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8, 2026

[펌] 가난의 온도...

 출처: Thread. 백경 deepsea919

여자친구 집에 가려면 꼭 사창가 골목을 지나야 했다. 그럴 때면 가짜 보석이 알알이 붙은 요란한 속옷 차림의 아주머니들이 오빠! 소리치며 달려왔다. 머뭇거리면 주저 없이 팔짱을 끼워버리기 때문에 걸음을 서둘렀다. 사냥감을 놓친 아주머니들은 퉤, 하고 그림자 위로 침을 뱉었다.

지린내를 풍기는 담벼락을 끼고돌면 지린내를 풍기는 빌라 건물이 나타났다. 여자 친구는 거기 4층에 살았다. 오래된 에어컨을 켜면 거기서 또 지린내가 나서 에어컨은 켜지 않고 선풍기 한 대로만 여름을 버텼다. 수압이 얼마나 약한지 머리라도 한 번 감으면 비눗물이 씻기질 않아 샤워꼭지 아래서 고사를 지내야 할 판이었다. 샤워꼭지에선 뜨거운 물도, 차가운 물도 나오지 않았다. 어느 쪽으로 돌려도 미지근한 물만 나왔다. 그때 알았다. 가난의 온도는 미지근함이란걸.

미지근한 이불을 함께 뒤집어쓰고 지내던 어느 날 여자친구가 뭔가를 내밀었다. 두 줄짜리 임신 테스터였다. 나는 오래 준비한 멘트인 양 툭 뱉었다. “결혼하면 되지요.” 여자친구는 다른 대답, 가령 미지근한 거절을 각오했었는지 대뜸 결혼하자는 내 말에 눈시울을 붉혔다.

엊저녁엔 아내와 회 한 접시 놓고 한잔했다. 마흔 넘어 이룬 게 없어 울적하노라 말하니 아내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룬 게 왜 없어. 안주가 이렇게 좋은데. 방바닥이 이렇게 뜨거운데.” 듣고 보니 그랬다. 집이 절절 끓도록 불을 때면서, 차가운 회에 차가운 술을 마시면서 이룬 게 없다니. 미지근함을 벗어난 우리가 새삼 대견했다. 머쓱해서 한잔 털어 넣고 당신 손을 잡았다. 세상 뜨거웠다.

https://www.threads.com/@deepsea919/post/DRQ2cNEkfzz


세상에는 글 잘 쓰는 '고수'들이 너무 많다. 숨은 고수들의 글을 가끔 우연히 접할 때마다... 항상 겸손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돈도 안 되고, 무슨 실질적 이득도 별로 없는 것 같은 소위 말하는 '좋은 글'을 자주 접하고 싶지만... 시간이 갈수록, 시대가 변할수록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새삼 세상 모든 것에는 반드시 양면성이 있는 듯하다. 부자는 부자라서, 가난하면 가난해서 갖게 되는 장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항상 그 중간 어디쯤에서 균형을 잡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때론 고달프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고달픔에도 불구하고 균형을 찾으려는 것에 기특함을 갖게 되기도 한다.

가끔은 미쳐 제대로 수습안 된 오늘 하루를 지나며, 이도 저도 아닌 미지근함으로 남아도 그리 나쁠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물론 현실에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마흔 넘어 미지근한 '그'를 조롱 혹은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쩌겠나... 모든 개인은 그저 각자의 그릇으로 사는 것뿐이니 말이다.

https://blog.naver.com/parangbee/222276063167

https://blog.naver.com/parangbee/220659994889

https://blog.naver.com/parangbee/223854468916

https://blog.naver.com/parangbee/222798303252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