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지났다. 다들 잘 지내셨겠지만..나는 그저 심심할 따름이였다. 연휴내내 TV만보고 인터넷만 했다. 나에게 명절이란 그저 심심한 공휴일에 지나지 않았다. 할 것도 없고, 딱히 갈 곳도 없는 그야말로 지겹기만한 그런 날이다. 그러다가 발견한 글 하나. 아래 칼럼은 어느 사이트에서 보게되었는데..글이 쓰여진것이 벌써 5년전에 쓰여진 칼럼이다.
내용의 일부에서는 조금 오래된 칼럼임을 짐작케하는 서술이 있기는 하지만..단언하건데 이와 동일한 주제의 칼럼은 10년전에도 있었고, 20년전에도 정말 거짖말처럼 똑 같은 칼럼이 있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아니 10년, 20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내가 무슨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읽어보면 작금의 명절에 대한 불합리로 인한 불편함이 여전히 드러난다.
내가 명절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유는 칼럼에서 밝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개인적 이유중 하나는..첫째 토속신앙 혹은 무속신앙의 파편이라고 할 수 있는 제사다. 개인적으로 죽음이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믿는터라 제사라는 것 자체가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혹시 무당의 산신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생각해 보면 일년에 한 번씩 산에 들어가 산신제를 지낸다는 무당의 굿거리와 제사의 차이가 뭔지 모르겠다.
기독교를 믿던, 이슬람을 믿던, 무당을 믿던, 조상을 믿던 상관없다. 그것은 그대의 믿음이니 내가 이러쿵저러쿵 할 수 없다. 기독교를 믿으면 기독교식을 따르면 되고, 토속신앙이나 유교사상을 믿으면 그것에 따르면 된다. 단, 기독교인은 유교주의자들에게 기독교를 강요할 수 없으면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부디 서로의 믿음을 강요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상당수의 전쟁과 싸움들이 이 믿음을 강요하는데서 생기는 것 같다. 미안하지만..나는 어떤 종교도 무속신앙도 믿지 않는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기껏 일 년에 한두 번 보게되는 소위 친척들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서먹함이다. 뻔질나게 만나고 술마시고 해도 인간적 유대나 이해가 쌓이기 힘든 판국에 일년에 고작 한두 번 대면하는 사이에 그야말로 신뢰와 인간적인 이해가 쌓였을 리가 만무하다. 게다가 대화를 하려고 해도 시각도 다르고 생각의 방식이 너무 달라서 대화 자체가 너무 불편하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과 논리에 동조를 강요하는 것같은 소위 어른들과의 대화는 너무 불편하다. 더 불편한것은 다른 이견, 반대 생각을 표출하면 순간적으로 퍼지는 그 어색함..그 어색함은 곧 어른들과 다른 생각의 표출 자체가 허용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대화는 불가능하고..그저 침묵 이외에는 달리 할 것도 없다. 이런 불편함을 수년간 반복하면서도 명절에 괜히 시끄러워지는 것이 싫어 묵비권을 행사하며 왠만하면 의견을 따라가거나 침묵적 동조을 했었으나 이런식으로 가다가는 그야말로 인식의 전환은 결코 오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의 명절을 보내면서..그래서 앞으로는 내 의사표현을 확실히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불협화음이나 불편함이 싫다면 선택은 두가지다. 그것을 회피하거나 맞닥드리는 것이다. 그동안 그것을 회피해왔으나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맞닥드리는 것도 방법이지 싶다. 어차피 불협화음을 없앨수 없다면..그야말로 대전환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어쨋거나..대한민국 명절의 작동방식은 아무리 생각해보 작금의 시대상황이나 인식의 범위에 부합하지 못하는 모순과 불합리가 너무 많은 것 같다. 그것을 그저 어떻게 되겠지라고 회피해서는 결론이 나질 않는 것 같다. 수십년간 매년 똑같은 논쟁, 똑같은 고민, 똑같은 스트레스, 똑같은 불협화음..이젠 정말 지겹고 그것을 그냥 방관만하고 있는 소위 집안의 어른들이라는 양반들도 이해할 수없다. 아무래도 생각과 고민을 더 해보고..어떤식으로든 내 생각과 의향을 주장해야 겠다. 그냥 예~ 해서는 도무지 방법이 없다. 쩝.
근데..며느리 란 말의 어원이 제사를 이여받는, 제사를 올리는 사람..뭐 이런뜻이라는데..쫌 황당하군. 암튼 그 옛날에는 합당한 의미의 말이였는지 모르지만..작금의 시대에 과연 그 의미가 합당한지는 글쎄..쩝.
지독한 소외와 배제문화 활달한 성격의 큰 이모는 명절이나 회갑연 같은 공식적인 가족행사는 오지 않았었다. 이모는 왜 안와? 라고 물으면 엄마는 눈을 찡긋 하며 내 옆구리를 쿡 찌르곤 했다. 엄마의 이런 행동은 내가 뭔가 눈치 없이 굴 때 하는 행동이다. 엄마의 그 행동으로 이모가 왜 안 오는지 물으면 안 된다는 걸 짐작한 나는 명절 연휴가 끝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큰 이모가 왠지 안쓰러웠다.
그 마음은 엄마도 마찬가지였는지 엄마는 꼭 그 주 주말을 비워놓고 큰 이모를 위해 손으로 만든 만두를 남겨두고는 했다. 지금이야 이것보다는 낫겠지만 대부분 이혼여성들은 명절 때 집으로 가도 제 자리를 찾기가 어렵다. 그래. 큰 이모는 집안의 유일한 "이혼녀"였다. 나중에야 들은 얘기지만 큰 이모가 이혼 후에 가족 행사에 찾아갔을 때 친척들은 냉랭한 눈길로 못 본 척 했단다. 그 이후 큰 이모는 모든 가족 행사에 발길을 끊고 엄마와 외할머니만 가끔 찾아가곤 한 것 같다.
명절 때 가족들 얼굴을 보기 계면쩍어 하는 건 이혼 여성들뿐 아니다. 취직을 못한 실업자도, 혹은 서른이 넘어 똥차 취급받는 미혼, 비혼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결혼과 출산경험으로 서열을 매기고 성인이 된 인증서를 지급하는 기존의 “정상가족” 수호자들은 정상가족을 아직 못 만든 모든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하며, 가족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기와 다른 삶을 사는 모든 이들의 삶을 의미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횡포를 잘도 저지른다.
명절이 되면 두 손 가득 선물을 들고, 아내 혹은 남편과 아이들 손을 잡고, 한복을 입고 귀경하는 “정상가족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명절 때마다 소외를 느끼고, 배제당하는 것이다.
그럼 정상가족들은 행복하신가요? 그럼 정상가족들끼리는 행복하고 화목하게 명절을 잘 보내다 가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기껏 일 년에 한두 번, 많아야 네 번 정도를 모이는 친척들 사이에 깊은 신뢰와 인간적인 이해가 쌓였을 리가 만무하다.
어린 시절의 몇 년 말고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사람들끼리, 혈연이라는 가느다란 인연의 끈을 중심으로, 성인이 되어 다시 모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회생활처럼 서로 성인으로 대접해주며 예의를 차려도 분쟁과 갈등이 있게 마련인데,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역할과 이름을 다시 주며 그에 따른 예법을 강요하고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무례를 일삼는 상황에서 이 “친척모임”들은 그 어떤 성인들이 모이는 모임보다 분쟁과 갈등의 요인이 많다.
또한 이 모임에서 주로 나누는 대화의 내용은 서로의 재산 상태와 각자 가족들의 정상가족 진입여부(결혼과 출산 여부)이므로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그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누구라도 마음상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 게다가 집안 마다 꼭 있는 크고 작은 돈 문제가 명절을 기회로 불거져 나오거나 아니면 기어이 화투판에서라도 돈 문제가 생겨 큰 소리가 오가고 싸움질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난리부르스 한판이 지나가고 나면 아이들과 함께 윷놀이를 하는 시늉을 잠시 하다가, 한편에서는 남자들끼리 술판과 화투판을 벌이고, 또 울그락 푸르락이 반복되고... 한쪽에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시누이와 올케, 동서지간끼리 남자들 흉보며 연대도 했다가, 서로에게 화도 냈다가, 혹은 스트레스받은 티도 못내고 꾹 참다 홧병이 나는 정상가족 내 여자들의 우울한 명절풍경이 다른 편에서 펼쳐진다.
명절,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해 드디어 호주제가 개인의 존엄성과 양성평등에 반하는 성차별적 제도라며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받았다. 호주제가 성차별을 끊임없이 재생산해내는 가족제도를 수호하는 법적 근거였다면, “명절”은 정상가족의 문화적 근거로써 존재한다.
하지만 가족은 변하고 있다. 이혼 가족, 재혼 가족, 한부모 가족, 독거노인, 동거 가족, 공동체 가족 등 정상가족에 포함되어 있지 않는 수많은 다른 가족과 더불어 가족제도로 보호되지 않고 있는 개인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복입고 절하고 윷놀이하고 경복궁 찾아가고 외국인들 불러모아 한복입혀서 퀴즈대회를 여는 변치 않는 TV프로그램과 때마다 차례상 차리는 법을 칼라화보를 동원해 알려주는 신문들과 국가차원으로 대응하는 대대적 귀경 전쟁 등 명절이 되면 온 나리가 갑자기 가족과 전통적 가치의 수호자로 대변신을 한다. 그리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은 명절때 소외된 이웃을 돕자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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