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한국어판이 왜 없는 것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그나저나, 번역을 일단 시작은 했는데... 생각보다 량이 많아서 벅차다. ^^;; 전반적으로 쓰여진 영어 문장들이 아주 '난리버거지'인 것 같다.
"Korea's Fight for Freedom"
by Frederick Arthur Mckenzie
"자유를 위한 한국인의 투쟁" - 프레데릭 매켄지
I. OPENING THE OYSTER : 입을 열다
II. JAPAN MAKES A FALSE MOVE : 일본 잘못된 행동을 하다
III. THE MURDER OF THE QUEEN : 황비의 살인
IV. THE INDEPENDENCE CLUB : 독립 클럽
V. THE NEW ERA : 새로운 시대
VI. THE RULE OF PRINCE ITO : 이토 공자의 통치
VII. THE ABDICATION OF YI HYEUNG : 이형 퇴위
VIII. A JOURNEY TO THE "RIGHTEOUS ARMY" : 의로운 군대의 여정
IX. WITH THE REBELS : 반란과 함께
X. THE LAST DAYS OF THE KOREAN EMPIRE : 대한 제국의 마지막 날
XI. "I WILL WHIP YOU WITH SCORPIONS" : 전갈로 채찍질을 하다
XII. THE MISSIONARIES : 선교사들
XIII. TORTURE A LA MODE : 고문하다
XIV. THE INDEPENDENCE MOVEMENT : 독립운동
XV. THE PEOPLE SPEAK? THE TYRANTS ANSWER : 사람들이 말하고 폭군이 대답하다
XVI. THE REIGN OF TERROR IN PYENG-YANG : 평양의 공포정치
XVII. GIRL MARTYRS FOR LIBERTY : 자유를 위한 소녀 순교자
XVIII. WORLD REACTIONS : 세계의 반응
XIX. WHAT CAN WE DO? : 무엇을 할 수 있는가?
I. OPENING THE OYSTER
입을 열다
Up to the last quarter of the nineteenth century, Korea refused all intercourse with foreign nations. Peaceful ships that approached its uncharted and unlit shores were fired upon. Its only land approach, from the north, was bounded by an almost inaccessible mountain and forest region, and by a devastated "No Man's Land," infested by bandits and river pirates. When outside Governments made friendly approaches, and offered to show Korea the wonders of modern civilization, they received the haughty reply that Korea was quite satisfied with its own civilization, which had endured for four thousand years.
19세기 말까지 한국은 외국과의 모든 교류를 거부했다.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고, 불빛 하나 없는 한국 해안에 접근한 평화로운 (외국의) 배들이 포격을 받았다. 북쪽에서 육지를 통해 해안선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거의 접근하기 어려운 산과 산림지역, 그리고 도적과 해적이 들끓는 황폐한 '무인의 땅'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외국의 정부가 우호적으로 접근하여 한국에 현대 서구문명의 경이로움을 보여 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그들은 한국이 4천 년 동안 지속된 자국 문명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는 거만한 답변을 받아야 했다.
▶결과론적 얘기지만... 이때 조선이 서구문명의 장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해 본다. 그러나 안타갑게도 이때의 조선은 유교주의와 성리학의 한계를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고, 그 유교주의와 성리학의 잔재가 부분적으로 2023년에도 여전히 남아있어... 한국과 한국인의 일상과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uncharte 인적 미답의/미지의/잘 알지 못하는/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unlit 불을 켜지 않은/불을 붙이지 않은
devastate 엄청 충격을 받은/완전히 파괴하다
infeste 들끓게 하다/만연하다/횡횅하다
bandit 노상강도/산적/도둑
haughty 거만한/오만한
Even Korea, however, could not keep the world entirely in the dark about it. Chinese sources told something of its history. Its people were the descendants of Ki-tzse, a famous Chinese sage and statesman who, eleven hundred years before Christ, moved with his tribesmen over the river Yalu because he would not recognize or submit to a new dynasty that had usurped power in China. His followers doubtless absorbed and were influenced by still older settlers in Korea. The result was a people with strong national characteristics, different and distinct from the Chinese on the one side and the Japanese on the other.
그러나 한국도 그 존재를 외부 세계로부터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중국의 한 소식통(혹은 출처)에는 한국의 역사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들, 즉 한국 사람들은 중국의 유명한 현자이자 정치가인 '키체(Ki-tzse)'의 후손이며, 기원전 1100년에 권력을 찬탈한 새로운 왕조를 인정하거나 복종하지 않으려고 부족민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이주한 사람들이고, 한국으로 건너간 그(키체)의 추종자들은 의심할 바 없이, 이미 한국에 훨씬 더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한국 원주민/정착민들에 흡수되고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 (한편으로는) 중국인과 다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인과도 다르게 구별되는 강한 민족적 특성을 지닌 민족이 탄생했다.
▶'키체(ki-tzse)'가 누구인지 처음 듣는다. BC 12세기 한국의 기원이며 전설상의 중국인이라는데.. 중국의 알수없는 소식통에 근거한 이 이야기는 사실여부를 알 수 없는 전설속(?) 얘기인 듯 하다.
tribesmen 부족 구성원
usurp (왕좌 권좌 등을) 빼앗다[찬탈하다]/횡령하다
We knew that, as Korea obtained much of its early knowledge from China, so it gave the younger nation of Japan its learning and industries. Its people reached a high stage of culture, and all records indicate that in the days when the early Briton painted himself with woad and when Rome was at her prime, Korea was a powerful, orderly and civilized kingdom. Unhappily it was placed as a buffer between two states, China, ready to absorb it, and Japan, keen to conquer its people as a preliminary to triumph over China.
우리는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많은 초기 지식을 획득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신생 국가인 일본에게 학문과 산업을 제공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문화의 높은 단계에 올라있었고, 모든 기록에 따르면 초기 영국인들이 '대청'같은 걸 몸에 쳐바르고 있었을 때, 그리고 로마가 항창 전성기였을 때, 한국은 이미 강력하고 질서정연하며 문명화된 왕국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은 두 국가, 즉 한국을 흡수할 준비를 하고 있던 중국과, 중국 정복을 향한 승리의 예비전으로서 일본 자국민들을 정복하려 열을 올리고 있던 일본 사이에서 일종의 완충적 위치에 있었다.
woad 대청(고대인들이 몸과 얼굴에 칠하는 데 쓰던 청색 물감)
Briton - British person의 격식 있는 표현
conquer 정복하다
preliminary 예비의/예비 행위[단계], (말의) 서두/예선전
triumph 업적[승리]/대성공/환희/승리를 거두다/이기다
In the course of centuries, it became an inbred tradition with the Japanese that they must seize Korea. Hideyoshi, the famous Japanese Regent, made a tremendous effort in 1582. Three hundred thousand troops swept over Korea, capturing city after city, and driving the Korean forces to the north. Korea appealed to China for aid, and after terrible fighting, the Japanese were driven back. They left a Korea in ruins, carrying off everything they could, and destroying all they could not carry off. They kidnapped, among others, the skilled workmen of Korea, and made them remain in Japan and carry on their industries there.
수 세기가 지나면서 일본이 한국을 점령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에서는 뿌리 깊은 전통(믿음)이 되었다. 이를 위해 유명한 일본 섭정(攝政)인 히데요시는 1582년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30만 명의 군대가 한국을 휩쓸고 도시를 하나씩 점령하고 한국군을 북쪽으로 몰아냈다. 한국은 중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치열한 전투 끝에 일본군은 물러났다. 그들(=일본)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빼앗고, 가져갈 수 없는 것은 모두 파괴하면서 한국을 폐허로 만들었다. 그들은 조선의 숙련된 노동자들을 납치하여 일본으로 (대려가) 머물게 하고 그곳에서 일을 계속하게 하였다.
▶섭정(攝政): 국왕에게 사정이 생겼을 때 국왕 대신 나라를 다스리는 일 또는 그 사람.
inbred/inborn (동식물을)근친교배한/타고난, 선천적인
regent 섭정(을 하는 사람)
carry off 노략질하다
Hideyoshi's invasion is of more than historic interest Korea has never recovered the damage then done. The Japanese desire for Korea, thwarted for the moment, smouldered, waiting for the moment to burst afresh into flame. The memories of their terrible sufferings at the hands of the Japanese ground into the Koreans a hatred of their neighbour, handed down undiminished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to this day.
히데요시의 침략은 당시 한국이 입었던 피해를 복구한 적이 없었다는 말 이상의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한국지배에 대한 일본의 열망은 잠시 좌절되었지만, 다시 불타오르는 순간을 기다리며 서서히 내부에서(속으로) 불씨를 집히고(타오르고) 있었다. 일본인들의 손에 끔찍한 고통을 겪었던 기억은 한국인들에게 이웃에 대한 증오심을 심어주었고, 대를 이어 오늘날까지 줄어들지 않고 전해졌다.
thwart/thwarted 좌절시키다/좌절된, 어긋난
smoulder (불이 불꽃은 없이 서서히) 타다
ground into 심어주다
hatred 증오[혐오]
undiminished 줄어들지[약화되지] 않은
Korea might have recovered, but for another and even more serious handicap. A new dynasty, the House of Yi, succeeded to the Korean throne over five centuries ago, and established a rule fatal to all progress. The King was everything, and the nation lived solely for him.
한국은 (외국의 침략을) 극복했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그리고 훨씬 더 심각한 핸디캡이 있었다. 새로운 왕조인 이씨 가문은 5세기 전에 한국의 왕위를 계승했으며, 모든 면에서 치명적이라 할 통치체제를 세웠는데, 왕은 모든 것이고, 나라는 오직 왕을 위해 존재했다는 것이었다.
throne 왕좌, 옥좌/왕위, 보위
fatal 죽음을 초래하는, 치명적인/치명적인,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하는)
solely 오로지, 단지/단독으로
No man was allowed to become too rich or powerful. There must be no great nobles to come together and oppose these kings as the Norman Barons fought and checked the Norman Kings of England. No man was allowed to build a house beyond a certain size, save the King. The only way to wealth or power was by enlisting in the King's service. The King's governors were free to plunder as they would, and even the village magistrate, representing the King, could freely work his will on those under him. The King had his eyes everywhere. His spies were all over the land. Let yang-ban (official or noble) however high show unhealthy ambition or seek to conceal anything from the royal knowledge and he would be called to Court and broken in an hour, and would count himself fortunate if he escaped with his life.
(한국에서는, 즉 당시 조선) 어떤 사람도 너무 부자가 되거나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노르만 남작들이 영국의 노르만 왕들과 싸워 견제했던 것처럼, (조선의 귀족들이) 결집하여 왕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위대한) 귀족들은 없었다. 왕을 제외하고는 어떤 사람도 특정 크기 이상의 집을 지을 수 없었다. 부나 권력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왕을 섬기는 것이었다. 왕의 (신하들)총독들은 마음대로 약탈할 수 있었고, 심지어 왕을 대신하는 마을 행정관/관료 조차도 신분이 낮은 백성들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왕의 감시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왕의 정탐꾼들이 전국/팔도에 있었다. 양반(관료 또는 귀족)이 아무리 높더라도 불건전한 야망을 보이거나 왕실의 지식에서 무엇이든 숨기려고 하면 법정에 소환되어 한 시간도 안 되서 절단이 날 것이고 목숨을 건지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정도였을 것이다.
▶양반들의 권력 혹은 비열함 혹은 횡포(?)가 어떠했는지를 알았다면, 메켄케지가 양반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이 대목은 서양인의 눈으로 피상적으로 본 당시 조선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사실 양반들은 왕도 제 마음대로 갈아치울 수 있었다. 다만 직접적으로 적나라하게 양반의 세력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겉으로는 '의리'와 '신의'를 들먹이며 성리학을 지껄였지만, 속내는 시정잡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baron 남작(귀족의 최하위 계급. 영국에서는 Lord라 부르고 그 외 국가들에서는 Baron이라고 부름)/부호
plunder 약탈, 강탈
magistrate 치안 판사
count himself fortunate 운이 좋다고 생각하다
The Korean people are eminently pacific. Up to a point, they endure hard thing's uncomplainingly. It would have been better for them had they not suffered wrongs so tamely. The Yi method of government killed ambition--except for the King's service--killed enterprise and killed progress. The aim of the business man and the farmer was to escape notice and live quietly.
한국 사람들은 정말 평화롭다. 그들은 힘든 일을 불평 없이 견뎌낸다. 그들이 그렇게 잘못 길들여져 고통밭지 않았다면 그들에게는 더 좋았을 것이다. 이 왕조의 통치 방식은 왕에 대한 헌신을 제외하고 야망을 죽이고 기업을 죽이고 진보를 죽였다. 사업가와 농부의 목적은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사는 것이었다.
eminent/eminently 저명한 탁월한/대단히, 탁월하게/
tamely 길들여서, 온순하게
Foreigners attempted, time after time, to make their way into the country. French Catholic priests, as far back as the end of the eighteenth century, smuggled themselves in. Despite torture and death, they kept on, until the great persecution of 1866 wiped them and their converts out. This persecution arose because of fear of foreign aggression.
외국인들은 계속해서 (한국으로의) 입국을 시도했다. 18세기 말부터 프랑스 가톨릭 사제들이 밀입국했다. 고문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1866년의 대박해로 인해 그들과 개종자들이 멸절될 때까지 계속 버텼다. 이 박해는 외국의 침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smuggled 밀입국/밀수
persecut/persecution 못살게하다, 박해하다/박해
aggression 공격, 침략/공격성
A Russian war vessel appeared off Broughton's Bay, demanding on behalf of Russians the right of commerce. The King at this time was a minor, adopted by the late King. His father, the Tai Won Kun, or Regent, ruled in his stead. He was a man of great force of character and no scruples. He slew in wholesale fashion those who dared oppose him. He had the idea that the Christians favoured the coming of the foreigner and so he turned his wrath on them. The native Catholics were wiped out, under every possible circumstance of brutality, and with them perished a number of French Catholic priests. By one of those contradictions which are constantly happening in real life, the crew of an American steamer, the _Surprise_, who were wrecked off the coast of Whang-hai that year were treated with all possible honour and consideration, and were returned home, through Manchuria, officials conducting them and the people coming out to greet them as they travelled through the land.
러시아 군함이 Broughton's Bay에 나타나 러시아인을 대신하여 상업권을 요구했다. 당시 (조선의) 왕은 전왕이 양자로 삼은 미성년자였다. 그의 아버지인 태원근(泰源坤), 즉 '섭정'이 그를 대신하여 통치했다. 그(섭정이었던 태원근)는 성격이 강하고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감히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죽였다. 그는 자국내 그리스도인들이 외국인의 방문을 환영/선호한다고 생각하여 그들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한국에 존재했던) 토착 가톨릭 신자들은 가능한 모든 잔혹한 상황 속에서 전멸되었고, 그들과 함께 수많은 프랑스 가톨릭 사제들도 죽었다. 현실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모순 중 하나로, 그 해 황하이 앞바다에서 난파된 미국 증기선 '서프라이즈호'의 선원들, 이를 지휘하는 관리들, 그리고 육로를 여행하면서 그들을 맞이하러 나오는 사람들 모두 가능한 한 모든 명예와 배려를 받고 만주를 거쳐 귀국했다.
scruple 양심, (양심의) 가책[거리낌]/~하는 것에 조금의 가책도 갖지 않다
slew slay의 과거. 죽이다/살해하다
wrath 분노/노여움
contradiction 모순/반박
The French Minister at Peking determined on revenge for the death of the priests. A strong expedition was sent to the Han River, and attacked the forts on the Kangwha Island. The Korean troops met them bravely, and although the French obtained a temporary success, thanks to their modern weapons, they were in the end forced to retire.
베이징에 있던 프랑스 장관은 카톨릭 사제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결심했다. 막강한 원정대가 한강으로 파견되어 강화도 요새를 공격했다. 한국군은 용감하게 맞서 싸웠고, 프랑스군은 현대식 무기 덕분에 일시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결국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expedition 원정/원정대
An American ship, the _General Sherman_, set out for Korea in 1866, sailing from Tientsin for the purpose, it was rumoured, of plundering the royal tombs at Pyeng-yang. It entered the Taitong River, where it was ordered to stop. A fight opened between it and the Koreans, the latter in their dragon cloud armour, supposed to be impervious to bullets, sending their fire arrows against the invaders. The captain, not knowing the soundings of the river, ran his ship ashore. The Koreans sent fire boats drifting down the river towards the American ship. One of them set the _General Sherman_ in flames. Those of the crew who were not burned on the spot were soon slaughtered by the triumphant Korean soldiers. A more disreputable expedition, headed by a German Jew, Ernest Oppert and an American called Jenkins, left Shanghai in the following year, with a strong fighting crew of Chinese and Malays, and with a French missionary priest, M. Feron, as guide. They landed, and actually succeeded in reaching the royal tombs near the capital. Their shovels were useless, however, to remove the immense stones over the graves. A heavy fog enabled them to carry on their work for a time undisturbed. Soon an angry crowd gathered, and they had to return to their ship, the _China_. They were fortunate to escape before the Korean troops came up. The American consular authorities in Shanghai placed Jenkins on trial, but there was not enough evidence to convict him.
1866년 셔먼호라는 미국 선박이 평양의 왕릉을 약탈할 목적으로 텐진에서 출발하여 한국으로 떠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배는 타이통강으로 진입했고, 거기서 정지 명령을 받았다. 배는 총알에 영향을 받지 않는 용구름 갑옷을 입은 한국인과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고, 한국인들은 침략자들에게 불화살을 쏘았다. 강의 소리를 알지 못한 선장은 배를 해변으로 달렸다. 한국인들은 강을 따라 미국 선박을 향해 불 붙인 배들을 내려 보냈다. 그 하나가 셔먼호를 불태웠다. 그 자리에서 불에 타 죽지않은 선원들은 곧 승리한 한국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듬해 독일계 유대인 어니스트 오퍼트(Ernest Oppert)와 젠킨스(Jenkins)라는 미국인이 이끄는 좀 더 평판이 좋지 않은 원정대가 중국인과 말레이인으로 구성된 강력한 전투 승무원과 가이드였던 프랑스 선교 신부 M. 페론(M. Feron)를 데리고 상하이에서 출항했다. 그들은 상륙하여 실제로 수도 근처의 왕릉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들의 삽은 무덤 위의 거대한 돌을 제거하는 데 쓸모가 없었다. 짙은 안개 때문에 그들은 한동안 방해받지 않고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 분노한 군중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배인 중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국군이 오기 전에 탈출할 수 있었으니 운이 좋은 셈이었다. 상하이 주재 미국 영사관은 (책임을 물어) 젠킨스를 재판에 회부했지만 유죄를 선고할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다.
rumoured 소문이 난
impervious 통하지 않는
drifting (눈·모래 따위가) 날려서 쌓이는/(사람이) 불안정한, 무기력한
Malay 말레이인/동남아시아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인종 집단.
slaughter 도살/도축/학살/살육하다
disreputable 평판이 안 좋은
The killing of the crew of the _General Sherman_ brought the American Government into action. Captain Shufeldt, commander of the _Wachusset_, was ordered to go to Korea and obtain redress. He reached the mouth of the Han River, and sent a message to the King, asking an explanation of the matter. He had to retire, owing to weather conditions, before the reply arrived. The Korean reply, when eventually delivered, was in effect a plea of justification. The Americans, however, determined to inflict punishment, and a fleet was sent to destroy the forts on the Han River.
셔먼 장군의 승무원이 살해되면서 미국 정부는 행동에 나섰다. 와츄세트(Wachusset)의 사령관인 슈펠트(Shufeldt) 대위는 한국으로 가서 일을 바로잡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한강 하구에 이르러 왕에게 셔먼호 사건에 대해 묻는 서신을 보냈다. 하지만 기상 상황으로 인해 (왕의) 회신이 도착하기 전에 물러나야 했다. 결국 한국의 답변은 사실상 정당함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처벌을 가하기로 결심하고 한강의 요새를 파괴하기 위해 함대를 파견했다.
redress 구제/보상/(잘못된 것을) 바로잡다[시정하다]
owing to ~때문에
▶생각해 보면... 예나 지금이나 '미국'이라도 나라도 꽤나 침략하여 뺏기좋아하고, 비논리적이었지만, 당시는 서로가 서로에게 무지했던 그야말로 야만의 시대였던 것 같다. 야만의 시대에는 '국가의 힘이 없다'는 것은 굴종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The American ships, the _Monacacy_ and the _Palos_ bombarded the forts. The Korean brass guns, of one and one-half inch bore, and their thirty pounders, could do nothing against the American howitzers, throwing eight and ten inch shells. The American Marines and sailors landed, and in capturing a hill fort, had a short, hot hand-to-hand battle with the defenders. The Koreans fought desperately, picking up handfuls of dust to fling in the eyes of the Americans when they had nothing else to fight with. Refusing to surrender they were wiped out. Having destroyed the forts and killed a number of the soldiers, there was nothing for the Americans to do but to retire. The "gobs" were the first to admit the real courage of the Korean soldiers.
미국 선박 모노카시(Monacacy)와 팔로스(Palos)가 요새를 포격했다. 구경이 1.5인치이고 무게는 30파운드인 한국의 황동포는 8인치와 10인치 포탄을 쏘아대는 미국 곡사포에 대항할 수 없었다. 미국 해병대와 선원들은 상륙하여 언덕 요새를 점령하면서 한국의 방어군과 짧고 뜨거운 백병전을 벌였다. 한국인들은 필사적으로 싸웠고, 더 이상 싸울 것이 없었을 때 먼지 한 움큼을 주워 미국인들의 눈에 뿌렸다. 항복을 거부하면서 그들은 전멸당했다. 요새를 파괴하고 수많은 군인을 죽인 미군었지만, 전투 후에는 퇴각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선원들'은 한국군의 진정한 용기를 가장 먼저 인정한 사람들이었다.
bore 구경/구멍을 뚫다/지루한/지겨운 사람
howitzer 곡사포
gob 이 단어의 뜻이 명확치 않다. 찾아봤는데.. 아무래도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선원들'이 맞을 것 같다.=a man who serves as a sailor
Japan, which herself after considerable internal trouble, had accepted the coming of the Westerner as inevitable, tried on several occasions to renew relations with Korea. At first she was repulsed. In 1876 a Japanese ship, approaching the Korean coast, was fired on, as the Japanese a generation before had fired on foreign ships approaching their shore. There was a furious demand all over the country for revenge. Ito and other leaders with cool heads resisted the demand, but took such steps that Korea was compelled to conclude a treaty opening several ports to Japanese trade and giving Japan the right to send a minister to Seoul, the capital. The first clause of the first article of the treaty was in itself a warning of future trouble. "Chosen (Korea) being an independent state enjoys the same sovereign rights as does Japan." In other words Korea was virtually made to disown the slight Chinese protectorate which had been exercised for centuries.
일본은 내부 갈등 끝에 서구인(즉 서구문명)의 도래를 불가피하다고 여겨 받아들였고, 한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여러 차례 노력했다. 처음에 일본은 거절당했다. 1876년에 한국 해안에 접근하던 일본 선박은 한 세대 전에 일본이 자국 해안에 접근하는 외국 선박에 사격을 가했던 것처럼 포격을 당했다. 복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일본 전국에서 들끓었다. 냉정한 이토와 다른 지도자들은 그런 요구를 거부했지만, 한국은 일본 무역에 여러 항구를 개방하고 수도인 서울에 장관을 보낼 수 있는 권리를 일본에 부여하는 조약을 체결하지 않을 수 없는 조치를 취했다. 조약의 첫째 장, 첫 조항은 그 자체로 훗날 문제가 될만한 내용이었다. “조선인(조선)은 일본과 같은 독립국가로서 주권을 누린다.” 즉, 한국은 수세기 동안 행사되어온 중국의 작은 보호국임을 사실상 부인하게 되었다.
repulse 구역질나게 하다/혐오감을 주다/물리치다/격퇴하다/거부하다
compel/compelled 강요하다/~하게 하다
disown 의절하다/절연하다
The Chinese statesmen in Peking watched this undisturbed. They despised the Japanese too much to fear them, little dreaming that this small nation was within less than twenty years to humble them in the dust. Their real fear at this time was not Japan but Russia. Russia was stretching forth throughout Asia, and it looked as though she would try to seize Korea itself. And so Li Hung-chang advised the Korean rulers to guard themselves. "You must open your doors to other nations in order to keep out Russia," he told them. At the same time it was intimated to Ministers in Peking, particularly to the American Minister, that if he would approach the Koreans, they would be willing to listen. Commodore Shufeldt was made American Envoy, and an American-Korean Treaty was signed at Gensan on May 22, 1882. It was, truth to tell, a somewhat amateurish production, and had to be amended before it was finally ratified. It provided for the appointment of diplomatic and Consular officials, and for the opening of the country to commerce. A treaty with Britain was concluded in the following year, and other nations followed.
북경의 중국 정치인들은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중국 정치인들은 일본인들을 너무 경멸해서 일본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이 작은 나라(즉 일본)가 20년도 채 안 되어 그들(중국인들)을 먼지 속에 굴복시킬 것이라는 것을 거의 꿈도 꾸지 못했다. 이때 중국인들이 진짜 두려워한 것은 일본이 아니라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아시아 전역으로 뻗어나가고 있었고, 마치 한국 자체를 장악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홍창은 한국 통치자들에게 스스로를 (나라를) 지키라고 충고했다. “러시아를 막으려면 다른 나라에 문을 열어야 합니다.”라고 말했고, 동시에 북경의 장관들, 특히 미국 장관에게 만약 이홍창이 한국인들에게 다가간다면 한국인들은 기꺼이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암시를 주었다. 슈펠트 제독은 미국 특사로 임명되었고, 1882년 5월 22일 겐산(Gensan)에서 한미 조약이 체결되었다. 사실 그것은 다소 아마추어적인 작품(조약)이었고 최종 비준되기 전에 수정되어야 했다. 그 조약은 외교 및 영사 관리들의 임명과 국가의 상업 개방을 규정했다. 이듬해에 영국과 조약이 체결되었고, 다른 나라들도 뒤를 따랐다.
undisturbed 영향받지 않는/흔들리지 않는/방해받지 않는/건드리지 않는
despise 경멸하다/얕보다/무시하다
stretch out(=forth) 뻗치다/펴다
intimated 친밀한/넌지시 알리다/시사하다/사적인
provide 제공하다/규정하다
*이홍창의 충고를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당시 조선은 유교 성리학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일본의 지배를 받게 이르며, 2023년 현재에도 친일파들은 득세를 하고 있으니 조선의, 아니 유교와 성리학의 전근대성 또는 어리석고 우매함의 역사가 짧다고 할 수 없을 듯 하다.
One clause in the American Treaty was afterwards regarded by the Korean ruler as the sheet anchor of his safety, until storm came and it was found that the sheet anchor did not hold.
한국 통치자들은 미국과의 조약 중 한 조항이 훗날 (두 나라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사실 안전장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현실로 밝혀지기 전까지, 한국의 안전을 보장하는 '시트 닻'(안전장치)으로 여겼다.
sheet anchor (곤경에 처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것]/안전장치
There shall be perpetual peace and friendship between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and the King of Chosen and the citizens and subjects of their respective Governments. If other powers deal unjustly or oppressively with either Government, the other will exert their good offices, on being informed of the case, to bring about an amicable arrangement, thus showing their friendly feelings.
미국 대통령과 조선의 왕, 그리고 각 정부의 시민과 주체들 사이에는 영원한 평화와 우정이 있어야 한다. 만일 어떤 다른 세력이 어느 한 쪽 정부를 부당하게 또는 억압적으로 대할 경우, 다른 한 쪽의 정부는 사건을 통보받은 후 우호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고 우호적인 감정을 표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요컨데... 미국과 한국의 조약 국가 중, 어느 한 국가가 다른 세력에 의해 부당하게 억압받을 경우, 조약을 체결한 국가 중 하나는(즉 미국과 한국 중 어느 하나)는 상대방을 보호/지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은 이 조항을 일종의 '안전장치'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자국의 이익과 힘의 논리앞에서는 국가간의 조약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작금의 현실임을, '선의'와 '신의'라는 것도 한순간에 버려질 수 있음을 정녕 몰랐단 말인가?
perpetual 영구적인/종신의
exert 힘껏 노력하다/분투하다/노력하다/발휘하다/휘두르다
amicable 우호적인/원만한
All of the treaties provided for extra-territoriality in Korea, that is to say that the foreigners charged with any offence there should be tried not by the Korean Courts but by their own, and punished by them.
모든 조약은 한국내에서 치외법권, 즉, 한국에서 범죄로 기소된 외국인은 한국 법원이 아닌 한국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tra-territoriality 치외법권
offence 위법/범죄행위/모욕
Groups of adventurous foreigners soon entered the country. Foreign ministers and their staffs arrived first. Missionaries, concession hunters, traders and commercial travellers followed.
모험을 즐기려는 외국인 그룹이 곧 한국에 들어왔다. 외무장관과 참모들이 먼저 도착했고, 선교사, 허가받은 사냥꾼, 상인, 상업적 여행자들이 뒤를 이었다.
concession hunter 허가받은 사냥꾼
concede 인정하다/허락하다/내주다
They found Seoul, the capital, beautifully placed in a valley surrounded by hills, a city of royal palaces and one-storied, mud-walled houses, roofed with thatch--a city guarded by great walls. Statesmen and nobles and generals, always surrounded by numerous retinues in glorious attire, ambled through the narrow streets in dignified procession. Closed palanquins, carried by sturdy bearers, bore yet other dignitaries.
(한국에 들어온) 그들은 언덕으로 둘러싸인 계곡에 아름답게 자리잡은 수도 서울, 왕궁과 초가지붕의 단층 흙벽집, 성곽으로 보호되는 도시를 발견했다. 정치가, 귀족, 장군들은 항상 화려하게 옷을 입은 수많은 수행원들에 둘러싸여 위엄있는 행렬로 좁은 거리를 느긋하게 거닐었다. 건장한 가마꾼이 운반하는 닫힌 가마에는 지루해 하는 다른 고위 인사들이 탑승했다.
thatch 짚/억새/초가지붕
retinues 수행원들/수행단
attire 의복/복장
amble 느긋하게 걷다/어슬렁 거리다/천친희 걷다
dignified 위엄있는
procession 행렬/행진/줄
palanquin 중국 인도 등의 1인승 가마/탈것
dignitary(ires) 고위 관리/현직에 있는 사람
The life of the city revolved round the King's Court, with its four thousand retainers, eunuchs, sorcerers, blind diviners, politicians and place hunters. The most prominent industry--outside of politics--was the making of brass ware, particularly of making fine brass mounted chests. The average citizen dressed in long flowing white robes, with a high, broad-brimmed, black gauze hat. Hundreds of women were ever busy at the river bank washing these white garments.
도시의 생활은 4,000명의 신하, 내시, 마술사, 맹인 점술가, 정치가 및 엽관이 있는 왕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정치 이외의 가장 눈에 띄는 산업은 황동 제품 제작, 특히 고급 황동이 장착된 '궤'를 만드는 것이었다. 일반 사람들은 길고 챙이 넓은 검은색 거즈 모자를 쓰고 긴 흰색 예복을 입었다. 수백 명의 여성들은 강둑에서 이 흰 옷을 세탁하느라 분주했다.
retainer 부하
eunuch 환관/내시
sorcerer 마법사
diviner 점쟁이/예언가
place hunter 엽관(獵官)/관직을 얻으려 갖은 노력하는 사람
chest 가슴/흉부/나무로 만든 상자[궤]
brimmed 테두리가 있는/가득찬
brim 모자의 챙/그득하다/그득 채우다
Women of good family remained at home, except for one hour after dark, when the men retired from the streets and the women came out. Working women went to and fro, with their faces shielded by green jackets thrown over their heads. Their usual dress was a white skirt coming high up and a very short jacket. The breasts and the flesh immediately below the breasts were often freely displayed. Fishing and farming supported ninety per cent of the population, and the Korean farmer was an expert. At sunset the gates of Seoul were closed, and belated wayfarers refused admission until morning. But there was no difficulty in climbing over the city walls. That was typical. Signal fires at night on the hills proclaimed that all was well.
좋은 집안의(양반가의) 여성들은 남자들이 거리에서 물러나고 여성들이 밖으로 나오는 어두워진 후 한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집안에 머물렀다. 일하는 여성들은 머리 위로 녹색 재킷(=쓰개치마)을 걸쳐 얼굴을 가리고 (이리저리/여기저기) 다녔다. 그들의 평소 복장은 높이 올라오는 흰색 스커트와 매우 짧은 재킷(저고리)이었다. 가슴과 가슴 바로 아래의 살이 자유롭게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업과 농업은 인구의 90%를 부양했고, 한국 농부는 농사에 전문가였다. 해가 질 무렵 서울의 성문들은 닫혔고, 뒤늦은 나그네들은 아침까지 입장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성벽을 오르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것은 전형적이었다. 밤에 언덕에서 신호등이 켜지면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음을(태평함을) 나타냈다.
to and fro 앞뒤로/이리저리
belated 늦은/뒤늦은/시대에 뒤진
wayfarer (보통 도보) 여행자/나그네
proclaim 선언[선포]하다/분명히 보여주다/~의 표시[징후]이다
The Koreans were mild, good natured, and full of contradictory characteristics. Despite their usual good nature, they were capable of great bursts of passion, particularly over public affairs. They often looked dirty, because their white clothes soiled easily; yet they probably spent more time and money over external cleanliness than any other Asiatic people. At first, they gave an impression of laziness. The visitor would note them sleeping in the streets of the cities at noon. But Europeans soon found that Korean labourers, properly handled, were capable of great effort. And young men of the cultured classes amazed their foreign teachers by the quickness with which they absorbed Western learning.
한국인들은 온화하고 선량하였으며, 전체적으로 상반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평소의 좋은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특히 공적인 일에 있어서는 엄청난 열정을 터뜨릴 수 있었다(나타냈다). 그들은 흰 옷이 쉽게 더러워지기 때문에 종종 더러워 보였지만, 그들은 아마도 다른 어떤 아시아인들보다 외적인 청결을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썼다. 처음에는 게으른 인상을주었다. 방문객들이라면 그들(한국인들)이 정오에 도시의 거리에서 자고 있는 것을 봤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한국 노동자들이 적절한 대접을 해주면, 무척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교양 계층의 젊은이들은 서양의 학문을 신속하게 흡수하는 모습에 외국인 교사들을 놀라게 했다.
▶이 대목은 한국인에 대한 설명을 재미있게 구술해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contradictory 모순적인/반대의
amaze (대단히) 놀라게 하다
The land was torn, at the time of the entry of the foreigners, by the rivalry of two great families--the Yi's, the blood relatives of the King, and the Mins, the family of the Queen. The ex-Regent was leader of the Yi's. He had exercised absolute power for many years during the King's minority, and attempted to retain power even after he ceased to be Regent. But he reckoned without the Queen. She was as ambitious as the Regent. The birth of a son greatly improved and strengthened her authority, and she gradually edged the Regent's party out of high office. Her brother, Min Yeung-ho, became Prime Minister; her nephew, Min Yung-ik, was sent as Ambassador to the United States. The Regent was anti-foreign; the Queen advocated the admission of foreigners. The Regent tried to strengthen his hold by a very vigorous policy of murder, attempting the death of the Queen and her relatives. One little incident was an effort to blow up the Queen. But Queen Min was triumphant every time. The King, usually weak and easily moved, really loved the Queen, refused to be influenced away from her, and was dominated by her strong character.
외국인들이 (한국에) 들어올 당시, 국토는 왕의 혈족인 이씨 가문과 왕비의 가문인 민씨라는 두 가문의 경쟁으로 인해 분열되었다. 이전의 섭정은 이씨 가문의 지도자였다. 그는 왕의 소수 통치 기간 동안 중 수년 동안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으며, 섭정직을 그만둔 후에도 권력을 유지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왕비(중전)는 아예 없다고 여겼다. 왕비는 섭정만큼이나 야심가 였다. 아들의 탄생으로 그녀의 권위는 크게 향상되고 강화되었으며, 그녀는 점차 고위직에 있던 섭정을 담당했던 당(=세력)을 몰아냈다. 그녀의 오빠 민영호는 국무총리가 되었고, 그녀의 조카 민영익이 미국 대사로 파견되었다. 섭정은 외국인 친화적이 아니였지만, 여왕은 외국인의 입국을 옹호했다. 섭정은 왕비와 그녀의 친족들을 죽이려고 시도하면서 매우 격렬한 살인(제거) 정책을 통해 자신의 세력을 강화하려고 했다. 한 가지 작은 사건은 여왕을 향한 폭탄테러 시도였다. 그러나 민왕후는 매번 승리했다. 평소 약하고 쉽게 움직이던(귀가 얇았던) 왕은 왕비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왕비로부터 영향받기를 거부했지만, 왕비의 강한 성격에 지배당했다.(휘둘렸다)
rivalry 경쟁(의식)
reckon ~라고생각하다/여겨지다/예상하다
edge 가장자리/모서리/칼의 등의 날/조금씩 이동시키다
vigorous 활발한/격렬한/활기찬/건강한
In the summer of 1881 there was a famine in the land. The Regent's agents were busy everywhere whispering that the spirits were angry with the nation for admitting the foreigner, and that Queen Min had brought the wrath of the gods on them. The National Treasury failed, and many of the King's soldiers and retainers were ready for any trouble. A great mob gathered in the streets. It first attacked and murdered the King's Ministers, and destroyed their houses. Then it turned against the King's palace.
1881년 여름에는 기근이 들었다. 섭정의 대리인들은 영혼들(하늘)이 외국인을 받아들인 국가에 분노했고, 민왕후가 신들(하늘)의 분노를 그(백성)들에게 가져왔다고 속삭이며(소문 내느라)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였다. 국가 재정은 실패한 상태에서 왕의 병사들과 신하들은 발생할 문제(혼란)에 대비하고 있었다. 거대한 무리의 군중들이 거리에 모였다. 군중들은 먼저 왕의 대신들을 공격하여 살해하고 그들의 집을 파괴했다. 그러다 왕궁을 반대하게 이르렀다.
▶여기서 말하는 군중 사건은...아마도 '임오군란'을 말하는 것 같다. 임오군란은 1882년 신식 군대(별기군)와의 차별에 분노한 구식 군인들이 일으킨 '난'이다.
wrath 극도의 분노/노여움
mob 군증/무리/떼/떼지어 공격하다/모려들다
Word came to the Queen's quarters that the rioters were hammering at the gates and would soon be on her. The palace guards had weakened, and some had even joined the people. Queen Min was calm and collected. She quickly changed clothes with one of her serving women, who somewhat resembled her in appearance. The serving woman, dressed in the robes of the Queen, was given a draught of poison and died.
군중들이 성문을 두드리고 있으며 곧 그녀를 덮칠 것이라는 소식이 여왕의 숙소에 전해졌다. 궁궐 경비병들은 군중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없었으며, 심지어 일부는 백성들과 합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 여왕은 침착했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여왕은 자신과 외모가 닮은 하녀 중 한 명과 재빨리 옷을 갈아 입었고, 여왕의 예복을 입은 하녀가 사약을 받고 죽었다.
quarters 독신 장교 숙소/숙소를 제공하다/4분의 1/4등분하다
collected 수집되다/모으다의 뜻이지만.. 흐트리짐없이 또는 혼란없이 라고 해석하는 게 좋을 듯 하다.
resemble 닮다/유사하다
draught 한 모금/죽 들이마시기/통에서 따라 파는 생맥주
The Queen hurried out through a side way, in peasant woman's dress, guarded by a water carrier, Yi Yung-ik, who for his services that day rose till he finally became Prime Minister of the land. When the crowd broke into the Queen's private apartments, they were shown the corpse and told that it was the Queen, who had died rather than face them. The crowd swept on and attacked the Japanese Legation. The Minister, Hanabusa, and his guard, with all the civilians who could reach the place--the rest were murdered--fought bravely, keeping the mob back until the Legation building was set afire. Then they battled their way through the city to the coast. The survivors--twenty-six out of forty--set to sea in a junk. They were picked up at sea by a British survey ship, the _Flying Fish_, and conveyed to Nagasaki.
왕비는 농부 여인의 옷을 입고 옆길로 서둘러 빠져 나갔고, 물 운송 책임자였던 이영익이 그녀를 호위했고, 그날의 공로로 이영익은 마침내 그 땅의 총리가 되었다. 군중들이 여왕의 개인 저택에 침입했을 때, 군중들은 얼굴을 확인하지 않았고, (왕비를 보필하던 사람들은 죽은 하녀의) 시체를 보여주며 죽은 사람이 왕비고 말했다. 군중은 일본 공사관을 휩쓸고 공격했다. 장관, 하나부사, 그리고 경비병들은 (그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던) 다른 민간인과 함께 맞써 공사관 건물에 불이 붙을 때까지 군중들을 막았다. 그런 다음 그들은 도시를 통과하여 해안까지 이동했다. 생존자들(40명 중 26명)은 나룻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갔다. 그들은 바다에서 영국 측량선 플라잉 피시(Flying Fish)호에 의해 픽업되어 '나가사키'로 이송되었다.
water carrier 수로 운송자/물을 운반하는 사람
Legation 공사관
Hanabusa 하나부사 요시모토
apartment 궁궐이나 대저택의 방/아파트/콘도
There was, naturally, intense anger in Japan over this incident and loud demands for war. A little more than three weeks after, Hanabusa returned to Seoul with a strong military escort. He demanded and obtained punishment of the murderers, the honourable burial of the Japanese dead, an indemnity of 400,000 yen, and further privileges in trade for the Japanese.
당연히 이 사건에 대해 일본 내에서는 격렬한 분노가 있었고 전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3주가 조금 지나 하나부사는 강력한 군 호위를 받으며 서울로 돌아왔다. 그는 살인범들에 대한 처벌과 일본인 사망자의 명예로운 매장, 배상금 40만엔, 그리고 일본인에 대한 무역상의 추가 특권을 요구하고 (원하는 것을)획득했다.
indemnity 보상금/배상금
Meanwhile China, Korea's usually apathetic suzerain power, took action. Li Hung-chang sent 4,000 troops to Seoul to maintain order. The Regent, now humble and conciliatory, attempted to put blame for the outbreak on others. But that did not save him. The Chinese, with elaborate courtesy, invited him to a banquet and to inspect their ships. There was one ship, in particular, to which they called his honourable attention. They begged him to go aboard and note the wonders of the apartments below. The Regent went. Once below, he found the door shut, and could hear the ropes being thrown off as the ship hastily departed. It was in vain for him to call for his attendants and warriors waiting on the shore.
한편, 한국이 평소 냉담한 종주국으로 여겼던 중국이 조치를 취했다. 리흥창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4,000명의 병력을 서울에 파견했다. 이젠 겸손하고 화해적이 된 섭정은 봉기의 발병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런 시도가 그를 구하지는 못했다. 중국인들은 더욱 예의를 갖추어 그(섭정)를 연회에 초대하고 그들의 선박들을 검사했다. 특히 그들은 그의 존경을 표한 배 한 척이 있었다.(특히 섭정의 관심을 끌었던 배 한 척이 있었다. - 이 줄친 부분은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들은 그에게 배에 올라 아래 저택의 경이로움을 봐 달라고 간청했다. 섭정은 배에 올랐고, 배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문이 닫힌 것을 알았고, 배가 급히 출발할 때 밧줄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해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수행원들과 군사들을 불러도 소용이 없었다.
apathetic 무관심한/심드렁한/냉소적인
suzerain 영주/종주국
elaborate 정교한/정성들인/자세히 추가 설명하다
courtesy 공손함/정중함
They took him to China, and Li Hung-chang sent him into imprisonment and exile for three years, until it was deemed safe to allow him to return.
중국인들은 그를 중국으로 데려갔고, 리흥창은 그를 돌려보내도 안전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3년 동안 투옥한 후 추방하여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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