 역시 윤리나 도덕을 맹신처럼 떠 받드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왔던터다. 아니..더 정확히 말하자면 도덕이나 윤리를 맹신처럼 들먹이는 사람들이 그리 도덕적이지도 윤리적이지도 않은 것 같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이겠다.

그런 나의 경향은 마광수라는 양반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였다. 이 양반을 알기전..아주 오래전부터 괜히 폼잡고 고상한척 호박씨까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유교주의 핑계로 도덕과 윤리를 숭상하듯 떠 받드는 척하면서.. 온갖 추잡한 짖거리와 의식적 파렴치의 끝을 보여준 일부 대한쿡민들의 이중적 행태와 의식구조의 영향 때문이였다.

어쨋거나 아래의 글을 읽으면서..역시 이 양반께서 작가는 작가인 모양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쉽고 깔끔하게 명쾌하게 쓰셨네..쩝.

도덕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 - 마광수
나는 도덕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을 증오한다. 그런 자들은 정권의 추이와도 상관없이, 그리고 그들 스스로의 기회주의적 변신이나 어용적(御用的) 행태와도 상관없이, 늘 사회적 기득권과 권세, 그리고 부(富)까지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은 언제나 권력에 초연한 체하면서 오히려 권력의 주변에 포진한다. 이른바 관변교수로 불리는 이들중 상당수가 여기에 해당되는데,그들은 또한 매스컴의 구미에 맞는 양비론적 발언을 잘하는 재주를 지니고 있어 '오피니언 리더' 로서의 역할까지 해낸다. 그들은 언제나 도덕을 팔아먹으며 스스로의 속악(俗惡)한 기회주의와 천박한 출세주의를 감춘다.

경제가 잘 돼도 도덕타령이요, 경제가 무너져도 도덕타령이다. 정치가 잘돼도 도덕타령이요, 정치가 흔들려도 도덕타령이다. 그들은 대개 자유주의적 문화나 예술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리고 옛날 조상타령을 해가며 전통윤리를 들먹이길 좋아하고, 애국애족으로 포장된 문화적 국수주의를 내세운다.

이들은 내가 보기에 우리 사회의 적(敵)이다. 그러나 이들은 '군사독재' 나 '부정부패' 같이 분명히 드러나는 악을 행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악, 심지어는 선으로 보일 수도 있는 악을 행하고 있으니 문제다. 이처럼 적성(敵性)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식별해내기도 어렵고 없애버리기도 어렵다. 말하자면 그들은 도덕의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사회발전에 쐐기를 박는 부도덕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지켜야할 도덕은 많다. 살인을 해서는 안된다는 도덕이나 남의 물건을 훔쳐서는 안된다는 도덕은 상식적인 도덕이요, 대중적 통념으로 합의된 도덕이다.

그러나 개인의 욕망을 억압하는 것이 선이라고 가르치는 금욕주의적 도덕이나, 케케묵은 교훈주의적 문학이나 예술만을 좋다고하고 다른 것들은 다 없애버려야 한다는 식의 독선적 도덕은 도덕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사디스틱한 광분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이런 위선적 도덕만을 가르쳤기 때문에 썩어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도덕을 팔아먹고 사는 자들은 일종의 강박신경증 환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적 광신도와도 같다. 광신도들은 선과 계율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며 내세의 쾌락을 이기적으로 추구한다. 반면에 도덕을 팔아먹고 사는 자들은 실현불가능한 정화와 금욕에 집착하며 현세에서의 출세를 꿈꾼다. 아니, 반드시 금욕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중 상당수는 이중적 처신을 해가며 파렴치한 욕구를 발악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라이히는 처음엔 프로이트 좌파(左派) 이론가로 출발했다. 그러나 소련정부가 동성애를 금하는 법률을 제정했다는 소식을 듣자, 소련에의 희망을 버리고 소련이 망할 것을 예언했다. 프랑스 대혁명이 실패한 것도 로베스피에르 등이 내세운 극단적 도덕주의 때문이었고, 조선이 망한 것도 유교적 도덕 독재 때문이었다.

조선조의 양반들은 대개 도덕을 팔아먹고 사는 자들이었고, 그래서 사회의 발전적 변화를 가로막았던 것이다. 그들은 대개 친일파로 전신(轉身)했고, 도덕적 자성(自省)운동을 빙자한 친일행위를 했다.

어쨌든 한국에서 앞으로 전개될 세상은 무언가 달라진 것이어야 한다. 그럴 경우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도덕을 팔아먹고 살면서 안전하게 호의호식하는 문화계, 학계. 법조계. 언론계의 기회주의자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쇄국주의적 문화관을 고수하며 '세계화' 를 가로막은 수구적 통제주의자들 역시 이 땅에서 몰아내는 것이다.

도덕을 없애야 도덕이 선다. 아니 위선적 도덕을 없애야 진짜 도덕이 선다. 도덕적 테러가 환영받는 사회는 민주국가가 아니다.

- 에세이집 <자유에의 용기> 중에서..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