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2, 2021

지렁이의 울음을 누가 들었을까 - 김정희

 지렁이의 울음을 누가 들었을까 - 김정희


소낙비 그친 뒤 

수 시간 걸려 아스팔트로 올라왔을 지렁이가 

후진하던 자동차에 깔린다 수 초 전까지 살아 

꿈틀거리던 그가 금세 한 장의 전개도처럼 펼쳐진다 

그때, 누가 들었을까? 그 지렁이의 마지막 울음소리를 

409호 베란다에 사는 비둘기들이 새파랗게 눈독들이는 소리를 

비둘기들이 재빨리 내려가 축축한 전개도를 떼어 물고 간다 

아스팔트에 복사된 지렁이의 생이 붉은 우표처럼 붙어있다 

바로 그 자리에 짐차 한 대 들어선다



***



여름 비가 내린 후

산책을 하다 보면 보도블록 위에 지렁들이 너무 많다.


땡볕에 달궈진 보도블록 위에서

애처롭게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보면

매우 안쓰러워 몇 번 흙 위에 옮겨 놓았으나

문제는 그렇게 몸부림치는 지렁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매번 피해가는 것도 한계가 있고...

온통 여기저기 사방팔발 말라 붙은 지렁이 사체들 천지다.


그런 지렁이들에 대한 측은함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너무 찜찜하지만

도무지 대책도 방법도 없는 듯 하다.


누구의 잘못인가?

멍청하게 기어나오는 지렁이인가?

아니면 세상을 온통 시멘트로 쳐발라 놓은 인간인가?


아무리 봐도 지렁이는 죄가 없는 듯 하다.


부디 다시는 '운'없이 길을 잃지 말기를...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